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하는 동안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2018년 여행을 떠나기 전 쓴 일기장에서)
2023년 4월1일 오후 경기 고양의 한 봉안당에서 최다빈씨를 기억하기 위해 모인 가족을 만났다. 부모님, 8살 터울 오빠·5살 터울 언니는 매주 이곳을 찾고 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다빈씨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 어떻게든 웃겨줄 것만 같다.
다빈씨는 3년 전 독립해 언니와 함께 서울 송파에서 살았다. 경기 고양에 있는 본가(부모님 집)에 살 때도 자기 침대가 따로 있으면서 꼭 언니의 싱글 침대에서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잠들곤 했다. “iOS 앱 개발자로서 자부심과 열정이 많았어요. 새로운 걸 배워서 애플리케이션(앱)에 적용해보는 걸 놀이처럼 재밌어했죠. 회사에서 워크숍을 할 때는 ‘포켓몬GO’ 게임 하는 것처럼 보물찾기 앱을 직접 만들어 보물을 숨겨놓고 직원들이 앱을 보며 찾을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어요. 앱 기획부터 개발까지 직접 해보자며 디자이너, 서버 담당 등 각 분야 친구를 모아 사이드 프로젝트를 준비하기도 하고, 퇴근 후에 개발자인 회사 동료와 스터디할 정도였죠.” 언니 최다정(31)씨가 말했다.
다빈씨는 퇴근 후 크로스핏·골프·러닝을 모두 소화할 정도로 운동에 열심이었다. 2022년 10월23일 춘천마라톤대회에 처음 참가해 10㎞ 20대 부문에서 ‘50분03초’ 기록으로 17위를 차지했다. 아버지 최현(65)씨가 휴대전화에서 다빈씨가 마라톤 직전 준비운동할 때 사진을 내보였다.
“다빈이는 우리 집 기둥이라고 했거든요. 나머지 네 식구가 모두 운동을 안 좋아했어요. 가족들은 다빈이를 보고 ‘유전자 변이 성공’이라고 했어요. 집에 운동기구를 사다놓고 턱걸이를 했어요. 우리 집이 3층이에요. 다빈이는 자전거를 번쩍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어요. (참사 당일 이태원에 함께했던) 친구들도 다빈이가 이런 일을 당했을 거라 생각 못했다’고 그래요. 운동도 잘하고 힘도 세니까 분명히 밖으로 나왔을 거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튼튼했어요.” 다빈씨 어머니 정미경(62)씨가 말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친 2017년 12월 다빈씨가 가족들에게 휴학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가 퇴직을 앞둔 상황이라는 점 등 때문에 부모님은 반대했다. “취직하면 평생 일할 텐데, 1년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내 뜻대로 살고 싶어요.” 다빈씨는 돈을 모아 그해 5∼9월 유럽·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2022년 10월14일 금요일, 갑각류 음식을 좋아하는 다빈씨를 위해 꽃게찜이 상에 올랐다. 매주 본가에서 저녁을 했지만 그다음 주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마지막 가족 식사였다.
참사 2주일 뒤인 2022년 11월12일 오후 1시 오빠 최휘로(34)씨가 결혼식을 올렸다. 대사를 치를 정신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라 예정대로 이뤄졌다. 야외 결혼식인데 비 예보가 있었다. 휘로씨는 걱정하는 가족에게 “다빈이가 내 결혼식에 비가 오게 내버려두겠어”라고 했다. 다빈씨는 ‘날씨 요정’이었다. 다빈씨랑 다니면 날씨가 늘 좋았다. 비 예보와 달리 결혼식 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그러더니 결혼식이 막 끝난 오후 3시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빈이가 눈물을 흘릴 때면 통통통통 흘렸어요. 그날 빗방울이 꼭 그렇게 떨어지더라고요. 곧 비가 억수로 쏟아졌어요.” 엄마가 손가락 끝으로 눈가를 두드리며 말했다.
결혼식 일주일 뒤 휘로씨가 답례 떡을 가지고 본가에 오자 엄마가 물었다. “이거 웬 떡이야?” “결혼식 때 맞췄던 거야.” 엄마는 아들의 결혼을 기억하지 못했다. “무슨 결혼식?”
“저는 제가 지극히 정상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자각했어요. 정신적으로 뭔가 뻥 뚫렸나보다….”(엄마)
“그때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아요. 멍한 상태예요. 기억력도 없어지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아빠)
29일? 30일? 다빈씨가 세상을 떠난 건 언제일까? 어머니가 2022년 10월29일 밤 11시35분까지 기록된 다빈씨의 애플워치 맥박을 보여줬다. ‘분당 69회’라는 정상 맥박이 기록돼 있다. 그런데 그 후 애플워치가 뜯겨나갔다. 경찰이 “신고부터 하라”며 아직 숨이 붙은 사람들까지 모두 체육관으로 이송해간 밤이었다. 10월30일 새벽 4시 다빈씨는 숨을 거둔 채,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담요에 돌돌 말린 채 의정부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인근 병원에 병상이 넉넉했지만 희생자들은 같은 시각 평택·천안·의정부 등 43곳으로 나눠 이송됐다.
새벽부터 아빠·오빠가 다빈씨의 행방을 찾아 경찰서·동주민센터·실내체육관·병원을 돌았지만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다빈씨가 의정부에 간 사실도 동주민센터 직원이 처음엔 모른다고 했다. 다빈씨 친구들이 울면서 “신고한 지 12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신원 파악이 안 된 거냐”며 소리치자, 한쪽으로 불러 ‘절대 내가 알려줬다고 하지 말라’며 말해줬다. 의정부에서 시신을 옮겨올 땐 “정부가 다빈이를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하고 있는 느낌”(오빠)이 들었다. ‘검시필증’을 내줘야 할 의정부지검 검사가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5시간 넘게 끄는 바람에 밤 9시가 넘어서야 집 근처 병원으로 다빈씨를 데려올 수 있었다.
다빈씨 가족은 지금까지도 누가 왜 일련의 의문투성이 일을 지시하고 벌였는지 정부로부터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다빈씨 가족은 반년째 그날 일들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스마트워치가 끊어진 밤 11시35분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아이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가족은 알고 싶다. 그 시간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는 정부의 말이 답답하다. “처음엔 ‘뭔가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있었겠지, 나중에 소상히 우리에게 설명해주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국정조사 뒤에도 여전히 의문투성이예요….” 오빠 휘로씨가 말을 잇지 못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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