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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없는 농사꾼, 집 없는 여행자, 파란 눈의 ‘리틀 포레스트’

충북 충주 편
농가와 외지인 연결해주는 ‘우프’ 참여… 세계의 낯선 이들이 내 포도밭으로
등록 2026-05-16 14:55 수정 2026-05-16 15:03
여행자이자 일꾼으로 인연을 맺은 프랑스인 ‘우퍼’ 친구가 환한 표정으로 포도밭을 매고 있다.

여행자이자 일꾼으로 인연을 맺은 프랑스인 ‘우퍼’ 친구가 환한 표정으로 포도밭을 매고 있다.


올해 우프(WWOOF) 코리아에 가입했다. 몇 해 전부터 유기농 농부의 일손을 돕는 우프란 제도가 있다는 것을 들었지만 가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에서 사람들이 와서 농사일을 돕고 농부 쪽에선 숙식을 제공하며 방문자와 농부가 문화를 교류하는 것을 기본 골조로 하는 제도다. 망설였던 이유는 낯선 사람과 일주일이나 그 이상을 함께 숙식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여행자이면서 일꾼으로 오는 우퍼들의 목적과 나의 목적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살면서 충돌이나 분란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맨 처음 온 우퍼는 프랑스의 젊은 여성이었다. 집채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마당에 나타났다. 5개월째 아시아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초코파이를 좋아하고 컵라면을 좋아했다. “진짜?” “대박!” “어떻게!” 이런 한국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밭을 일구고 보리를 뿌리고 갔다. 다음엔 한국인 커플이 왔다. 잠시 도시를 떠나 머리를 비우고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조용한 분들이었다. 아침 식사 후 포도밭에 가서 가지치기한 나무를 정리하고 유인줄에 붙은 종이를 제거하는 일을 했다. 일주일 내내 오전에는 밭일하고 오후에 수안보로 가서 족욕 온천을 했다. 그들이 가고 난 뒤 포도밭이 말끔해졌다.

세 번째는 프랑스인 커플이 왔다. 이들도 12월에 집을 나와 5개월째 아시아를 돌고 있다고 했다. 스물두 살이라고 했다. 조금 지쳐 보였다. 이들은 일주일 내내 하루 5시간 잡초를 뽑았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저 열심히 밥을 했다. 푸짐하게 차려놓은 밥과 와인을 보면 그들은 얼굴이 환해졌다. 디저트를 만들어주면 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더욱 열심히 밥을 하고 디저트를 만들었다. 우리 밭에 와서 저렇게 풀을 뽑고 일해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없이 고맙고 귀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힘들게 여행하는 이유가 뭐니?” 하고 물으니 “힘들지 않은데요!” 하고 말한다. “아시아 문화와 아시아 농사를 좀더 깊이 알고 싶어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타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왔고 한국을 마지막으로 6월에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했다. 돌아가는 날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일주일 동안 거친 일을 함께 한 동지로서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간 뒤 싱가포르 남성과 한국 여성 부부가 왔다. 두 사람은 일본에서 만나 결혼했기에 소통 언어는 일본어였다. 이 부부는 현재 집이 없는 상태이며 어디에 정착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국일지 싱가포르일지 중국일지, 세상 어디든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정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잡초 뽑는 일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물으면 “힘들어요! 잡초가 진짜 너무 많아요!” 하고 해맑게 대답한다. “그렇지만 포도나무 아래 잡초를 뽑고 부엽토를 수북이 얹어주면 포도나무가 ‘고맙습니다’ 말하는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아요” 하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는 2주를 함께 지냈고 그들은 강원도 영월을 향해 떠났다. 어디에 정착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은 한국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중에도 충주, 그중에도 바로 내 집 옆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우프를 시작하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낯섦과 두려움이 여전히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만난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이, 그들을 그저 일꾼으로만 생각했던 내 생각을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그들은 ‘땅을 소유하지 않는 농부이며 세계를 여행하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분이다. 언젠가는 나도 세계를 가꾸는 농부, 우퍼이고 싶다.

글·사진 신이현 작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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