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탄핵에 목마른 긴 배고픔, 광화문 단식농성장을 가다

시민사회·정치권 결집한 200m 천막 캠프… ‘탄핵 이후’ 제가끔 그리며 어우러져
등록 2025-03-22 13:58 수정 2025-03-23 16:02
2025년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에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을 촉구하는 천막 농성장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5년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에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을 촉구하는 천막 농성장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5년 3월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쪽에서 경복궁 쪽으로 길을 건너자 바로 앞에 빈민해방실천연대의 천막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광화문 앞 월대까지 200m가량 보행로에 50여 동의 천막이 커다란 줄을 이루고 있었다. 천막의 이마엔 단체 이름이 적혀 있었고, 모서리엔 단체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윤석열 탄핵과 사회대개혁을 바라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정당들의 천막이 박람회의 부스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천막들의 들머리에서 한국의 대표적 사회운동가 중 한 사람인 박석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공동의장을 만났다. 비상행동엔 150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박 의장은 벌써 열흘째 단식 중이었고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여기 시민단체와 정당들의 장이 선 것 같습니다” 하고 인사하자 밝은 표정으로 “그렇지요?”라고 되물었다. “건강은 어떠시냐”고 묻자 “아직 괜찮다. 내 나이가 70살이어서 사람들이 단식하지 말라고 했는데,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광고

박람회 부스처럼 늘어선 천막 50여 동

박 의장에게 단식하게 된 상황을 물었다. “3월8일 토요일 세계 여성의 날 집회 준비 중에 윤석열 석방 소식을 들었다. 이러다 윤석열 파면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민심의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오후 4시께부터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시민들도 광화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단식 중이던 비상행동 공동의장단 15명 가운데 2명은 12일째인 3월19일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 연대' 소속 야당 의원들이 2025년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 천막 농성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 연대' 소속 야당 의원들이 2025년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 천막 농성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광화문 앞 농성장은 서쪽부터 1~8번이 비상행동과 노동자, 농민, 빈민 단체의 천막이고, 9~14번이 정당들의 천막이다. 50여 동의 천막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은 야 5당 국회의원 단식 농성장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단식 농성장이었다. 이들 천막 앞은 퇴근 시간이 가까운 오후 5시께부터 통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민과 관계자들은 농성 중인 정치인들과 인사하고 사진을 찍었다. 인터뷰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날 낮 원내 야 5당 단식 농성 천막에 갔다. 야 5당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이다. 강득구, 김준혁, 민형배, 박수현, 서영석, 위성곤(이상 민주당), 윤종오(진보당) 의원 등 7명이 3월11일부터 7일째 단식 중이었다. 얼굴이 까칠해진 민형배 의원과 이야기했다. 민 의원은 “국민의힘과 판사, 검찰총장이 내란 피의자 윤석열을 탈옥시켰다. 이제 정치인들이 거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은 힘들지만,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아노크라시(무정부) 상태지만, 시민들이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 반드시 내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

함께 단식하던 박수현 의원에게 광화문 앞에서 시민들을 만나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박 의원은 “하루에 평균 3천 명 정도 찾아온다. ‘고생 많다’고 격려하면서도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으니 빨리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역시 함께 단식하던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2017년 촛불혁명 이후 정치, 사회 개혁이 제대로 안 됐다. 윤석열이 탄핵되면 그 뒤엔 국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을 해야 한다. 다양한 정당이 국회에 들어가서 연합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3월17일 한겨레21 인터뷰에 응한 민 의원은 다음날인 18일 오전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위성곤 의원을 제외한 다른 의원들도 모두 건강 우려로 단식을 중단했다. 18일부터는 단식을 계속하는 위성곤 의원과 함께 민주당의 이재강, 양문석, 임미애, 진보당의 정혜경 의원이 새로 단식에 들어갔다.

정치인 중 가장 이른 3월9일부터 단식을 시작한 김경수 전 지사는 얼굴과 몸이 꽤 수척해 보였다. 주변에선 시민들에게 악수보다 눈인사를 권했다. 김 전 지사는 “윤 대통령이 석방된 뒤 내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여의도가 아니라 광화문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상행동에서 단식하는 걸 보고 함께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도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시민들이 바로 세우려고 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다. 윤석열 파면 뒤에 국민의 뜻과 힘으로 사회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 천막 농성장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 천막 농성장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광고


 

국민의힘 막는 것만으로 좋은 정치 안 돼

야 5당과 김 전 지사 천막 다음으로 시민들이 몰린 곳은 조국혁신당이었다. 3월17~18일 저녁 혁신당 천막 앞에선 김준형 의원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김 의원은 “일반 시민도 오고 지인도 온다. 심지어 국외 동포나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아온다. 하루빨리 내란 상황을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원래 정치인들이 욕을 많이 먹는데, 여기선 고맙다거나 응원한다는 시민이 많다. 윤석열의 계엄을 막아낸 일이 정치인에 대한 신뢰를 조금 높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야 5당 농성장 동서로는 진보정당들의 천막이 있었다. 야 5당 천막 서쪽의 진보당 천막엔 장지화 여성진보당 대표가 있었다. 장 대표는 윤석열 탄핵 뒤 진보당의 과제를 고민했다. “먼저 성평등, 청년, 노동, 돌봄 등을 정책화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정당의 자리가 있다. 둘째는 진보정당 간의 연대와 협력이다. 사안에 따라 협력해왔지만, 선거 연대도 강화하고 싶다. 그동안 진보 진영 안에서 여러 일이 있어서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야 5당 농성장 동쪽의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등 3개 진보정당의 공동 천막에 들어갔다. 정의당의 김지현 홍보차장은 “시민들이 정당들을 불러냈다. 원내 정당들도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광장에서 좋은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힘만 막는다고 사회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의 원내 진입 실패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이제 현장만이 아니라 제도 개혁도 추구하겠다. 민주당이 정치 개혁에 나서도록 압박하겠다. 얼마 전 개헌 운동도 선언했는데, 직접 민주주의의 길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3월17일 오후 2시엔 비상행동의 단체들과 정당들이 광화문광장 북쪽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동 네거리까지 거리 행진을 했다. 수천 명이 참석했고 100개 이상의 깃발이 휘날렸다. 안국동 네거리 부근에서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극우파들이 나타나 잠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은 호응하는 분위기였다. 비상행동은 윤석열이 석방된 3월8일부터 19일까지 광화문 앞에서 40번이 넘는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고, 매일 저녁 7시 탄핵 촉구 집회도 열었다. 특히 3월15일엔 10만 명 넘는 많은 시민이 집회에 참여했다.

서쪽에서부터 15~49번째 천막은 대부분 시민, 노동자, 장애인, 대학생, 종교, 문화 등 단체들의 천막이었다. 이들 천막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서쪽에서 35~44번째에 있는 ‘윤석열 파면 부산 대학생 단식 농성단’의 작은 천막이었다. 유일한 대학생·청년 단체이자 서울 아닌 부산의 대학생들이어서 더욱 도드라졌다. 이들은 3월12일부터 서울로 와서 팀을 바꿔가며 단식 중이었다.

 

2025년 3월12일부터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 부산 대학생들의 단식 천막.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5년 3월12일부터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 부산 대학생들의 단식 천막.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부산에서 온 청년 대학생들의 간절함

이 단식 농성단의 이하빈(신라대) 단장은 “윤석열이 석방되는 것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부산에서도 농성할 수 있지만, 간절한 마음을 보여주려고 서울까지 왔다. 우리가 먼저 목소리를 내서 다른 대학생, 청년들도 나오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청년들의 상황을 묻자 “청년들이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단장은 “학업과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청년이 많다. 학비와 생계비를 모두 대줄 수 있는 부모님도 많지 않다. 대학교 1학년생도 놀지 못하고, 졸업 뒤 취직해도 안정적이지 않다. 양극화 속에서 약자로 밀려난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화문 앞엔 개신교 천막도 2개나 펼쳐져 있다. 하나는 ‘예수살기 촛불교회’이고, 둘은 ‘향린교회’다.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주축 세력 중 하나가 극우 개신교라는 점을 고려하면 뜻밖이었다. 예수살기 천막에 들어가니 김동한 상임대표가 있었다. 그는 “시민들이 ‘이런 교회도 있느냐’며 놀란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극우적 개신교의 뿌리가 해방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에서 김일성 정권에 쫓겨난 개신교인들이 남한으로 오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극우적 개신교의 활동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개신교의 혐오 표현을 제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서쪽에서 29~31번째 천막엔 문화단체들이 몰려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과 한국민족춤협회, 영화산업위기극복 영화인연대, 한국작가회의, 문화연대, 블랙리스트 이후 등이다. 정치, 사회 이슈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단체들이었다. 문화연대 천막에 들어가니 하장호 문화정책위원장이 앉아 있었다. 하 위원장은 “처음엔 문화 활동을 생각했는데, 윤석열 석방이라는 충격적인 일을 겪고 농성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이번 내란은 민주적 질서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격이었다. 삶의 언어, 정치체제, 공동체 등에 대해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문화단체 활동가들이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 천막 농성장에서 대통령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문화단체 활동가들이 3월17일 밤 서울 경복궁역 앞 천막 농성장에서 대통령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쪽에서 17번째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천막이 있었다. 활동가와 장애인들이 함께 나와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윤석열 탄핵 이후 이들의 가장 큰 희망은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급속히 진행되는 극우화 흐름을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다. 송김경화 활동가는 “윤석열의 내란이 끝나면 ‘사회대개혁’을 요구하겠다. 정치인들 마음대로 정치하지 말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서 정치하라고 요구하겠다.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농성하는 활동가와 시민들을 지원하는 천막도 다섯 개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민주당 지지자들의 모임인 개혁국민운동본부의 천막이었다. 여기선 따뜻한 물이나 커피를 활동가나 시민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여기서 봉사 활동하는 김희정씨를 만났다. 대전에 사는 김씨는 윤석열 석방 뒤 탄핵 집회를 지원하려 거의 매일 서울에 온다. 김씨는 “힘도 들고 비용도 들지만, 불안해서 그냥 집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탄핵 이후를 물었더니 “반드시 검찰을 바꿔야 한다. 수사권을 없애고 기소권도 다 줘서는 안 된다. 기소배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의 내란이 평범한 시민을 검찰 개혁 전문가로 만든 듯했다. 그는 “언론도 탄핵 찬성과 반대를 중립적으로 보도하지 말고, 옳은 쪽 이야기를 충분히 써서 좋은 여론이 형성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충돌하고 조정하며 힘 모으는 학습장

시민단체와 정당들은 이번 광화문 앞 농성장이 시민단체와 노조, 정당이 함께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비상행동의 이재근 공동상황실장(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정당의 언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광화문 앞의 농성장에서 서로 충돌하고 조정하면서 함께 힘을 모으는 방법도 배웠다. 윤석열 탄핵을 이룬다면 그 뒤에도 함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야 5당 단식 농성장에서 8일 동안의 단식을 마친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엄중한 사태여서 이례적으로 시민단체들과 정당이 한자리에서 힘을 모았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큰 계기가 됐다. 윤석열을 탄핵한 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과정도 함께 해나갈 것이다. 농성장에서 그동안 정치인에 대해 거리감을 느꼈을 시민들도 많이 만났다. 앞으로 말씀 잘 듣고 정치에 반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