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속에 피어오른 희망동화 속 어린이의 눈으로 본 제주4·3은 어떤 모습일까. 4·3 70주년을 맞아 역사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동화책 3권을 소개한다. 권윤덕 작가의 , 장성자 작가의 , 정도상 작가의 . 이 작품들은 아프지만 꼭 알아야 할 4·3의 역사로 이끄는 길라잡이가 되어줄 ...2018-03-21 18:08
아이야, 앱으로 ‘4·3’을 배워보렴‘여행’을 소재로 한 어린이 앱. 우리 아이는 ‘세이고미니’(SAGO Mini)에서 나온 앱을 특히 좋아한다. 자동차 여행, 보트 여행은 물론 비행기 여행도 하고 기구도 탄다. 유료라서 마음에 걸리지만 광고가 없는 점이 좋다. 아이는 겨우내 앱으로 썰매 여행을 했다. ...2018-03-21 18:02
“올해 4·3 해결 마지막 기회”“70년 고통의 삶이 결코 돈으로 보상 안 된다. 유족이 요구하는 배·보상은 국가가 우리를 위로해달라는 차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예산 타령을 하고 있다. 유족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양윤경(58·사진)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4·...2018-03-21 18:00
비극은 평화와 만나야 한다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제정은 4·3 진상규명 운동의 큰 결실이었다. 제주4·3위원회는 허약한 조사 권한에도 2003년 12월 를 발간했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희생자와 유...2018-03-21 17:53
“군사재판 희생자 명예회복 시급”4·3과 내일제주4·3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유족의 한은 현재진행형이다. 부모를 잃고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멸시를 견뎌온 세월 앞에서 국가는 오늘도 말이 없다. 유족들이 4·3특별법 개정으로 4·3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요구하는 이유다. 당시 진압작전을 지휘했던 미국...2018-03-21 17:50
제주와 오사카 사이 역사가 흐른다“대판(오사카)이오, 대판!”제주 민요 가락이 흐르는 가운데 푸른 대양을 가르며 배 한 척이 앞으로 나아간다. 까만 굴뚝에서 새까만 연기를 내뿜는 배의 선수에는 ‘君が代丸’(기미가요마루)라는 이름이 새겨 있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동명 소설을 같은 재일동포인 최양...2018-03-21 17:43
4·3 희생자를 선별하지 말라자이니치와 4·336년 동안 이어진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극한 혼란 속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에게 일본은 더 나은 삶이 보장된 ‘신천지’였고, 차별은 당할지언정 학살은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였다. 그렇게 일본으로 흘러든 이들이 제주 전체...2018-03-21 17:39
아스팔트에 묻힌 영혼들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존함은 이정악. 향년 94.장례식에 가려고 부산에 갔다. 상조회사에서 내주는 검은 상복을 입었다. 옷은 좀처럼 몸에 맞는 구석이 없었다. 화가 났다. 스타일 때문은 아니다. 외할머니 상가에 몸에 맞는 수트를 가져오지 않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2018-03-20 18:19
4·3의 응어리를 캔버스에 담다제주도민에게 제주4·3은 ‘올레걸러’(집집마다) 말 못한 고통의 시간이자 오랫동안 가위눌렸던 한의 실체다. 4·3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제주인들은 가족의 주검을 찾지 못해 헛묘(칠성판에 망자의 옷가지만 넣고 만든 무덤)라도 만들어 영혼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2018-03-20 18:18
이름 없는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금기시됐던 제주4·3을 세상에 처음 알린 건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이었다. 그 뒤 회화, 음악, 연극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4·3 예술이 피어났다. 강요배 화백의 4·3 연작화 는 4·3을 대중적으로 알린 대표적 작품이다. 4·3의 아픔과 의미를 국내외에 알린 영화...2018-03-20 18:14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분노를 읽다두 번째는 더 깊고 아린 체험이었다. 지난 1년 여에 걸친 월례 세미나를 통해, 김석범(1925~ ) 대하소설 (火山島) 전 12권을 다시 완독했다. 2015년 10월 가 한국어로 완역된 직후 약 석 달에 걸쳐 처음 독파한 지 2년여 만이다. 좋은 작품 읽기가 늘 그러...2018-03-20 18:12
“4·3은 내 숙명이었다”예술로 피어난 4·3제주4·3이 잊힌 게 아니라면, 광기의 역사를 고발한 문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4·3이 외롭지 않았다면, 야만의 세월을 기록한 예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 현기영부터 김석범, 강요배가 있어 4·3의 슬픔이 뭍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영화 가 있어 ...2018-03-20 18:09
4·3을 관광상품화 말라“미안하다고 하지 말걸 그랬다. 죄송하다고 하지 말걸 그랬다. 나는 내가 피스메이커(peacemaker)인 게 싫다.” 얼마 전 일기장에 내가 적은 말들이다. 내 안에서 갑자기 분출된 말들이라 당황스러웠다. 내 안에 ‘나는 내가 이러는 게 싫어’라는 감정이 오랫동안 쌓...2018-03-20 18:00
알뜨르 비행장에 평화 내릴까1944년 말 일본군은 일본 본토 방위를 위해 ‘결호작전’(決號作戰)을 세웠다.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 경로를 예상해서 제주도를 작전계획에 포함시켰다. 이 작전을 ‘결7호작전’이라 한다. 제주도 방어를 전담하는 제58군 사령부가 창설되고, 그 밑에 관동군 111사단과 1...2018-03-20 17:57
극우반공국가의 탄생역사의 도미노였다. 제주4·3은 여순사건을 낳았고 여순사건은 분단체제를 완성했다. 정부 수립 2개월 만인 1948년 10월19일, 4·3 진압을 거부하며 국군 제14연대가 봉기했다. 위기를 느낀 이승만 정부는 가용 병력을 총동원해 초토화 진압 작전을 벌였다. 반란군과 ...2018-03-20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