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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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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안전하게 일하고 힘내”가 마지막 메시지가 되다니

[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⑩김지현
서울 올라와 취업 준비하던 첫딸 ‘깜찍이’엄마는 그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간절히 알고 싶다
등록 2022-12-30 18:07 수정 2023-04-04 09:50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엄마 아빠에게 스물일곱 살 첫딸 지현의 별명은 ‘깜찍이’였다. 오랜만에 충남 당진의 집에 올 때면 지현은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며 김채선(55)씨에게 뽀뽀했다.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한 아빠도 지현만 보면 “우리 깜찍이 왔어”라며 웃었다.

충남 대천에서 태어난 지현은 어릴 때부터 호기심 많고 나서길 꺼리지 않는 아이였다. 3살 때는 세탁기에 혼자 들어가 엄마를 기겁하게 했고 4살 때는 교회 성경 암송대회에 나가 3등을 꿰찼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예발표회에선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회를 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보낸 무용학원에서 적성을 찾았다. 그때부터 가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첫 월급으로 1만원권 100장 선물했던 딸

세상 모든 것을 하고 싶던 어린 시절을 보낸 지현은 고등학교 때 지리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현은 대학에서 지리교육을 전공하며 교사가 될 준비를 했다. 부전공인 체육학에도 흥미가 생겼다. “체육은 실기가 많으니까, 도전하기 좋아하고 활동성이 강한 지현이한테는 그쪽이 오히려 더 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 지현은 2019년부터 충북체육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사회 경력을 쌓았다. 첫 월급을 받은 지현은 엄마 아빠에게 1만원권 100장을 선물했다.

대학 입학 뒤 충북 청주에 살던 지현이 서울로 떠난 것은 2020년이다. 서울의 한 구청 문화센터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체육계나 문화계에 취업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집값을 아끼기 위해 셰어하우스에서 지내다 마음 맞는 친구와 따로 나와 자취했다. 꾸준히 취업 준비를 했다. 지현의 컴퓨터에는 자기소개서만 20여 장이 저장돼 있었다. 엄마는 홀로 서울에 있는 지현을 자주 걱정했다. “오늘 날씨가 쌀쌀해서 따뜻하게 입고 갔나 해서 궁금해서.” 저녁이면 메시지를 보냈다. 참사 당일, 지현은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간다고 했다. 엄마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도 안전하게 일하고 힘내.” 그것이 마지막 메시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0월30일 새벽 2시30분. 지현 남동생이 엄마한테 전화했다. “누나가 전화를 안 받아요. 아무래도 이태원에 간 것 같아요.” 깜짝 놀라 뉴스를 보니 ‘59명 사망’이라는 속보가 떴다. 엄마는 넋이 나간 채 지현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 전화 받아라. 너 괜찮지.” 하지만 답이 없었다.

청주에 살던 남동생은 새벽 5시30분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누나 집으로 찾아가달라고 부탁한 뒤 바로 서울로 향했다. 지현의 집에는 룸메이트인 친구만 있었다. 친구는 지현과 연락이 안 돼 먼저 집에 와 있었다고 했다.

남동생은 바로 순천향대병원으로 향했지만 그곳에도 지현은 없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 마련된 임시영안소를 찾았지만 경찰이 앞을 막아섰다. “실종신고 접수부터 하세요.” 남동생은 실종신고를 한 뒤 실종자 신고센터와 여러 차례 전화를 주고받았다. ‘김지현’과 동명이 많았다. 모두 주민등록번호가 달랐다. 혹시 신고센터에 주민등록번호가 잘못 등록된 것이 아닌가 해서 다시 번호를 불렀다. 그제야 지현이 경기도 수원 성빈센트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10월30일 오후 2시30분이었다. 영안실을 찾아 누나를 확인한 남동생을 대신해 남동생 친구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누나 맞대요. 얼른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지현은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친구의 손을 놓쳐 큰길로 밀려갔다고 한다. 지현은 밤 10시10분께 친구에게 두 차례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다시 골목으로 향했다. 인파에 휩쓸린 지현은 꼼짝없이 골목에 갇혔다.

엄마가 병원에서 마주한 지현의 모습은 처참했다. 머리는 헝클어졌고 얼굴에 온통 깨알 같은 피멍이 들었다. 맨몸을 두른 흰 천엔 혈흔이 묻어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엄청난 무게로 눌렸으면. 우리 딸의 참혹한 모습을 보니까 억장이 무너졌어요.” 엄마가 오열하는 사이 경찰은 아빠에게 부검을 제안했다. 아빠는 “압사 때문에 숨진 것이 다 드러났는데 왜 부검하느냐”고 항의했다. 경찰은 장례를 어디서 치를 것인지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아무래도 본가 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며 지현이를 당진으로 이송하라는 것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경찰의 재촉이 의심스러웠다. “유가족들끼리 함께하지 못하게 뿔뿔이 흩어놓으려고 당진으로 가라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병원엔 희생자 7명의 주검이 안치돼 있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김채선씨가 딸 김지현씨에게 남긴 편지. 유가족 제공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김채선씨가 딸 김지현씨에게 남긴 편지. 유가족 제공

‘사랑한다’는 말에 자책하고 아리는 마음

엄마는 그날 지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간절히 알고 싶다. 지현의 휴대전화에 걸린 잠금을 풀면 단서가 나올까 싶어서 경찰에게 부탁했지만 경찰은 “다른 업무가 바빠 못하고 있다”며 차일피일 미루더니 “못 풉니다”라며 휴대전화를 소포로 돌려줬다. 엄마는 용기를 내어 딸이 이태원을 향하기 전 친구가 찍은 마지막 동영상을 <한겨레>에 공개하기로 했다.

“혹시 그날 이태원에서 딸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찾고 싶어요. 꼭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영상엔 백설공주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며 잔뜩 신이 나 사과를 흔드는 지현의 모습이 담겼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이 동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딸을 보면 왠지 마음 한쪽이 아렸다. 연년생 남매를 키워야 했던 엄마는 지현이 안아달라고 보챌 때도 우는 남동생을 먼저 챙겨야 했다. 어릴 때 지현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해 “사랑한다”는 말이 입에 붙은 게 아닐까 자책했다. 하지만 정작 지현은 엄마 아빠에게 더 잘하지 못한 것을 속상해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엄마 생일을 맞아 가족들은 처음으로 ‘카라반’(차량형 숙소)이라는 곳에 갔다.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온 카라반을 보고 “참 좋겠다”고 했는데 지현이 그걸 귀담아두고 예약했다. 막상 가보니 시설은 형편없었고 난방이 되지 않아 추웠다. 지현의 친구는 장례식에서 엄마를 안으며 “지현이가 엄마 아빠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고생만 시킨 것 같다고 죄송해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울음을 터트렸다. “절대 미안해하지 말라고, 엄마 아빠한테는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빠는 후회가 많다. 2018년 제주도에 발령이 났을 때 지현은 아빠랑 함께 있고 싶다며 제주도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한라산, 마라도, 우도를 함께 돌아다녔지만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만 든다. 아빠는 그 아쉬움을 담아 편지를 썼다. “항상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했던 우리 딸. 엄마 아빠 가슴속에는 항상 우리 지현이가 남아 있어. 보고 싶어도 꼭 참고 기다려줘.”

김가윤 <한겨레> 기자 gayoon@hani.co.kr

*동영상과 사진 속 김지현씨를 이태원 현장에서 목격하신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gayoon@hani.co.kr로 연락을 주시면 가족분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 김지현씨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지현씨에게 남긴 편지

□ 엄마

너무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생각해보니 참으로 열심히 살다가 갔네. 한라산 등반에, 마라톤도 여러 번 완주하고, 자기 계발 유튜버 영상 올리기, 미술관 관람 전시회, 등산, 서핑, 청주시립미술관 홍보서포터즈 등. 매일 다이어리에 일기 형식으로 일과를 적고 빼곡한 일정을 소화했으니 얼마나 바쁘고 힘겨웠을까? 버킷리스트 항목도 너무나 많이 남아 있고 그중에 하나인 해외여행을 못 가본 것이 얼마나 아쉽고 원망스러웠을까?

지현아 하늘나라에서는 여행도 많이 하고 싶은 일 마음껏 다 하고 고통 없는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가 다시 만나자.

엄마, 아빠는 너를 이제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프고 힘들지만, 너를 보내기 위해 노력 중이야. 사랑하는 우리 딸 지현아. 너는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어. 지현아 그동안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 지현아 너무나 사랑하고 보고 싶다. 그립고 또 그리운 사랑스러운 우리 딸 지현이에게.

2022.12.24 엄마가


□ 아빠
우리 딸 지현이에게 편지 한장 보낸 적이 없는 무뚝뚝한 아빠가 우리 지현이에게 처음 편지를 쓰는구나. 네가 떠난 후 엄마, 아빠는 우리 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허망함으로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른단다. 엄마가 원래 눈물이 많은 거 너도 알지! 요즘도 엄마는 수시로 네 방에 들어가서 눈물 한 번씩 쏟고 나온단다.

항상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했던 우리 딸. 네 꿈을 활짝 펴도록 도움을 주지 못해서 아빠는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2018년에 아빠가 제주도 발령 났을 때 지현이는 아빠 제주도 있을 때 신나게 제주 여행한다고 한 달간 셰어하우스에 있으며 한라산 등반, 마라도, 우도 등등 많이도 돌아다녔지. 그때 아빠가 시간 좀 더 내서 우리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되는구나. 하지만 우리 주말에 만나서 많이 돌아다녔지. 덕분에 그때 함께 찍은 사진, 동영상을 남겨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 가슴속에는 항상 우리 지현이가 남아 있어. 보고 싶어도 꼭 참고 기다려줘.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지현아 사랑해.

□ 동생
저희 누나는 저에게는 까칠하면서 남들에게는 따뜻한 누나였습니다.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으면 저에게 까칠하고 예민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모습이 누나가 하늘에 가고 나니 누나의 애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항상 누나는 남들한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격증 준비도 열심히 하고, 항상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누나였어요. 그리고 누나가 대외적인 활동도 많이 해서 지인들도 많고…. 그런 누나 모습을 보면서 본받고 싶고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누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누나가 날벼락처럼 하늘에 갔지만 내가 누나 몫까지 열심히 살아서 부지런히 효도하면서 열심히 살려고요! 누나 하늘에서도 우리 가족 보면서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동생이.

□ 과외 선생님
지현이는 수학 공부방 선생으로 만난 학생이었다. 처음부터 밝고 싹싹하고 수업할 땐 호응도 잘해줘 가르칠 맛 나는 학생이었다. 수업시간보다 일찍 온 날엔 우리 딸이랑 공기놀이도 해주는 다정한 언니 노릇도 했고 간식을 해주면 스스럼없이 설거지도 하는 가족 같은 학생이었다.

워낙에 너무 착해서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손해만 보는 아이라 얘기하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해서 같이 울기도 하고 같이 분해하기도 하는 진심으로 아끼는 학생이었다. 이 사회가 정의롭기만 하다면 지현이 너 같은 아이가 정말 잘 되고 잘 살아야 한다고 자주 말할 정도로 진심 20년 넘게 내가 가르쳤던 모든 학생 중 가장 잘 되길 바랐던 학생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에 열을 올리며 시키지 않아도 수학교재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처음에는 빨간 볼펜으로 그다음엔 파란 볼펜 다시 빨간 색연필 다시 노란 형광펜 또 초록 형광펜으로 풀어서 틀렸던 문제는 색깔을 달리하면서 매겨가며 예닐곱번씩 끈질기게 풀고 또 풀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며 공부를 했다.

지리교육학과에 합격하고 선생님 덕분이라고 인사까지 챙기던 우리 착한 지현이. 흥과 끼도 많아서 춤도 노래도 시키면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던, 별거 아닌 농담에도 같이 깔깔거리며 웃고 힘든 속내 털어놓으면서 울다가도 금방 다시 씩씩하게 털어내던 지현이.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읽지 못할 걸 알지만 지현이에게 카톡을 남겼다.

내 최고의 학생이었다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행복하라고.

□ 친구 이○○
참사 이후로 지현이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뉴스에서 참사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는 사람들에게 화나고 세상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그리고 가족분들의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같이 아파하고 슬퍼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지현이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미안해, 기억할게 기획연재 컷

미안해, 기억할게 기획연재 컷

<한겨레21>은 참사 한 달째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21>은 기록한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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