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나 제주항공기 참사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탄핵과 체포, 구속을 모두 반대했고, 보수 진영은 결집해 탄핵 반대와 국민의힘 지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윤석열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2025년 1월19일 새벽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부정하며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다. 앞으로 예정된 윤석열 탄핵 재판과 다음 대통령 선거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과연 윤석열의 내란과 그 이후의 혼란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원인이었을까? 이것을 다른 정치체제로 바꾸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거대 양당의 승자 독식 체제가 또 다른 원인이었을까?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는 도움이 될까? 정부를 사실상 지배하는 검찰과 관료 조직을 통제할 방법이 있을까?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의 정치체제와 관련해 온라인 설문에 참여한 시민 456명, 그리고 전문가 16명에게 의견을 들었다.
(우리가 바라는 나라① 제왕적 대통령제 이번엔 바꿀 수 있을까? 읽으러 가기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796.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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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기후정의 활동가인 김영준(50)씨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 등을 새로운 헌법에 담아야 한다. 현재 대통령만 결정할 수 있는 국민투표를 일정한 수의 국민이 요구하면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상사고 전문가인 정대진(78)씨는 “국가 중대사를 국민의 발의와 투표로 결정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 중에 국민의 지지가 3분의 1을 넘지 못하면 퇴출해야 한다. 비리가 있는 국회의원이나 판검사도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조환희(26)씨는 “대통령 탄핵 심판을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방안, 사법부와 검찰, 경찰의 책임자를 선거로 뽑는 방안, 국무총리를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임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문가들도 직접민주주의 확대에 긍정적이었다. 서울대 박원호 교수(정치학)는 “국회의 입법권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국회가 그 이해 당사자인 사안은 외부에 맡겨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헌법이나 선거법 개정, 선거구 획정을 국회 밖에서 논의해서 국회에서 표결만 하는 것이다. 국민발안도 국회에서 반영하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고, 국민소환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도 “국민 주권을 강화하려면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대통령 탄핵도 최종 심판을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국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 탄핵 기간이 단축되고 국민 다수 의사에 반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민주주의 도입이 대의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장석준 전 정의정책연구소장은 “권력 구조에 대해선 아직 국민적 합의가 없지만, 직접민주주의 도입에 대해선 합의가 있다. 먼저 도입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면 대의민주주의에도 자극이나 견제가 된다. 21세기에 새로운 정치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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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한국 정치를 개혁하려면 양당제와 승자독식 구조도 깨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임재환(30)씨는 “탄핵 국면이 지난 뒤 한국 사회는 거대 양당의 정치로 다시 흘러갈 것이다. 기득권이 정치를 주도하는 현상이 반복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연구자인 최고운(42)씨도 “거대 양당이 정치를 독식하며 스타성 대통령 후보를 찍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나라, 다양한 목소리가 대변되는 나라”를 꿈꿨다. 노동자 한상균(63)씨는 “보수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깨고 광장에 분출된 다양한 정체성으로 이 나라 민중의 삶을 견인할 동아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대안으로 회사원 김동규(54)씨와 대학원생 김응돈(28)씨는 다당제와 연합 정치를 제안했다.
전문가들도 앞으로 한국 정치에 다당제와 연합 정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면 다당 체제가 된다. 국민이 비례대표제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2023년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선 비례대표 확대에 시민 다수가 찬성했다. 개방적으로 이런 문제를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는 “권력 구조 개헌만 해서는 정치를 바꿀 수 없다. 비례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 문제는 선거제 결정권을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쥐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을 압박해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도 “헌법 개정보다 선거제 개혁이 더 시급하다. 다당제 구조를 만들어서 연합 정치를 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 거대 양당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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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밭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검사로 일하다가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어 검찰 정권을 만들어냈다. 대통령실 제공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면 검찰에 대한 통제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남원식(55)씨는 “이번 사태에서 현장의 군과 경찰은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검찰은 조직의 이익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것 같다. 검찰의 제도 개혁도 필요하지만, 군대보다 강한 검찰의 조직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진중호(48)씨는 “누구나 법과 원칙을 지키고 잘잘못에 대해 그대로 법을 집행하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법을 잘 알아서 이용하는 법꾸라지들에 대해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내란이 검찰 문화와 관련이 깊고, 다음 정부는 검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청와대의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은 “윤석열은 늘 법치주의를 말하지만, 그것은 남에게만 적용된다. 자신과 검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검사는 자신이 정의이고 상대는 부정의이므로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극단적 생각이 윤석열의 정치에 그대로 드러났고 내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지낸 김남준 변호사도 “검찰은 명령에 따르는 조직이고,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반면, 민주주의 정치는 헌정질서 안에서 견제와 균형, 타협, 설득을 하는 일이다. 검사가 하긴 어려운 일이다. 윤석열은 처음부터 좋은 정치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이런 사태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법학)는 “윤석열 탄핵이 결정되면 다음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국회에서 검찰개혁 법안을 즉시 처리해야 한다. 대선 전에 수사권 폐지와 기소기관 전환을 여야가 합의하면 된다. 그게 누가 집권하더라도 검찰을 악용하지 않는 길이다. 윤석열 탄핵이 검찰 탄핵이라는 점도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번 내란이 검찰의 문제점보다는 윤석열 개인의 비정상성에서 비롯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법학)는 “검사 가운데 정상적인 사람도 많다. 합리적인 검사 출신이라면 요건이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는 목적도 중시하지만 수단의 정당성, 상당성, 비례성도 중시한다. 종북이나 반국가 세력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윤석열은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해제된 2024년 12월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에서 현안 관련 긴급회의를 마친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나오고 있다. 한 총리와 최 부총리는 모두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이번 내란 과정에서 두드러진 쟁점 가운데 하나는 관료들의 행태였다. 검찰 관료 출신 윤석열은 군과 경찰 관료를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다. 윤석열 탄핵 소추 뒤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이들도 모두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이었다. 그러나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부총리 등 기재부 관료 출신들은 내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 정부에서 관료의 지배가 위험 상황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회사원 박경대(55)씨는 “한국의 관료들은 정부를 쥐고 있고 감시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 외부 인재들이 정부에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 또 예산 편성권이나 감사권도 국회로 넘겨 국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행정부 관료의 권한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주부인 박현자(63)씨는 “말로는 입법, 행정, 사법 3권이 분리돼 서로 견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3권 기관의 관료들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내란을 계기로 관료 개혁의 필요성도 커졌다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정치학)는 “관료는 선출된 대표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관료들이 선출 권력의 위에 서려고 하고 선출된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 선출된 대표와 관료의 권한과 행위 규범에 대해 다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사태는 전체적으로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실패한 결과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과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직접 나라를 지배한 경우였다. 그동안 선출 권력이 관료를 효과적으로 장악하지 못했다. 비판받는 청와대 정부도 관료 통제를 위한 측면이 있었다. 관료제 개혁은 다음 시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대 과제”라고 말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선출직 국회의원들이 장차관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인들이 더 많이 정부에 들어가야 한다. 정부에서 정치인의 역할이 커져야 관료 중심의 구조가 깨진다. 입법부도 법조인이 너무 많은데, 정당에서 다양한 후보들을 키워내야 한다. 사법부도 국민 참여 재판을 도입하고, 판검사 채용을 더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장은 “정당이 발전해야 정치가 발전한다. 정당에서 정치인들을 키워 장차관을 맡겨야 한다. 또 여러 정당이 협력해 행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연합정부도 필요하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성장하면 관료의 행정부 지배도 자연스럽게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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