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존함은 이정악. 향년 94.
장례식에 가려고 부산에 갔다. 상조회사에서 내주는 검은 상복을 입었다. 옷은 좀처럼 몸에 맞는 구석이 없었다. 화가 났다. 스타일 때문은 아니다. 외할머니 상가에 몸에 맞는 수트를 가져오지 않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따위 옷을 입고 상을 치르라고? 외할머니 상에 옷 타령이나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해두고 싶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영정 앞에서라도 완벽하고 싶은 것이다.
‘독일 스피커’ 외할머니아버지는 1년에 11개월을 항해하는 무역선 선장이었다. 갓 스무 살 남짓에 나를 낳은 젊은 엄마는 혼자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나를 함께 키웠다. 젊은 날 혼자 장사를 해 엄마를 키운 외할머니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도훈아! 명훈아! 밥 무러 온나!” 동생과 나는 그 목소리가 부끄러웠다. 아파트에서 할머니 별명은 ‘독일 스피커’였다. 그 시절 ‘독일제’는 ‘일제’와 함께 최고 성능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할머니 목소리는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들렸다. 밥을 먹으러 가기 싫어 뭉개고 있으면 주변 친구들이 말했다. “할매 부른다. 빨리 가라. 시끄러버 죽겠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울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입관 때 외할머니의 차가운 얼굴을 만지는 순간 눈물이 났다. 한 달 전 부산에 갔을 때 병원에 누운 채 “빨리 장가를 가라”고 독촉하던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다는 걸 마침내 깨달았다. 독일 스피커는 영원히 꺼졌다. 외할머니 유골을 가슴에 안고 경남 합천으로 갔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땅에 묻히지 않는 것이었다. 갑갑해서 땅속에서는 못 산다고 하셨다. 합천의 선산에 유골을 뿌리기로 했다. 방식은 낯설었다. 20여 년 만에 다시 본 외가 아재들은 새로 지은 쌀밥을 준비했다. 그걸 산소 옆에 깔더니 유골을 비비라고 했다.
나는 멈칫했다. 할머니의 유골을 쌀밥에 비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것이 유언이고 전통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였다. 비닐장갑을 끼고 재가 되어버린 유골과 밥을 비볐다. 비빔밥을 비비듯 열심히 골고루 비볐다. 울면서 비볐다. 마침내 쌀밥과 재가 골고루 회색의 주먹밥처럼 섞였다. 한 덩어리씩 떼어내 이곳저곳에 뿌렸다. 새들이 내려와서 외할머니를 조금씩 먹고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 믿었다. 갑갑한 땅속에서 못 사시는 독일 스피커 외할머니는 그제서야 유언대로 자유가 됐다.
제주4·3으로 숨진, 아직 주검도 건지지 못한 행방불명자들의 유해 발굴 사업이 마침내 재개됐다.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 200여 명의 희생자가 묻힌 곳은 제주국제공항 아스팔트가 굳건하게 서 있는 자리다. 서울과 중국과 일본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남부 활주로다. 유해 발굴이 가능하냐, 아니냐, 말이 많다. 인터넷 신문 에 따르면 이경용 바른미래당 의원은 “4·3 영혼들이 비행기 바퀴 속에 짓밟히는 일이 더는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제주공항 활주로의 비극맞는 말이다.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2018년은 ‘제주 방문의 해’다. 제주도가 원하는 것은 아마도 더 많은 관광객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제주공항에서 날아올라야 하는 것은 관광객을 실은 거대한 여객기가 아니다. 활주로 아스팔트 아래 묻혀 있는 4·3 영혼들이다. 그 영혼들이 총과 죽창을 맞으며 마지막으로 외쳤을 소리 없는 유언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그들의 유골이 날아오를 때 나는 제주공항의 활주로에 죄책감 없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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