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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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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받은 서울청 무죄, 현장 뛴 용산서 유죄

대형재난에 개인 과실 법리 적용, 상급자 책임 입증 한계…규범적 의무 적용 필요
등록 2024-11-08 22:11 수정 2024-11-09 15:54
이태원 참사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오른쪽 빨간색 넥타이 맨 이)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으며 서울서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오른쪽 빨간색 넥타이 맨 이)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으며 서울서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한 사람이 잘못해도 전체적으로 구조에 실패할 수 있는 대형 참사의 특수성을 고려 못한 판결이다. 이런 논리면 지휘부가 ‘정보가 안 들어와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핑계 댔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2023년 11월2일, 세월호 구조 총책임자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무죄를 확정받자 이정일 세월호 태스크포스(TF) 변호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법원은 ‘세월호 선장과 현장 구조자 설명이 충분치 않아 해경청장이 구체적으로 재난을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보고자 입만 쳐다본 책임자의 소극적 태도는 문제 삼지 않았다.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직원 보고에만 의존할수록 면책받는 논리가 이태원 참사에 그대로 적용될 거란 우려가 나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24년 10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고 당시 경찰 배치 권한이 있던 유일한 기관의 수장이다. 현장에 안 가보고 문자메시지로만 상황을 보고받은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유죄를 받은 이는 사고 전날 현장에 직접 나가 인파 밀집을 눈으로 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서 관계자들뿐이다.

개인 업무 과실로 해를 입혔을 때 적용하는 법리(업무상과실치사상)로 대형 재난을 바라보니 상급자의 유죄 판단이 지나치게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형 재난에서 ‘윗선’에 책임 지울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한겨레21이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두루 들어봤다.

‘윗선’ 면죄부, 핵심은 ‘맡은 일 범위'만 따지는 법

일하는 사람에겐 저마다 맡겨진 업무가 있다. 이를 어기고 업무를 소홀히 해 누군가를 다치거나 죽게 했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법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이다. 개인이 평상시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인데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놓치면 과실로 인정된다.

실수라는 개념이 워낙 주관적인 까닭에, 판사는 까다로운 요건을 둔다. 우선 업무상 과실을 따지려면 일반적·추상적 의무가 아닌 구체적·직접적 의무를 콕 집어야 한다. 재난을 못 막은 책임을 지우려면 재난 예방이 애초에 그 공무원의 평소 업무였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다 피고인의 과실이 △사건 결과에 핵심적으로 기여해야 하고(재난과의 인과성) △본인이 재난 가능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예견 가능성) △그가 달리 처신했다면 재난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음(회피 가능성)을 모두 증명해야 죄가 인정된다. 

문제는 이런 논리를 대형 재난에 적용했을 때다. 재난을 예측할 수 있으려면 현장 가까이 있어야 한다. 재난 예방이 자기 업무가 되려면 평상시 재난 위험을 구체적으로 알고 대처해야 한다. 보고만 받는 자보다 실무를 한 자가, 안전에 무심한 자보다 위험을 적극 파악한 자가 형사재판에서 더 불리한 이유다.

 

소극적일수록 죄를 벗기 유리하다

 

예컨대 법원은 ‘참사 당일 현장에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은 서울청장 잘못’은 묻지 않은 반면 ‘기동대 배치가 안 될 걸 아는데도 대처가 미흡했던 용산서장 잘못’은 물었다. 또 ‘112신고 코드 관리를 안 한 서울청 112상황팀장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반면, 현장에 나가 인파를 통제하고 ‘차도 위로 사람을 밀어올리라’고 지시한 용산서 상황실장 잘못은 문제 삼았다. 개인이 ‘인식해야’ 과실이 성립하고 처벌도 가능하다는 법리가 상급기관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용산구청 관리자들이 책임을 벗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용산구청장과 부구청장, 안전건설교통국장과 안전재난과장 중 아무도 현장에 가거나 시시티브이(CCTV)를 확인하지 않았다. 구청장과 부구청장은 단체대화방에서 사진만 받았고 국장은 개인 약속으로 음악회에 참석했다. 과장은 술 약속으로 만취해 사태 파악도 못했다. 공무원들의 집단적 안전 불감증은 도리어 ‘위험 예측이 어려웠다’는 변명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사진만으로는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압사사고 발생 임박 상황이었다고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매뉴얼에 ‘압사' 명시 안됐다며 빠져나간 용산구청

 

매뉴얼의 구체성도 양자 운명을 갈랐다. 경찰의 ‘혼잡 경비 매뉴얼’엔 ‘다중 인파 사고’가, 용산경찰서의 핼러윈데이 보고 문건에는 ‘압사’가 명시돼 있다. 반면 용산구청이 따르는 재난안전법 및 안전관리계획에는 ‘압사’가 특정되지 않았고 ‘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 포괄적으로 적혀 있다. 관련 기관 논의도 소음·공해 대응 위주로 했다. 용산구청이 처음부터 인파 사고를 특정하지 않았으니, 구청 직원들이 이를 예방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 일일이 재난 정의에 열거하지 않아도 재난 예방 기관은 안전사고에 대응해야 한다. 실제로 지자체는 2002년 월드컵 등 지난 수십 년간 사람이 많이 몰리는 축제 때마다 압사를 위험 관리 우선순위로 다뤄왔다. 그저 매뉴얼에 ‘압사’란 단어가 없다고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 테러나 자동차 돌진 등 언급되지 않은 다른 인파 사고의 위험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의 지적이다.

예견 가능성과 짝처럼 맞물리는 회피 가능성, 즉 ‘조처했더라면 결과를 막을 수 있는지’도 마찬가지다. 이를 대형 재난에 적용하면 유죄 입증이 더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 112신고를 총괄해야 했던 류미진 전 서울청 상황관리관은 상황실을 이탈해 하루 종일 개인 사무실에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상황관리관이 잠깐 본인 사무실에 다녀오는 경우는 있어도 상황실에 아예 와보지도 않는 경우는 없었다.”(판결문 중) 정대경 전 112상황실 상황팀장도 이태원에서 반복 접수된 코드0·코드1 신고(최단 시간 내 출동을 요구하는 신고)를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윗선에 제때 보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업무 과실은 죄가 되지 않았다. 재해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고, 이들이 달리 행동했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증명도 부족하다는 이유다.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왼쪽 검은 마스크 쓴 이)이 2024년 9월3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무죄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왼쪽 검은 마스크 쓴 이)이 2024년 9월3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1심 선고에서 무죄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이는 2020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 때 공무원들을 면책한 논리 그대로다. 기소된 공무원 4명이 죄를 면했다. 참사 당시 ‘특이사항 없다’는 보고를 받고 퇴근했거나, 기상특보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거나, 고장 난 재해 전광판 시스템을 방치하는 등 재난 대응에 소홀했던 이들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이 △의무를 다했더라도 피해자가 지하차도 진입 전 위험을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고 △업무상 과실이 있더라도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러 위험 요인이 누적되고 복합적으로 작용해 재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재난 예방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말단부터 최종 책임자까지 모두가 단계별로 자기 역할을 해줘야 해요. 그러지 못해 재난이 일어났다면 각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재발 방지라는 형벌의 형사정책적 효과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정일 변호사가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과실의 공동정범’ 적용

 

물론 업무상과실치사를 적용한 모든 대형 참사에서 윗선이 책임을 벗은 건 아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건설사 직원과 공무원이 함께 처벌된 사례가 있다. 피고인들이 저마다 과실을 범한 결과 재난으로 이어졌다는 ‘과실범의 공동정범’ 논리가 이때 만들어졌다. ‘대형 인명 사고에서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으면 사회적 경각심을 가질 수 없다’는 재판부 의지가 컸고 부실 공사-시설물 붕괴의 인과성도 비교적 입증이 수월했다. 최근 판결 중엔 2024년 1월 가습기살균제 참사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제조·판매사 대표를 과실범의 공동정범 논리로 유죄 판결했다.

하지만 과실범의 공동정범 법리가 갖는 한계도 뚜렷하다. 고의로 범죄를 공모한다면 이해하기 쉬운데, 과실을 공모한다는 논리는 쉬이 이해하기 어려워서다. 또 공범이라면 피고인끼리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거나 모종의 공동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과실범에겐 이런 징후도 뚜렷하지 않다. 앞서 가습기살균제 판결도 ‘제조·판매사가 명시적으로 연락한 정황이 없는데 과실범 공동정범을 적용한 것이 합당하냐’는 지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판사들도 제한적으로만 이 법리를 적용한다.

 

독일 의무범 법리, 규범적 의무 어기면 처벌

 

“과실을 공범으로 한다는 게 사실 논리적으로 잘 안 맞는다. 그래서 판사들이 (공동정범의) 기능적 측면을 도입한 건데, 과실이라는 한계는 여전히 있다. 예견·회피 가능성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면 그 공사를 계획한 사람보다 망치를 두드린 사람이 더 법적 책임을 과중하게 받는 식이다.” 조병선 독일 파사우대학 법대 연구교수의 지적이다.

권한을 가진 자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을까. 독일 형법에서 차용하는 ‘의무범’ 법리를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조 교수는 본다. 경찰공무원법, 재난안전법 등 규범적으로 특정 사무를 하도록 정해진 사람이면 그 규범을 다하지 않았을 때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법리다. 조 교수는 “의무범 논리를 도입하면 개인의 주관적 인식 여부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도 규범적으로 각자가 지켜야 할 의무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시민 재해’ 확대도 방안

 

중대재해처벌법상 ‘시민 재해’를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한때 산업재해도 복잡한 원·하청 구조 탓에 경영책임자의 재해 예방 의무가 면책되는 문제가 있었다. 하청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으로 기소된 서부발전 대표이사가 무죄를 받은 것이 대표적 예다.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져 경영책임자의 안전 관리 의무가 명시됐다. 그러나 시민재해는 여전히 ‘공중이용시설’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이태원 참사도 발생 장소가 골목길이어서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반면 2023년 7월 제방 붕괴로 발생한 오송 참사는 시민 재해에 해당돼 현재 지자체장을 수사 중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신애진씨의 어머니 김남희씨는 한겨레21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기관장은 총괄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방향을 잡는 자리잖아요. 그래서 포괄적 권한이 굉장히 큰 거고요. 그런데 재판 결과를 보면 (법적) 책임은 실무자에 가까운 것만 묻고 있어요. 이게 정말 맞는가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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