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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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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에 취하라, 일상이 당신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경이로움을 인간의 욕구로 본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
자연의 신비 추구하는 ‘전통 생태 지식’ 강조
등록 2025-02-14 22:27 수정 2025-02-16 17:22
대커 켈트너.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누리집

대커 켈트너.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누리집


필경사 바틀비는 성실했다. 묵묵하게 일을 해냈고 감정이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업무를 안 하겠다며 버텼다. “저는 안 하기를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그는 이렇게 짧게 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틀비는 조금씩 시들어가다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내쫓겨난다.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줄거리다.

중년의 그대에게 바틀비는 묘한 공감을 안긴다. 희망 없이 반복되는 일상. 자디잔 업무들이 거듭될 때면 내 인생도 좀스럽고 한심해지는 느낌이다. “저도 안 하기를 택하겠습니다”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오던 때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미래가 없어도,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도 일을 그만두지는 못한다. 퇴로가 없는 개미지옥 같은 중년의 일상, 벗어날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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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신비를 마주하라

이런 막막함을 곱씹는 중년이라면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1962~)에게 귀를 기울여보라. 그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알던 세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신비를 마주하고 경이로움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나요?” 이 질문에 가슴이 막막해진다면 1990년, 보이저 1호가 60억㎞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 사진부터 살펴보자.

우리 삶과 세상 전부인 지구도 우주 전체로 볼 때는 그냥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나에게는 절실한, 치열한 고민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눈으로 보면 티끌보다 못한 것이지 않은가. 어느덧 마음은 한없이 넓고 담담해진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60억㎞ 거리에서 찍은 지구 사진.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1990년 보이저 1호가 60억㎞ 거리에서 찍은 지구 사진.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켈트너는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자주 느끼라고 권한다. 경이로움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거대한 신비를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마찬가지로 경이로움에서 멀어진 영혼은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비틀어져 버릴 테다. 일상에서는 하루에 10분이라도 경이감에 취하는 순간을 만들어보라. 자잘한 일들이 당신의 인생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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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의 벅찬 감동, 즉 경외심을 느끼는 일은 대단하지 않다. 푸른 하늘이나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여유롭게 바라볼 때 어떤 감정이 들던가? 좀처럼 하기 힘든 희생과 헌신,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이겨낸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에 맺히는 뭉클함을 생각해보라. 나보다 크고 거대한 무엇이 주는 묵직한 울림은, 하찮아져만 가던 내 영혼을 다시 다잡아준다. 정신이 쓰러지지 않게끔 ‘튜닝’(Tuning)해준다는 뜻이다. 켈트너에 따르면 경외심은 식욕, 성욕, 수면욕과 같이 우리가 꼭 채워줘야 할 본능이다. 여기에는 진화적인 이유도 있다.

대커 켈트너의 저서 ‘경외심’.

대커 켈트너의 저서 ‘경외심’.


경외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기본 상태의 자기’(Basic Self)로 살아간다. 온갖 걱정과 불안에 싸여 하루하루를 꾸려나간다는 뜻이다. 기본 상태의 자기는 자신만 바라본다.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는지, 무리에서 혹여 밀려나지는 않는지, 계속해서 자신을 남들과 견주며 가늠하고 생각을 곱씹는다. 기본 상태의 자기에게는 좁쌀만 한 위험과 손해도 바위처럼 크게 다가오곤 한다. 남들을 제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날이 서 있는 탓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전체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는,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집단은 강하다. 반면, 자기만 챙기는 자들이 많은 무리는 위기 앞에서 모래성같이 무너져버린다. 인류 진화에서 살아남은 쪽은 당연히 자기보다 큰 전체를 위해 기꺼이 몸 바친 이가 많은 집단이었다. 우리는 이들의 후손이다. 인간 마음에 나보다 크고 고귀한 무엇과 하나가 되고 싶은 ‘본능’이 새겨지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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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한목소리로 많은 사람과 하나가 되어 크게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 대의(大義)는 벅찬 감동을 안긴다. 그 순간에는 하찮고 헛헛했던 내 일상은 스러지고 고결한 가치가 내 가슴에 활활 타오른다. 고립감과 외로움 또한 어느덧 사라지고 없다. 이런 경험이 드물거나 아예 없는 인생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렇듯 나보다 크고 신비로운 무엇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으로 우리 안에 새겨져 있다. 때마다 끼니를 챙겨 먹듯 우리가 일상에서 경외심을 때때로 느껴야 하는 이유다.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경외심은 다른 이들과 하나 되고 싶은 바람에서 그치지 않는다. 켈트너에 따르면, 인류 사회는 ‘전통 생태 지식’(Traditional Ecological Knowledge)에 기대어 있다. “산 좋아하는 이들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등산가들끼리의 공치사만은 아닌 듯싶다. 광활한 들판과 장엄한 산, 드넓은 바다의 풍경을 볼 때 우리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전통 생태 지식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지혜를 일깨운다. 자연의 숭고함과 소중함을 소홀히 대하는 사회는 없다. 인간은 틈만 있으면 대자연을 느끼고 경험하려 한다. 이 또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주라는 어머니 품에서 사람들과 세상을 볼 때 삶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한결 너그러워지며 알지 못하는 것들도 한결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그렇다면 일상이 무거운 망치를 단조롭게 내려치는 듯 버겁고 무의미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년인 그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은연중에 알고 있다.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행복뿐 아니라 불행에도 익숙해진다. 중년은 ‘학습된 무기력’에 길들기 쉬운 시기 아니던가. 고통을 버티는 데 익숙해진 삶이 좋은 인생은 아니다. 삶이 다른 결을 띠도록 일상을 바꿔야 한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하릴없이 매달려서는 안 된다. 검색 알고리즘이 그대를 점점 좁고 자잘한 자신만의 관심사 속에 가둬버리는 탓이다. 당신은 남과 자신을 견주며 더욱더 자신을 비루하게 느끼게 된다. 일상을 박차고 나가 경이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서보자. 하루에 10분이라도 경이감을 느끼는 순간을 만들어보자.

“이 땅의 아름다움과 수수께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 결코 외톨이가 되거나 삶에 싫증을 내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나를 지탱할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이다.” 켈트너가 들려주는 조언이다. 경이감에 휩싸였을 때 세상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다. 뜻 모를 의미를 품은 거대한 수수께끼로 새로이 다가온다. 펼쳐질 가능성에 심장이 뛰던 젊은 시절처럼 경이감은 중년인 그에게도 가슴 벅찬 새로운 인생 과제를 던질 테다.

 

중년에도 인생은 계속 성장해야 한다

죽음은 인생이 던지는 가장 큰 경이로움이다. 우리는 모두 약해지다가 마침내 죽을 운명이다. 애써 외면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중년은 이제 죽음이라는 경이로움에 직면해야 할 때다.

중년의 그대는 성공하지 못했다. 흡족할 만큼 부를 쌓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취와 재산은 오히려 경이로움을 느끼는 데 방해되기도 한다. 가진 것을 잃을까봐 애면글면하는 마음은 크고 신비로운 무엇에 좀처럼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탓이다.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죽음에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깊은 물음을 던지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모두 죽을까?” “나는 왜 살아 있을까?”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이는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비로소 자기가 살아져야 하는 길로 일상을 끌고 나간다. 죽는다는 운명을 따른다는 점에서 인류는 모두 평등하다. 더 많은 명성과 부를 쌓는다 해도 죽음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죽음이라는 경이로움 앞에서 중년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맞는다. “내 삶은 좋은 인생이었나?”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주 일상에서 놓여나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소용없다. 의미는 삶을 꿰는 실과도 같다. 죽음은 내 삶이 과연 의미 있었는지, 살아갈 나날이 가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되묻게 한다.

시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감독은 작전타임을 외친다. 선수들은 숨을 고르며 경기의 전체 흐름을 살피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풀어갈지를 가다듬는다. 인생의 중년에는 작전타임이 많아야 한다. 세세하고 복잡한 일상 문제에 매달릴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는 좁아진다. 어쩌면 바틀비처럼 우리 역시 주저앉아버릴지 모른다.

켈트너는 대자연, 예술, 강인함과 용기와 친절 같은 심리적 아름다움(Mental Beauty) 등,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여러 요소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자연과 자주 접하기를, 그리고 틈날 때마다 미술관이나 도서관 등에서 위대한 지혜와 만나기를 권한다. 경이로움도 노력하는 만큼 느끼는 법이다. 중년에도 인생은 계속 성장해야 한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백철학: 교사이자 철학박사인 안광복이 오십 대에게 철학을 처방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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