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기습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탄핵과 체포, 구속을 모두 반대했고, 보수 진영은 결집해 탄핵 반대와 국민의힘 지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윤석열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2025년 1월19일 새벽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부정하며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다. 앞으로 예정된 윤석열 탄핵 재판과 다음 대통령 선거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과연 윤석열의 내란과 그 이후의 혼란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원인이었을까? 이것을 다른 정치체제로 바꾸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거대 양당의 승자 독식 체제가 또 다른 원인이었을까?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는 도움이 될까? 정부를 사실상 지배하는 검찰과 관료 조직을 통제할 방법이 있을까?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의 정치체제와 관련해 온라인 설문에 참여한 시민 456명, 그리고 전문가 16명에게 의견을 들었다.

국회사무처는 2024년 12월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의 모습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했다. 국회사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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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위임받은 권력을 제 것으로 착각하는 권력자에게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회사원 김순덕(57)씨는 “대통령이 순 거짓말만 해서 아주 화가 치밀어오른다. 세상 전부가 본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최은주(57)씨는 “이번 계엄을 보면서 1980년 광주의 5·18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권력자들이 나라를 자기 것인 양 휘두르고 주물렀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신석종(64)씨는 “공부 잘했다는 서울대, 육사, 경찰대 출신들이 권력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약자를 돌보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내란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헌법학)는 “현직 대통령이 무장 군인들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기습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와 헌정에 대한 최초의, 근본적인 공격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공격이었다. 헌정질서가 1987년 이전으로 돌아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이번 내란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왔고 내란을 위한 계엄 가능성도 없어졌다고 봤다. 그러나 이번에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작동하지 않았고, 주요 부대가 모두 동원됐다. 내란은 실패했지만, 한 달 반이 넘도록 수습도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헌법에서 대통령의 계엄권이나 긴급명령권의 발동은 국회가 사후에 통제하게 정해놓았다. 그런데 이번에 위험성이 드러났다. 앞으로 국회의 사전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말 계엄령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번처럼 국회가 즉시 소집될 수 있으므로, 사전 통제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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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0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한 상태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검사를 하다가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대통령실 제공
시민들은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프리랜서 김길지(64)씨는 “우리 대통령제는 중세의 제왕적 통치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이 마치 신에 필적하는 권한을 가진 것처럼 착각한다. 여기에 편가르기 정치까지 더해져 여야가 싸움만 일삼는다”고 말했다. 대학생 차원(25)씨는 “우리 정치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검찰 권력, 승자독식 정치로 이뤄져 있다. 정치인도 주로 서울대와 법조인 출신의 50대 남성이다. 거대 양당이 부자와 대기업 등 기득권을 더 공고히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윤석열의 내란에서 정치체제의 문제점이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다. 계엄 선포권뿐 아니라, 긴급명령권, 행정부 인사권, 법률안 거부권, 대법관·헌법재판관 임명권 등 너무 많다. 또 양당제가 정치 안정이란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대립이 구조화돼 있다. 승자독식 구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권을 갖는 것이 과연 이 시대에 맞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내란은 한국 대통령의 비대한 권한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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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이기도 하고 식물이기도 하다. 권한이 과다하면서도 의회의 통제도 강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난다. 이번 계엄령 선포와 해제 과정도 그랬다. 개헌을 통해 3권 분립형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줄이고 대통령과 의회가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협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가진 ‘지대’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대란 공급이 비탄력적이어서 생기는 초과이익을 말한다. 여기선 대통령이 제공할 수 있는 예산과 공직을 말한다. 이선우 전북대 교수(정치학)는 “한국의 대통령은 입법이나 정책 결정보다 지대 공급 측면에서 강하다. 4천~1만3천 개 정도의 고위 공직과 600조원 가까운 예산을 결정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대통령 당선을 위한 두 정당 간의 극단적 경쟁을 일으킨다. 대통령의 과대한 인사권과 예산권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내란은 제왕적 대통령제, 비대한 대통령 권한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정치학)는 “한국 정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이고, 그 아래 단계에서 어떤 민주주의 체제인지를 정한다. 그런데 이번 내란은 한국이 민주주의 체제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윤석열의 내란은 헌법의 잘못에서 나온 문제라기보다 헌법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자체이고, 대통령제는 그다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장은 “이번 내란은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같은 리더들이 기존 상식이나 합의에서 벗어난 일을 벌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리더나 정당에 민주주의나 기후위기를 맡기기 어렵다. 앞으로 더 많은 어려움이 나타날 것이다.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8일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기독교민주연합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사회민주당 소속 올라프 숄츠 후임 총리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두 당은 메르켈 전 총리의 마지막 임기 때 연합정부를 구성했고, 당시 숄츠는 재무장관을 지냈다. REUTERS
시민들은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정치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 사는 여명진(42) 음악감독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와 지방정부, 시민사회로 분산해야 한다. 국가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연방제인 독일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권력이 실질적으로 분산돼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을 하는 박연길(59)씨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면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조흥수(59)씨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해소하고, 4년 중임제를 도입해 일을 잘하는 대통령에게 더 기회를 줘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2년마다 50%를 교체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고, 국회의원 소환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국회 권한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장석준 전 정의정책연구소장은 “대통령 중심제와 양당제가 한국 정치의 모든 영역에 악영향을 준다.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국회 권한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맡고, 총리가 나머지를 맡는 핀란드식 이원정부제를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도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통령제 선호도가 높으니 국회와 대통령의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라는 상징적 지위로 바꾸고 의회의 입법, 예산, 감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이번에 의원내각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이번에 다당제 기반의 내각제로 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내각을 구성하는 단계부터 정당들이 서로 협력하게 해야 한다. 현재 한국 정치는 대통령과 다수당이 대립하는 ‘분점 정부’ 때문에 일하기가 어렵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장도 “현재는 정책을 대통령실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비서관과 행정관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보다는 정당에서 장차관을 배출하고 그들이 정치와 정책을 책임지는 구조로 가는 게 좋다. 말하자면 의원내각제인데, 정당이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우리가 바라는 나라② 기사에서 양당제, 검찰·관료 중심 국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바라는 나라② 기사 읽기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7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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