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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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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에 평화 내릴까

일본이 제주에 만든 군사 비행장…

거대 군사기지로 변모하는 제주, 알뜨르 평화대공원 조성 계획 무색
등록 2018-03-20 08:57 수정 2020-05-02 19:28
1940년대 말 제주 서남부 알뜨르 비행장에 늘어서 있는 일본군 무기들. 알뜨르 비행장을 비롯해 해안 특공기지 등 많은 일본군 전적지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성윤 제공

1940년대 말 제주 서남부 알뜨르 비행장에 늘어서 있는 일본군 무기들. 알뜨르 비행장을 비롯해 해안 특공기지 등 많은 일본군 전적지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성윤 제공

1944년 말 일본군은 일본 본토 방위를 위해 ‘결호작전’(決號作戰)을 세웠다.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 경로를 예상해서 제주도를 작전계획에 포함시켰다. 이 작전을 ‘결7호작전’이라 한다. 제주도 방어를 전담하는 제58군 사령부가 창설되고, 그 밑에 관동군 111사단과 121사단이 투입됐으며, 신설된 제96사단과 독립 혼성 제108여단을 비롯한 여러 부대가 합류했다. 1945년 3월부터 8월까지 모두 7만5천 명의 일본군이 제주도에 들어와 미군 상륙을 대비하면서 전투를 준비했다.

일본의 제주 요새화 작전

이들의 임무는 제주섬 전체를 요새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제주도민을 동원해서 비행장 4곳, 해안 특공기지 6곳, 그리고 산악 지역에 수백 개의 지하호를 만들어놓았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비행장, 포대, 참호, 훈련장, 감시 초소, 대피소, 비행기 격납고, 탄약고, 폭탄 매립지 등 일본군 군사시설을 볼 수 있다. 한라산 중턱에는 ‘하치마키’(鉢卷)라는 이름의 군사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외에 각 진지와 진지, 진지와 포구를 연결하는 도로도 남아 있다.

제주도에 주둔한 일본군은 처음엔 해안에 진지를 만들어 상륙하는 미군과 싸울 계획이었으나, 나중에 내륙 결전 작전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8월에는 해안선을 따라 배치된 병력이 중산간 지역으로 옮겨갔다. 이는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군의 상륙을 허용하되 중산간 지역에 진지를 쌓아 유격전을 펴는 작전이었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이 전투에 말려들어 큰 피해를 입는다. 일부 주민을 본토로 소개(疏開)했던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와 달리, 제주도에선 노약자들을 육지로 피신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주민들은 마을에 그대로 남았다. 전투가 벌어지면 제주도민들이 일본군의 유격전에 휩쓸려버릴 가능성이 컸다. 실제 오키나와에선 1945년 4월1일 미군 상륙 이후 3개월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의 희생자는 20만 명이 넘고, 그중에서 군인으로 징집된 젊은이까지 포함해 오키나와 주민이 15만 명이나 됐다. 1945년 여름 미군이 상륙해 제주도에서 지상전이 벌어졌다면 당시 17만 명이던 제주도민 역시 큰 희생을 치렀을 것이다.

일본군이 전투 준비를 위해 파놓은 방어 진지는 100곳이 넘는다. 이 가운데 파괴되거나 사라진 곳이 많지만, 아직도 많은 전적지(전쟁의 흔적이 남은 곳)가 남아 있음이 최근 조사에서 확인됐다. 일본군이 만들어놓은 비행장과 해안 특공기지도 확인됐다. 하지만 해방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 일본군 전적지는 학계와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일본군과 관련된 전쟁 유적은 한국인에게는 일본이 점령해 식민지배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유산에 지나지 않았다.

제주도 서남부 대정 지역은 군사전략상 요충지답게 알뜨르 비행장, 오무라 해군 항공대 막사, 섯알 오름의 고사포진지와 지하호, 해안 특공기지 등 많은 일본군 전적지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알뜨르 비행장은 일본 해군이 중일전쟁 초기에 만든 것이다. 1933년 약 6만 평 규모의 ‘제주도 비행기 불시착륙장’(濟州島 飛行機 不時着陸場)을 조성했다. 처음 건설할 때만 해도 해군 항공대가 주둔하는 정식 항공기지가 아니라, 중국과 전쟁에 대비해 임시용으로 만든 중간 기착지였다. 그런데 불과 3년 뒤인 1936년 11월 제주도 착륙장 6만 평을 14만 평 넓힌 20만 평으로 증설하라는 훈령이 내려진다. 일본군은 마을과 농경지를 석 달 열흘 만에 모두 매입했는데, 이처럼 신속한 매입은 경찰의 입회 아래 이뤄진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전쟁 아픔 간직한 알뜨르 비행장

1937년 8월부터 일본 해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난징에 도양폭격(渡洋爆擊)을 시작했다. 이때 알뜨르 비행장은 난징을 비롯한 중국의 중요 도시를 폭격하는 중심 기지가 됐다. 제주도에서 이뤄진 난징 공습은 36회고 여기에 참여한 항공기는 연 600기, 투하 폭탄의 총계는 300t에 이른다. 이 때문에 난징에서 많은 사람이 살상됐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터진 뒤 알뜨르 비행장은 다시 한번 중요성을 인정받아, 또다시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기지 20만 평을 80만 평 규모로 확장하는 계획이었다. 이 확장으로 해당 부지에 있던 6개 마을이 사라졌고, 그 마을의 주민들은 주변 지역으로 강제 이주됐다. 제주도민을 노동자로 동원한 이 공사는 전쟁 막바지까지 계속됐다.

알뜨르 비행장 일대는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군의 훈련소로 활용됐다. 당시 한국군이 모집한 육군과 해병대 병사들의 훈련은 모두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중공군 포로수용소도 설치됐다. 이곳은 3년 넘게 한국군의 주요 활동 무대였지만, 1953년 7월 정전협정 이후 다시 빈터가 됐다.

정부는 사용이 끝난 이 터를 대정 지역의 원소유주들에게 돌려줘야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토지를 돌려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 시기는 제주4·3 학살 직후였고, 군인들의 세상이었다. 국가는 비행장 부지를 원래 토지 소유자에게 반환하지 않고, 국방부 소유로 묶어놓았다. 지금까지 국방부는 비행장 부지 일부를 주민들에게 농경지로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소작료를 받아왔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지역주민에게 알뜨르 비행장 터를 ‘불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기대하게 했으나, 대통령이 된 뒤 국방부가 반대하자, 없었던 일이 되었다.

한국군은 정전협정을 맺은 1953년 이래 휴전선 일대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왔다. 그러나 냉전 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생기고 상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쟁 위협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한국군이 한반도 남쪽에 새 군사기지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지역이 제주도였다.

1988년 공군이 대정 모슬포 지역에 공군 비행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은 알뜨르 비행장 부지를 포함한 197만 평에 새로운 비행장과 각종 기지를 짓는 것이었다. 이 계획이 실행되면 3개 마을이 사라질 것이었다. 지역주민뿐 아니라 제주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계획은 백지화됐다.

알뜨르를 평화의 들판으로?

2001년에는 국방부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항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이 시민사회단체들과 반대운동을 펼치자, 해군기지 건설안은 백지화됐다. 해군은 2005년 봄에 더 큰 계획을 들고 왔다. 8천억원을 들여 12만 평 기지를 건설해 해군 7500여 명을 상주시키고 기동함대의 주력 전투함인 이지스함(KDX-3)을 비롯한 함정 20여 척을 계류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방부는 제주도 당국의 협력을 얻어 후보지를 변경해가며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였다. 화순 주민이 반대하자, 건설 예정지가 위미항으로, 위미 주민이 반대하자, 다시 강정항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인 국방부는 마침내 2017년 3월 강정해군기지를 준공했다. 이번에는 공군이 다시 공군기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 예정지가 일본군이 만들어 사용했던 알뜨르 비행장이다.

2000년대 이후 제주도의 일본군 전적지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종합적인 일본군 전적지의 조사·연구가 이루어졌고, 이를 활용한 평화교육과 다크투어리즘(역사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체험함으로써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일본군 지하호를 이용한 전시시설로 한경면 청수리에 제주평화박물관이 개관하는 한편, 알뜨르 비행장 일대와 해안의 특공대용 전적지를 무대로 설치미술 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 행정 당국도 이것을 중요한 역사 유산으로 인식해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한편, 예산을 편성해 보수와 정비를 시작했다. 제주도 당국은 2007년 전쟁 유적을 활용한 평화대공원 조성 계획을 수립했다. 알뜨르 비행장과 주변의 일본군 전적지, 4·3 유적지를 묶어 대표적인 평화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지 소유권이 국방부에 있기 때문에 제주도는 국방부에 소유권 이전을 요청했다. 국방부는 처음엔 거절했다가, 해군기지 건설 협약을 맺을 때, 제주도가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는 공군 구조대 기지로 쓸 수 있는 대체 부지를 달라면서 제주도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2017년 10월11일 제주도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업무협약을 맺어 평화대공원 사업을 재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알뜨르 비행장과 그 일원에 대한 문화콘텐츠 개발, 문화예술 증진 등 제주의 발전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면서, 2단계로는 국방부-제주도-JDC 간 상생 협약을 맺어 알뜨르 비행장을 평화의 들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아시아 위협하는 군사기지

지역언론에서는 제주도가 이미 국방부와 협약을 맺었다고 본다. 현재 논란 중인 제2공항에 제주도가 군사시설을 확보해주는 대신 알뜨르 비행장을 넘겨받아 관광의 중심지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제2공항을 공군과 민간이 공동 사용하는 비행장으로 만든다면, 앞으로 10년 뒤 제주도는 해군기지와 공군기지가 모두 들어선,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군사지역으로 변할 것이다. 제주도가 이미 동아시아를 위협하는 군사기지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아진 마당에 알뜨르 비행장을 활용한 평화대공원을 조성한다면, 우리는 그 공원에서 평화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조성윤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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