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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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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데이’는 2002년에 시작됐다

우리 안의 극우 29. 온라인 극우의 계보 일베 이전 넷우익에서 자란 극우 밈과 혐오 담론
등록 2026-07-02 20:55 수정 2026-07-0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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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에 스타벅스가 진행한 ‘탱크데이’ 마케팅. 스타벅스 갈무리

5·18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에 스타벅스가 진행한 ‘탱크데이’ 마케팅. 스타벅스 갈무리


뉴라이트가 한국 극우에 끼친 담론적 영향은 컸다. 하지만 사회운동이자 정치세력으로서는 한계가 명확했다. 크게 두 가지 점에서다. 첫째, 과거사에 치중함으로써 당면 현안에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둘째, 지나치게 학계 인사에 편중돼 대중적 확장성이 낮았다. 담론은 계몽적이고 조직은 동원적이었다. 핵심 인사 대부분이 장노년층에 속하며 스타일과 문화가 보수적이다. 젊은 세대를 향한 소구력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극우파 내부에서 자기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뉴라이트의 이런 점을 크게 부각했다. “지금은 민생 이슈로 승부 봐야 되는데,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게 이거(과거사)밖에 없다.”(제1615호 참조)

앞서 한국의 극우는 크게 두 방향에서 작동한다고 밝혔다. ‘위에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이 그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는 ‘우리 안의 극우’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다. 더 구체화하면 이렇게 풀어쓸 수 있다. “극우 정치는 극우 정치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유권자, 즉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권력 동학이며, 한국의 극우화는 위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이 동시 발현하고 상호작용한 결과이다.”(제1576호 참조)

뉴라이트는 지식인 엘리트가 주도한 운동이기에 큰 틀에서 ‘위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에 해당한다. 극우 개신교 네트워크 역시 목회자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극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치 팬덤’이 대표적 예이긴 하지만 이는 좌·우파 모두에 존재하는 현상이다. 극우 가운데 아래서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사례는 없을까?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에 등장한 이른바 ‘넷우익’ 유형의 극우 커뮤니티들이 그것이다.

 

일베는 외계에서 오지 않았다

 

‘넷우익’(ネット右翼)이란, 일본의 2ch(현 5ch)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혐오표현과 극우 담론을 공유하고 유포하는 무리를 통칭하는 용어다. 넷우익에서 출발해 일본 최대 극우단체로 성장한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4chan’이나 ‘트루스소셜’(Truth Social), 한국의 ‘디시인사이드’ 일부 게시판,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에펨코리아’(펨코) 등이 유사한 성격을 보인다.

온라인 극우 담론에 대한 많은 분석은 일베, 디시인사이드, 펨코 등 문제가 된 특정 커뮤니티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지점은 극우 담론의 주류화 과정과 맥락이다. 특히 극우 담론이 어떻게 온라인에서 주류가 될 수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위로부터의 극우’와 ‘아래로부터의 극우’는 분리돼 따로 발달한 게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온라인도 마찬가지다. 일베가 처음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많은 이가 ‘민주주의가 성숙한 대한민국에 어떻게 저런 패륜적이고 극단적인 극우가 나타날 수 있느냐’며 경악했다. 그러나 일베는 외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일베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온라인 세계에서는 이미 ‘위와 아래에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이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를 보자. 스타벅스코리아는 2026년 5월18일, 판촉 이벤트를 공개한다. 그런데 마케팅 문구가 ‘책상에 탁! 탱크데이’였다. 누가 봐도 그것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학살한 계엄군의 탱크, 그리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사실 은폐를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내용을 연상시켰다. 당연히 엄청난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은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를 경질하는 등 수습에 나섰고, 며칠 후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게다가 사과문에 들어간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이란 문구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다른 해석’을 환기함으로써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기 충분했다.

 

극우 밈, 음지에선 이미 주류

 

많은 언론과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이 사건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주 정용진이 일상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극우 성향과,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조직문화가 직접적인 배경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이 사건은 온라인에서 주류가 된 ‘극우 밈’이 오프라인의 공적 영역으로 ‘범람’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원래 밈(meme)은,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gene) 단어에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를 합쳐서 ‘비물질적 유전자’라는 의미로 만든 조어다. 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생산·확산·모방되는 문화적 유행을 통칭하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잘 알려진 극우 밈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운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의 관을 비유한 ‘홍어택배’ 등이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어떻게 온라인의 음지에서 루저들끼리 은밀히 공유하는 표현이 버젓이 양지로 나올 수 있느냐”고 분노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부질없는 한탄이다. ‘음지’와 ‘비주류’에서 완연한 주류가 된 다음에 향할 곳은 ‘양지’와 ‘주류’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극우 밈이 ‘비주류의 주류’가 되는 상황을 외면하거나 방치하다가 주류화·공식화되면 그제야 분노하며 사과를 요구해본들, 대증요법이거나 사후약방문에 그칠 뿐이다.

극우 밈의 근본적 문제는 자극적인 표현에 있는 게 아니라 혐오·차별 인식에 있다. 비주류 영역에서 그런 인식이 공유돼 놀이화·일상화되고 나면, 표현이나 어휘가 아무리 순화돼도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폄훼하고 무력화하는 극우의 ‘독성’은 제거되지 않는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의 극우 정치는 그렇게 방치된 비주류 영역에서 혐오와 차별의 에너지를 마음껏 키운 다음, 표현과 이미지만 온건하게 다듬어 주류 정치에 안착했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의원. REUTERS 연합뉴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의원. REUTERS 연합뉴스


 

극우는 어떻게 악마의 얼굴을 지웠나

 

정치학자 도나텔라 보난싱가는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 전 대표 마린 르펜의 정치 전략을 ‘탈악마화’(de-demonisation)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1 르펜은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친근하고 가족적인 이미지, 그리고 프랑스 여성의 안전을 걱정하는 여성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이 과정을 통해 아버지 장마리 르펜 시절부터 이어져온 과격하고 폭력적인 극우 이미지를 상당 부분 탈색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례의 함의는 명백하다. 주류 영역에 극우적 표현이 침범하지 못하게 막는 데 집중하는 ‘방화벽’ 전략만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극우 밈 같은 특정 표현의 주류화를 차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극우화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흔히 극우화의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곤 한다. 큰 틀에서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늘의 극우화를 거의 해명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불평등이 덜한 사회, 예컨대 북유럽에서 왜 극우 정치가 그토록 강성한지부터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극우화는 싫든 좋든 지구적 규모의 사회변동이다. 정치적 배경과 경제적 배경은 물론이고 그와 연동된 감정적 배경까지 두루 살펴야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극우의 구심력이 어떻게 발생·강화·소멸·이동했는지를 통시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특히 공론의 중심축이 디지털 미디어로 대거 이동한 21세기의 극우 현상에서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와 그 담론의 역사적 맥락과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분석하는 것은 필수 과제다.

 

2002년 대선, 우파의 온라인 각성

 

2002년은 한국의 극우, 그리고 넷우익의 역사에 결정적 변곡점이었다. 새천년민주당의 군소 후보 중 하나였던 노무현은 당내 경선에서 기적 같은 돌풍을 일으키며 끝내 대선 후보가 되었고, 결국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까지 꺾으며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생각지도 못한 패배에 한나라당을 비롯한 범우파 진영은 실망을 넘어 패닉에 빠졌다. 대선 직후,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이던 김형오는 어느 기고문에서 선거 패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권력을 창출하는 핵심 미디어로 87년 대선에서는 광장의 확성기가, 92년 대선은 신문이, 97년 대선은 TV가, 2002년 대선에서는 인터넷이 부각되었다. 인터넷과 네티즌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패인이었다. 어차피 20·30대 네티즌은 투표율이 낮기에 인터넷 열기와 실제 상황은 다를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상식과 판단을 뒤집어버렸다. 진짜 일을 낸 것이다.”2

대한민국 현대사에 전례가 없던 민주당의 연속 집권은, 역으로 한국 우익보수의 전례 없는 각성과 결집을 불렀다. 2003년 3월1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반핵반김정일·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는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의 서막이었다. ‘온라인 여론전에서 이대로 밀리면 영원히 집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파의 정치적 위기감은, 이른바 ‘온라인 애국우파 양병설’로 전환돼 우파 인터넷 매체 붐으로 이어졌다. 신혜식이 창간한 극우 매체 ‘인터넷 독립신문’ 사무실이 서울 여의도순복음 강남교회에 있었다는 사실은, 극우개신교계가 넷우익의 충실한 후원자이자 연대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3

 

 

일베 이전, 혐오의 원형들

 

이런 흐름 속에서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특정 영역이나 의제에 집중하는 영역 특화형 넷우익들이 자생적으로 출현했다. ‘다문화정책반대’ ‘훌리건천국’ ‘한류열풍사랑’ 다음카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모임’ ‘외국인노동자대책 시민연대’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노동자에 의한 피해자 모임’ 등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다문화정책반대’는 다문화주의 반대에, ‘훌리건천국’은 학벌주의 서열화 및 지방대 혐오에, ‘한류열풍사랑’은 이른바 ‘국뽕’ 및 혐중 조장에 특화돼 있었다. 이들 커뮤니티 상당수는 2026년 현재 활동이 저조하거나 소멸한 상황이지만, 일베가 2010년대 중반 한국 넷우익 담론의 주류가 되기 전까지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곳이다. 요컨대 이 커뮤니티들은 무슬림 혐오, 중국 혐오, 지방 혐오 등 오늘날 공론장을 잠식한 각종 혐오표현의 기원이자 일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일베 이전의 넷우익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비교적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희성과 주목경쟁의 특성이 과도한 일베에 비해 논리와 동기를 포착하는 데 이점이 있다. 다음회부터는 ‘다문화정책반대’ 다음카페를 중심으로 넷우익 서사와 그 담론적 특징을 살펴본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D. Bonansinga, ‘Visual de-demonisation: A new era of radical right mainstreaming’, The British Journal of Politic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27(2), 2024

2. 김형오, ‘한나라 패인은 인터넷 대책 부재’, 오마이뉴스, 2002년 12월29일

3. 배진영, ‘김성광 강남교회 담임목사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 월간조선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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