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인션 이강훈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을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 풍자라기에는 특정 계층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인데 근거가 좀 모호하다. 본래 패러디는 실제를 모방하되 우습게 변용하여 재현한다.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말은 곧 지나치게 웃기다는 말인즉슨 결국 해당 패러디가 양식적으로 대단히 성공했다는 뜻이다. 옛날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들처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좁은 동네를 누비는 이들의 몰개성은 아무래도 패러디가 될 만하다. 과거 중고생들의 노스페이스 패딩이나 3초에 한 번씩 보인다는 루이비통 백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놀림감이 됐던 것과도 비슷하다. 다만 대치맘 패션은 쉽사리 따라 사기 어려운 초고가품이라는 점에서 조소를 넘어 질시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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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제이미맘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그가 한심해 보이지만 부럽다. 제대로 된 안목과 미적 취향을 갖추지도 못했으면서 명품으로 휘감았다는 비난과 실은 나도 그렇게 걸쳐보고 싶다는 욕망이 영상 아래서 댓글로 충돌한다. 이면의 다툼은 언론의 야단법석을 통해 사회적 논란으로 표면화되고, 대치동에서만 통했던 암호는 대중적으로 코드화된다. 대치맘들은 몽클레어와 고야드를 당근마켓에 내버리고 곧 다른 브랜드로 새 암호를 만들어 자신들의 세계를 구별짓는다. 패딩을 (중고로라도) 따라 산 자, 즉 문화자본을 통해 계급 이동을 꿈꾸던 이들은 사다리 오르기에 또 실패한다. ‘7세 고시’로 대표되는 조기 사교육 열풍 또한 마찬가지다. 제기차기 과외까지 시키는 제이미맘을 보고 그저 맘 편히 깔깔댈 수 있는 부모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과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제이미와 싸워야 할 내 자녀를 생각해 사교육비를 ‘남들만큼’ 무리하게 지출하고, 우리 아이의 ‘영재 모먼트’를 발견할 때마다 얼마를 들여서라도 키워주고 싶은 것이 한국 부모가 처한 딜레마다.
‘핫이슈지’는 잘못이 없다. 잘못은 댓글에 있다. 갈수록 커지는 교육격차에 대한 해결 방안을 함께 찾기보다는 각자도생을 외치며 타인을 매도하는 악의적 댓글, 부유층을 혐오하면서도 욕망하는 볼썽사나운 댓글들이 바로 개그를 논란으로 비화시킨다. 더욱이 여기에는 아주 오래된 편견, 여성혐오가 자리잡고 있다. 가령 아이 스케줄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시간을 주로 보낸다는 제이미맘에게 쏟아지는 악플이 그렇다. 물론 제로백 4초대의 고성능 고급 스포츠카 행렬이 어린이보호구역을 느릿느릿 지나가는 풍경은 아이러니하지만 과연 이 정도로 욕을 들을 일인가.
사실 자가용은 여성의 이용 패턴에 가장 적합한 교통수단이다. 여성은 연쇄이동이 많기 때문이다. 연쇄이동이란 최초 출발지에서 도착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여러 번 짧은 이동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장을 본 뒤 집에 돌아오는 등 돌봄노동을 도맡는 여성들의 이동 패턴이 주로 그렇다. 그러나 운전하는 여성은 아주 오랫동안 조롱의 대상이었다. 솥뚜껑이나 굴려야 할 여성이 운전대를 잡으면 ‘김여사’가 되고, 자동차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은 차 없는 남자와는 데이트조차 하지 않으니 ‘된장녀’가 된다. 여성에 대한 이 부정적 고정관념이 바로 제이미맘을 ‘지나치게 희화화’한다. 애먼 사람 잡지 말자. 대치맘 패러디 논란을 촉발한 건 누군가를 너무 잘 흉내 낸 이수지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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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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