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2025년 3월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연구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미국 주도 휴전 협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고빗길로 접어들었다. 침략국인 러시아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피해국이자 우방인 우크라이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미국의 모습에 전세계가 경악했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해온 유럽 동맹국들은 ‘홀로서기’에 시동을 걸었다. 언제든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어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복귀 두 달도 안 돼 요동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세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한겨레21은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과 향후 한반도 주변 정세 전망을 물었다. 인터뷰는 2025년 3월12일 오전 서울 삼청동 구 교수 연구실에서 2시간 남짓 진행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 백악관에서 ‘말싸움’을 벌였다.
“정상회담 때 다툼이 가끔 생기기도 하지만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이번엔 수많은 기자가 현장에 있었고, 생중계로 전세계가 지켜봤다. 외교사적으로 대단히 드문 사례다. 정상회담은 실무진이 미리 합의한 내용을 추인하는 자리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광물협정은 사전에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정상회담 직전에 판이 뒤집혔다. 누가 의도했을까? 최근 학계에선 ‘포퓰리스트의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외교정책의 ‘개인화’가 핵심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때도 비슷했다. 실무선에서 어느 수준까지 합의가 됐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사전에 준비된 합의를 트럼프 대통령이 뒤집으면서 회담이 ‘노딜’로 끝났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한때 북핵 해법으로 ‘우크라이나 방식’이 거론되기도 했는데.
“1991년 독립 직후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이 배치한 핵무기 탓에 일약 세계 3위 핵보유국이 됐다. 미국과 러시아 등의 압박 속에 우크라이나는 1994년 체제 안전보장과 핵무기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체제 안전은 ‘종이 한 장’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란 점을 확인시킨 셈이다. 북한도 몇 차례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12년 2·29 합의 등이 마련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기됐다.
북이 이른바 ‘억제력 확보’를 공식화한 것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부터다. 억제력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핵공격을 당하면 반격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상대방이 인정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반격능력을 제거할 수 없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충족돼야 ‘억제 균형’이란 안정성이 확보된다. 북은 2017년 11월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전례가 없는 일인데, 달리 보면 자신들의 반격능력을 인정하라는 일종의 ‘인정 투쟁’이다. 북한이 고체연료 탄도미사일과 이동식 발사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핵잠수함 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반격능력 제거’를 막기 위해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북은 ‘억제력 균형’이나 ‘힘의 균형’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북-러가 급속히 밀착했다.
“옛 소련제 무기에 기반한 군대의 개보수 작업에서 북한이 ‘가성비’가 제일 높은 나라일 것 같다. 러시아 입장에선 경제성이 떨어지는 탄약 같은 재래식 무기를 북한이 제공해주고 있는 게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북한은 러시아 한쪽으로 집중하는 외교 행보를 보여왔다. 북한 외교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결국 북-러는 2024년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조약)을 체결하고, 양국 관계를 사실상 ‘동맹’으로 복원했다. 핵 능력에 더해 북-러 동맹이란 ‘플러스알파’가 생겼으니, 북한으로선 억제력을 더욱 강화한 셈이다. 식량과 원유를 공급받으면서 유엔 제재를 뚫었고, 파병을 통해 인공지능(AI) 시대 전쟁에 대처할 수 있는 실전 경험까지 챙겼다. 북은 러시아 밀착 전략으로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휴전에 합의하면 북-러 관계도 달라질까?
“휴전 뒤에도 ‘북한제 무기’의 효용성은 지속될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 노동력 활용도 고려할 것이다. 우리도 개성공단에서 경험한 것처럼, 학력도 높고 노동규율도 강한 북한 노동력은 질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러시아는 연해주(극동지역) 개발도 그렇지만, 휴전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지 재건에도 북한 노동력을 활용할 것이다. 북-러 조약은 전방위 조약이다. 경제협력 측면도 크게 부각돼 있다. 단순 군사동맹을 넘어선 말 그대로 ‘가치동맹’ ‘전략동맹’이라 부를 만하다. 전쟁이 끝나도 북-러 관계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북쪽과 밀착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 극단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핵발전용 원료인 농축우라늄(2021년 기준 전체 수입량의 34%)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자칫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러시아가 남북 모두에 ‘보험’을 들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공급과 정보공유를 중단한 걸 보면서, ‘한국도 언제든 저런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맹까지 예외 없는 ‘관세 전쟁’도 그렇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화’를 넘어 ‘폭탄화’하고 있다. 첫 공격 대상인 캐나다, 멕시코, 중국은 미국의 1, 2, 3위 무역 상대국이다. 다음 차례가 될 4, 5, 6위 상대국은 일본, 독일, 그리고 한국이다. 사실상 정부 공백 상태인 ‘탄핵 국면’이 우리로선 ‘다행’인 측면이 있다. 포퓰리스트 외교정책의 특징은 기존 국제질서와 제도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방어막이 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트럼프 현상’이 일시적인지 여부다. 패권은 ‘강제’와 ‘동의’가 함께 작동해야 유지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그렇게 했다. 이젠 ‘동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강제력을 쓰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패권의 몰락’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기업이나 국가가 몰락해갈 때 나타나는 행동 유형을 이탈, 충성, 저항 등 크게 세 가지로 분석했다. 4년 뒤 우리의 환상 속에 있는 ‘미국’은 다시 돌아올까? 아니라면, 이탈이나 충성이 아닌 저항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그렇게 하고 있다. 관세를 양보하면, 동맹은 지속될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은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재개할 게다. 전략자산 전개 비용도, 연합군사훈련 비용도 물리려 할 것이다. ‘동맹의 경제화’가 뚜렷하다. 미국에 공장 지으면 국내에서 20대, 30대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연 그게 옳은 선택일까?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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