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뒤 10년이 흘렀다. 그사이 제501오룡호(2014년 12월), 스텔라데이지호(2017년 3월), 골든레이호(2019년 9월), 삼성1호(2021년 1월)의 침몰 사고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수많은 해상 안전 관리의 문제점은 그 뒤로도 유사한 사고들로 재현됐다(관련 기사: 귤 상자와 맞바꾼 목숨, 세월호 똑 닮은 참사들). 이윤만을 좇아 위험한 항해를 밀어붙이거나 안전 투자를 아끼다 비극으로 이어진 사고들이었다. 2024년 2월과 3월에도 어선 등 선박 전복 사고가 무려 4건이나 발생했다. 이 사고들로 17명의 삶이 육지로 돌아오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았다.
참사 뒤 10년, 한국 사회는 그 희생의 무게만큼 변해왔을까. <한겨레21>은 전직 선장과 선원들, 해양 전공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10년에 걸친 선박 안전 관련 제도와 현장의 변화를 살펴봤다.
“요즘은 (선박회사의) 부산지사 대표가 직접 평택항까지 올라옵니다. ‘안전하게 하라’ ‘스케줄이 무리한 것 같으면 말하라’라고 해요. 옛날엔 회사 관리자가 실태를 파악하는 정도에 그쳤거든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현장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어요.” 외항선 선장으로 10년 간 배를 탔다는 전직 선장 조아무개씨가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법적 처벌은 선장 위주로 강화했다. 승객을 퇴선시키지 않고 먼저 배를 떠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선원법 개정으로 선장은 인명·선박·화물 구조에 필요한 조처를 다 하지 않으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받는다. 선원들도 같은 이유로 최소 1년(상해)에서 3년(사망) 징역형이 가능하다.
반면 안전과 경영에 관한 핵심 결정 권한을 쥔 선박 소유주의 처벌 수준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가령 선박 소유주는 안전관리책임자의 위험 시정 요구를 묵살해도 최대 과태료가 300만원, 비상훈련을 하지 않았을 때 최대 과태료는 500만원이다. 세월호처럼 선박을 승인된 도면과 다르게 운용하더라도 양벌규정에 따른 법인 처벌금액은 최대 3천만원이다. 수억원에 이르는 선박 수리비보다 훨씬 싸다. 기업 관점에선 “벌금 부과를 사업 운영상 필요불가결한 비용으로 간단하게 처리”(김용준, 2016년, ‘세월호 사고로 표면화된 선박 분야 안전규정의 문제점 및 개정법의 개선방안’)하기 쉬운 구조였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 8년 뒤인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선박 소유주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가 시작됐다. 선원이나 승객이 중대재해로 사망했을 때 그 원인이 선박회사(선사)의 안전조처 부실로 확인되면 선사 대표이사가 1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대표이사의 처벌 가능성을 차단하려 기민하게 대응하는 분위기다. “저희 회사는 배에서 안전관리 비용 청구가 들어오면 무조건 집행합니다. 선장의 안전이 내 안전이라 생각하고 ‘필요한 게 뭐냐’ ‘수리업자 보내줄까’ 물어보지요.” 중소 석유제품운반선사의 안전관리책임자 김아무개씨가 말했다.
그래도 이윤과 충돌하는 상황이 오면 여전히 안전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조직 내 안전관리 조직의 위치가 불분명하고 안전과 이윤의 충돌을 해소할 구체적 기준도 부재한 탓이다. 안전이 경영 결정까지 견제하지 못한다는 게 현장의 지배적 평가다. “부산지사 대표이사가 ‘안전을 중시하라’고 말은 할 수 있는데요, 본사 영업팀이나 전략팀이 항해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는 것까지 어쩌진 못합니다. 한 달에 일본 네 번 가는 거를 세 번만 가겠다고 하긴 어렵다는 얘기예요. 물론 운항 횟수가 많아지면 선장과 선원들이 피로해지고 사고 위험도 커져요. 기상 악화로 운항까지 지연되면 일정도 더 쫓기고요. 그래도 회사 영업 목표가 있으니까 ‘세 번만 가겠다’고 말하기 어렵죠.” 조씨가 말했다.
안전에 관한 ‘말발’이 세지려면 안전관리 총괄책임자의 조직 내 위상부터 확보해야 한다. 리더의 위치가 높을수록 파악하는 정보도, 개입할 권한도 커진다. 이에 산업재해가 많은 건설업의 경우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 등이 줄줄이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를 선임했다. 이들은 다른 업무를 겸하지 않고 안전관리 업무만 한다. 반면 해운업계 1, 2위인 에이치엠엠(HMM)과 팬오션은 안전관리책임자에게 영업, 선원 관리 등을 함께 맡긴다. 안전만 전담하는 임원은 따로 없다.
게다가 배의 최고책임자인 선장은 선사에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다. “선장은 선주의 대리인입니다. 선주가 다소 무리한 스케줄을 요구하더라도 선장은 가급적 맞추려 노력하죠. 회사가 ‘기상이 안 좋은데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70∼80%의 선장은 ‘그래도 맞춰봐야죠’ 합니다. 위험하다고 거절해도 되긴 하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직장에 오래 있긴 어렵겠죠.” 조씨의 설명이다.
2021년 1월 제주에서 전남 고흥으로 항해하다 침몰한 3천t 규모 화물선 삼성1호가 그 사례다. 풍랑경보가 발효된 상황에서 선주가 출항을 강요했고, 화물을 더 싣기 위해 화물창 덮개도 열어놓으라고 지시했다. 이 열린 화물창으로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선박이 침몰해 62살 선원이 실종됐다. 선주가 위험에 대한 판단을 자의적으로 내렸으나 누구도 그의 결정을 뒤집지 못했다. “기상이 안 좋은데 선사가 출항을 요구하면 선장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요. 선장님이 할 말 하는 스타일이면 막아내죠. 근데 회사 눈치 보는 선장들은 무리해서라도 하려 하거든요. 그러다 사고가 나는 것 같아요.” 전직 외항사 선원 김민호(29)씨의 말이다.
자본의 무리한 요구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정한다. 육상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훈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적용받는다. 이 규칙에는 공장의 전구 밝기까지 세세하게 적어둔 조항이 673개나 있다. “사업주는 기상상태 불안정으로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여야 한다.”(규칙 제37조) “분진이 심하게 흩날리는 작업장에 물을 뿌리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규칙 제4조의2)
반면 선원들에겐 해상에 특화된 안전기준이 따로 없다. 선원법 제78조 등은 국가에 선원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부여하고 구체적인 안전기준(‘선내 안전·보건 및 사고예방 기준’)도 시행규칙으로 만들라고 정해뒀다. 이 법은 2013년 제정됐으나 시행규칙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양수산부가 ‘만드는 중’이다.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 법령 제정과 달리, 시행규칙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예고만 하면 된다. 법이 위임한 시행규칙을 담당 부처가 10년째 만들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미 지금까지 수많은 사고 사례가 쌓여 있어요. 그걸 토대로 안전기준을 일단 만들기라도 해야 합니다. 규칙이 지금까지 안 만들어졌다는 건 주무 부처가 하루 빨리 규칙을 제정해야 합니다.” 성우린 해상 전문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가 말했다.
해수부가 2022년 행정 예고한 안을 보면, 선주에게도 선내 사고 위험을 찾고 예방책을 세울 의무를 부여하긴 했다. 또 배 안에서 안전대표자를 별도로 뽑고 안전에 관한 회의(‘선내안전보건회의’)도 열도록 정했다. 규칙이 시행되면 배 안의 안전 소통 창구가 전보다 느는 셈인데, 이 규칙은 법제처 규제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해수부 쪽은 이렇게 해명했다. “노사 합의를 이루는 데 오래 걸렸다. 사쪽은 중소 영세선사들이 부담을 느꼈고 노쪽도 취지는 좋지만 인력 충원 없이 규제만 늘 것을 우려했다. 이제 어느 정도 합의돼 규제 심사 중이다. 2024년 상반기면 제정될 것으로 본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장편 기사는 분량을 쪼개어 독자들께 선보입니다. 이 기사는 '"60대 이상 선원 60% 육박…면접 때 “ 걸어가봐, 손가락 움직여봐"'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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