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잘했다. 이수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손재주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한마디씩 보탤 수 있다. 학창 시절을 함께한 친구는 “남들이 미술학원에서 그려온 그림을 다 제치고 1등을 차지한” 수연의 그림과 “작은 손톱에 막힘없이 그려온 네일아트”를 떠올렸다. 엄마 이화정(49)씨의 교회 지인 가운데는 수연이 직접 만든 향초를 선물받지 않은 이가 없다. 온라인 영상만 보고 빵과 떡을 척척 만들어냈다. 1999년 엄마는 출산한 뒤 병실에서 눈에 들어온 ‘빼어날 수’ 글자를 담아 수연의 이름을 지었다. 수연은 이름대로 재주도 마음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랐다.
재주가 다기하니 선택지도 많았다. 수연은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하나씩 하나씩 부딪쳐봤다. 2020년에는 플로리스트 1급,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온라인 주문을 받았다. ‘20대 사장님’ 수연은 정성을 쏟았지만, 그 시기 수많은 사람을 덮친 코로나19 유행의 그늘을 비켜갈 수 없었다. “엄마, 폐업도 참 복잡해.” 수연은 실패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코로나19 체온 측정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엄마! 나 됐어!” 2022년 3월 말 대기업 L사 계약직 합격 소식을 듣고 수연과 엄마는 함께 방방 뛰었다.
10월29일이 오기 전까지, 엄마에게 2022년은 “수연이 가장 빛난 한 해”로 기억됐다. 그러잖아도 성실한 수연의 일상이, 더 큰 꿈을 향해 성장하고자 하는 목마름으로 가득 찼다. 겉으로는 차분해도 속은 뜨거운 사람이었다. 직장 업무 관련 주의 사항을 메모한 포스트잇을 가방 곳곳에 붙여두고 출퇴근길에 읽고 또 읽었다. 업무 효율을 높이려고 새벽까지 온라인 강좌를 들었다. “엄마, 나 실수할까봐 걱정돼.” 수연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거운 책임감을 털어놓던 순간, “인사평가 잘 나왔어!”라며 환호하던 순간이 생생하다. 수연은 첫 월급을 받은 뒤 가족 선물은 물론 엄마 친구들 선물까지 살뜰히 챙겼다. “엄마, 이거 (친구들) 주면서 자랑해도 돼.”
수연은 여행을 좋아했지만, 입사 뒤 단 한 차례도 휴가를 쓰지 않았다. 10월에 이르러서야 “(회사에서) 12월20일까지 휴가를 다 써야 한다고 했다”며 엄마와 함께할 여행 생각에 들떴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수연이 떠난 뒤 가족이 발견한 수연의 엑셀 파일에는 그동안 월급을 각종 예·적금, 주택청약저축 등에 알뜰하게 모은 내역, 컴퓨터 자격증 시험과 대학 진학 준비 등 2023년 12월까지 미래 계획이 기록돼 있었다. 언제나 검소했던 수연의 습관을 고스란히 담은 메모도 남았다. ‘(한 달에) 6만원 또는 8만원만 쓰기는 어떨까?’
2022년 10월30일 새벽 2시50분께 경찰 두 사람이 집을 찾아온 순간부터 엄마의 세계는 무너지고 깨어짐의 연속이다. 10월29일 평소보다 일찍 잠든 엄마는 이태원 참사 뉴스를 전혀 보지 못했다. 경찰은 이태원 현장에 수연과 함께 있던 친구의 신고를 받고 집을 찾았다고 했다. 한 경찰은 “말세야 말세”라고 읊조리다, 수연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경찰인지 지자체 공무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차피 현장이나 병원에 가도 (수연을) 찾을 수 없다. (연락이 갈 때까지) 대기하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집에서 기다렸다. 10월30일 오후 1시 마침내 수연이 상계백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연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경찰이 부검 여부를 결정하라고 재촉한 일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부검은 왜 하라고 하는지 의문이 갔지만, (지역에서 이동 중인 수연 아빠와) 상의해 (부검 여부를) 얘기해주겠다고 했는데 전화가 계속 오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다 결정했는데 (당신이 결정하지 못해) 내가 퇴근을 못하고 있지 않냐고 했어요.”
사람과 제도, 국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이태원 참사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인 2023년 2월, 서울노원경찰서는 특수본 결정에 따라 수연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끝낸다는 내용을 담은 ‘불입건 결정 통지서’를 우편으로 집에 보냈다. 경찰이 칭하는 ‘변사자’가 수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힘겨운데, 우편물 수신인은 가족 이름도 아닌 ‘이수연 귀하’로 쓰여 있었다. 딸의 이름으로 온 우편물을 받아든 엄마의 마음이 다시 한번 무너졌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도 전부 모니터링했어요. 모든 사람이 ‘모른다’는 식으로만 답하는 걸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엄마는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딸을 범죄자 취급하는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연의 외할머니(70)도 “(국정조사에서 관련자들이) 미안해하기는커녕 빈정대고 비웃는 태도에서 충격받았다”며 한숨지었다.
엄마는 수연의 장례를 치른 뒤 5개월여가 지난 최근에야 딸의 방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화정씨를 살아내게 하는 힘은 여전히 수연이다. 혹여 엄마가 이태원에 함께 있던 친구를 원망할세라, 수연은 엄마의 꿈에 친구와 찾아왔다. “(생존자) 친구와 수연이 같이 치킨을 먹으면서 즐겁게 웃더라고요. 저한테 다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알고 보니 수연은 친구의 꿈도 찾았다. 엄마와 친구를 모두 다독였다.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수연의 다정한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집에서 키우던 열대어 구피가 수초에 얽혀 죽었을 때 수연은 펑펑 울었다. 엄마가 화분만 남기려고 식물에 물을 주지 않고 마르게 두었는데, 수연은 기어코 식물을 살려냈다.
“딸래미 따라가려고 몇 번이나 가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숨이 다시 쉬어지더라. 수연아. 엄마는 이 세상에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구나.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너에게 갈게.”(엄마가 수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정씨는 수연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아내는 싸움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구급활동 일지’에 기록된 신고 시간은 밤 10시15분인데 출동 시간이 새벽 0시20분인 이유, 참사 현장에서 순천향대병원 임시영안소, 상계백병원으로 옮기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연이 중고로 산 아이폰의 ‘전 주인’과 ‘전전 주인’까지 접촉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등 풀어야 할 의문이 쌓여 있다. 화정씨는 수연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아직 풀지 못했지만, 매일 충전해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10월29일 이수연씨가 이태원의 한 가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속 수연씨를 이태원 현장에서 목격하신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trans@hani.co.kr로 연락 주시면 가족분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우리 딸과 함께한 시간들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어
엄마 인생의 최고였다
우리 딸과 함께 걸을 때는 어깨가 으쓱!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 부러운 것도 없었고 매 순간순간마다 감사가 흘러나왔지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엄마라는 말이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 같아 정말 행복했어
내 인생의 전부였던 너를 따라가려고 몇 번이나 가려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숨이 다시 쉬어지더라
수연아 엄마는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구나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너에게 갈게
수연아 그날 이후로 나는 살아가는 동안 한순간도 널 잊은 적이 없어
여전히 혼자 있을 때면 너와의 추억에 잠겨서 많이 울기도 해.
그리고 자주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을 곱씹어 봐.
수연아 너는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손재주가 좋은 아이였어.
남들 미술 학원에서 그림 그려온 거 다 제치고 1등으로 그림이 학교에 걸리고,
작은 손톱에 막힘없이 그림도 그리고, 액세서리도 만들고, 꽃 시장 가서 사 온 꽃 직접 포장해서 나한테 선물로 주고, 베이킹이며 떡이며 손으로 하는 건 못하는 게 없었지.
손으로 하는 게 꽝인 나는 구경하기 바빴잖아ㅋㅋ
아, 우리 마지막으로 본 날도 나한테 꽃 선물했었잖아. 그때 내가 드디어 좋아하는 꽃 생겼다 그래서 네가 다음엔 그걸로 선물해 준다고 했었는데 기억나? 델피늄!
너 그렇게 되고... 네가 있는 납골당에 들고 갈 꽃 찾다 보니까 델피늄이 너 탄생화더라.
내가 그걸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단순히 친구라는 단어에 묶이기엔 깊고 특별했던 우리였는데... 다시는 볼 수 없음에 서러워서 많이 울었다.
나 결혼하면 부케도 만들어준다 그랬으면서... 왜 이렇게 된 걸까
우리 알고 지낸 14년 동안 비슷한 사건 사고들 겪고 이겨내고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의 삶에 버팀목으로 존재했지.
이런 인연 다시는 없을 거야, 그건 너도 나도 알고 있지.
수연아 너를 만난 건 내게 가장 큰 행운이고 행복이야. 내 삶은 네가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 나를 만나줘서 고마워.
너는 언제나 어디에서든 내 옆에서 나를 믿고 응원할 걸 아는데... 그래도 네가 없이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너무 아득하다.
살아가는 내내 그립겠지.
많이 사랑하고 사랑해 수연아.
수연이에게
안녕 수연아 틈날 때마다 네 생각나기는 하지만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내?
난 아직 네가 없어서 허전하고 조금 적응되지 않은 채 지내는 중이야. 아마 너를 기억하는 친구들과 모두가 그럴 거라 생각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경험, 성장 뭐 하나 소중하고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없더라. 나는 어제도 오늘도 빠짐없이 아직도 어디 있을 것만 같은 너의 안부가 궁금했어. 우리 자그마치 10년 동안 정말 많은 걸 함께했고 약속한 것들도 무수히 남았는데, 더 이상 그 세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게 가장 슬프다. 서로한테 의지하던 게 생각보다 많았나 봐 고맙고 미안한 게 정말 많아.
그때 너의 뒤를 놓치지 말고 잘 따라갈 걸,
인파 속으로 들어가기 전 손이라도 잡아볼 걸,
돈 아끼지 말고 더 맛있는 걸로 먹을 걸,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어둘걸.
마지막까지 함께했으면서 욕심이 많아 아쉽고 후회되는 거 투성이네.
나 혼자만 집으로 돌아와서 미울 수도 있을 텐데, 장례 마치자마자 정말 마지막까지 꿈에 찾아와 인사해 준 게 너무 고맙고 소중했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상상이 돼서 더 괴롭고 마음이 아파. 보기보다 연약해서 개복치라고 자주 놀렸었는데 막상 지켜주지도 못했다 내가. 꿈에서까지 멍청하게 울기만 하느라 제대로 인사도 못해주고 미안해.
거기가 어디든 잘 갔지?
나는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세월이 지나도 너를 추억하려고 해. 당장은 마음이 힘들겠지만 그동안 정말 즐겁고 좋았어서 뭐 하나 잊지 않으려고. 무엇보다 너 바라던 대로 자유로워졌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나랑 친구 해 줘서 고마웠고 꼭 다시 만나자. 나는 네가 진심으로 편안하길 빌어 수연아.
곧 오는 네 생일날 이쁜 꽃 챙겨갈게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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