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22일 당시 대통령 윤석열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화물트럭 등을 타고 상경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을 경찰이 막았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서울 관악구 남태령고개 인근에 모여 경찰에 철수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 의결(2024년 12월14일), 체포(2025년 1월15일), 구속(1월19일), 그리고 기소(1월26일). 시민들의 분노가, 시민들의 결집이 만든 진전이다. 하지만 분노만이 시민들이 품은 감정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은 서로 손을 맞잡고 ‘윤석열 퇴진’을 함께 외치는 동료 시민이, 향후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을 때 내 손을 놓고 차갑게 돌아설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존재한다. 여성, 성소수자, 농민, 노동자, 장애인, 어린이·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그 두려움은 크다. “침묵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의 말을 소수자 시민은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광장과 일상을 넘나들며 말하고, 행동하고, 울부짖고 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지평을 더 넓히기 위해 소수자 시민 10명의 심층 인터뷰를 두 차례에 나눠서 전한다.
최별하(22)씨는 2024년 12월26일 헌법재판소 근처 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불안장애와 공황장애,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갖고 있습니다. 현역 시절엔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망쳐 부모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렸고, 재수까지 병행해 들어간 대학 생활이 버거워 학사경고(성적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받는 경고)까지 받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실패자’입니다. 돈도 안 되는 미술을 전공하며 방황하는 20대, 시골 촌구석에서 자라 서울이 어색한 촌사람….”
별하씨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실을 고백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정신질환인을 위험하고 이상한 사람, 무능력하고 열등한 사람으로 낙인찍은 편견이 두려웠다. 충남 천안시에서 틈날 때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 국회 앞, 광화문광장, 남태령, 대통령 공관 앞에 가는 본인 행동이 정신질환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별하씨는 대도시에서의 삶, 좋은 학벌, 완전무결한 몸을 사회적 성공 기준으로 떠받드는 사회 주류가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저처럼 두려워 (말과 행동을) 주저하시는 분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 말하고, 보여주러 왔습니다. (…)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를 누가 감히 ‘실패자’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별하씨는 최근 ‘한화 농성장’을 방문했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인 한화오션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2025년 1월7일부터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농성하는 현장이다. 별하씨를 움직인 건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특히 미래 여성 노동자 입장에서 결코 ‘남 일이 아니다’라는 자각이다. 별하씨는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성별임금격차(남성 월평균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여성 월평균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 문제를 포함한 고용 전 과정(채용, 인사, 교육훈련 등)의 성차별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가 2024년 12월22일 서울 관악구 남태령고개 일대 집회 현장을 떠나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대통령 공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힘들게 투쟁하지 않아도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를 보장받고, 노동자 권리를 탄압하거나 인권을 짓밟지 않는 사회, 현재 ‘사회적 소수자’라 불리는 시민들이 더는 ‘소수자’로만 불리지 않고, 같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 불리는 사회를 바랍니다. 또 누구든지 집 없이 추운 겨울 눈밭 위에서 잠을 청하는 일이 없길 바라요.”
여성 노동자 조민주(27)씨에겐 모교인 동덕여대가 학교의 일방적인 남녀공학 전환 반대를 외치며 단체행동을 했던 학생들을 고소한 일이 큰 충격이었다. 분노한 민주씨는 2024년 12월27일 종로구 혜화역 근처에서 열린 동덕여대 규탄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집회에서 마스크와 목도리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느꼈다.
“광화문광장 집회 같은 곳에서는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혜화역 집회 때는 달랐어요. 집회 현장을 지나는, 학생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우릴 조롱했어요. 혹시라도 내 얼굴이 찍힐까봐 무서웠죠. 그 긴장감과 불안감을 그때 같이 계신 많은 분도 느꼈을 거예요.”
민주씨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현 국회의원 이준석과 손잡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단언한 윤석열의 당선을 처음부터 반대한 사람이다. “흑인 공동체에서 성차별주의가 병적인 수준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흑인 남성이 아니라) 바로 흑인 여성”이라 말했던 로드의 말을 빌리자면(책 ‘시스터 아웃사이더’), 성차별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하는 사회 구조가 폭력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처럼 권력을 가진 비(非)소수자가 아니라 바로 피해 당사자인 소수자다.

2025년 1월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공관 인근에서 은박 담요를 덮은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소수자일수록 나를 드러내는 일은 어렵다. 비난과 멸시, 외면이 두렵다. 늘 아우팅(타인이 성소수자 의사에 반해 그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을 걱정하며 매 순간 불안을 느끼는 성소수자 시민들 일상은 그래서 위태롭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대학생’ 윤예원(23)씨는 젠더퀴어(성별이분법을 벗어나거나 거부하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간절히 바란다. “저도 친하게 지냈던 사람한테 ‘네 성 정체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적이 있어요. 새로 만나는 사람 중에서도 성소수자 혐오자가 있을 수 있잖아요. 늘 두려워요. 그 사람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니까 긴장하게 되고…. 살면서 숨겨야 하는 것이 상당히 많아요.”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혼인·혈연·성별과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비혼 동거가족에게 법적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란봉투법’(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이유로 사업주가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못하게 막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도 “현대 사회에 필요하다”고 보는 예원씨. 예원씨는 2024년 12월11일 부산 서면 집회에서 한 공개 발언이 화제가 된 청년 여성이 드러낸, ‘성노동자’ 여성(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겪는 성착취 인권침해 문제도 해결되길 바란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대상은 피해 여성이 아니라 그런 성착취 구조를 만든 자본과 포주예요.”
이처럼 다양한 시민이 모이는 광장은 이해의 장이다. 잘 몰랐던 서로를 배울 기회다. 차이는 분열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힘을 벼려낼 수 있는 강력한 연결점이자 원료”(로드)다. “집회 때 여러 시민 발언을 많이 들어요. 이런 연대가 제게 큰 감동이고 위로가 돼요.” 민주씨는 농산물값이 아무리 올라도 농민들이 살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에 관한 이야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광장에 선 시민 10명 심층 인터뷰② 기사에서는 기후·생태 문제를 이야기하는 농민, 청소년, 산간지역 주민과 장애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기사 링크 주소 :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7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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