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올해로 마흔한 살. 아니다.
윤○열 나이로 계산해야 하나. 그래도 사십 줄이다. 마흔한 살은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평균 나이라고 들었다. 신빙성 있는 정보는 아니다. 그래도 마흔한 살 황유미에게 흰머리 몇 가닥 정도는 있겠지. 그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황유미를 ‘소녀’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온 나조차 그를 너무 어리게만 여겼나보다. 그야, 18년 전이었으니까. 그는 스물셋이었고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았다.
다가오는 3월6일은 황유미의 기일이다. 3월이면,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사람들은 그의 고향인 강원도 속초로 간다. 서울에선 추모제가 열린다. 18년간 계속돼온 일이다.
황유미, 그로 인해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문제가 알려졌다. “이만큼 올 수 있던 건 유미씨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추모제에서 어떤 이가 읽은 편지. 하지만 편지만 쓸 수 있는 3월은 없었다. 상담 일지, 의견진술서, 정보공개 청구서, 보도자료, 기자회견문, 토론문, 성명서… 많은 것을 써야 했다.
2024년 3월에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판정을 기다렸다. 이때 산재 신청인은 반도체 생산라인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녀다. 임신 당시 클린룸에서 일했고, 아픈 아이가 태어났다. 일명 ‘태아 산재’.
2023년 3월에는 베트남 삼성전자 공장에서 메탄올 중독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사망한 응우옌 티씨를 비롯해 37명이 메탄올 중독 판정을 받았다. 앞서 7년 전, 한국에서 6명의 노동자가 메탄올에 의해 시력을 잃었다. 이들도 삼성전자 협력업체에서 일했다. 문제는 세대를 건너, 국경을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2022년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이, 2019년에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제 안보’ 논리를 앞세운 이 법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기업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권한을 주었다. 일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자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매년 기일이 돌아오듯, 문제는 사건이 되어 돌아왔다. 때로 그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었고, 기억해야 할 기일이 늘어갔다.
나는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일하다 죽는 이들 앞에서 그런 말은 꺼낼 수 없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신뢰한다. 이 말을 떠올리면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가 아닌, 옆에서 뽀얀 쌀밥을 한 숟가락 건네는 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먹고 힘내야지.” 이리 말할 것만 같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죽은 사람은 잊고 상처는 묻고 기억은 지우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는 일이란, 내일 밥을 먹고 모레 잠을 자는 일이 아니다. 남겨진 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삶을 생각하는 일이다.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반복되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 그 마음을 품고 사는 일이다.
1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나. 반도체 산업의 환경·노동 규제를 완화하는 ‘반도체특별법’이 발의됐다. 법이 없애고자 하는 규제에는 시간도 있다.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 52시간은 효력을 잃고, 주 64시간은 일상이 된다. 무한 시간대의 노동을 꿈꾼다. 이런 발상이 ‘반도체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가능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광장에는 여전히 응원봉이 빛을 내고, 올해도 어김없이 황유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법이 되지 못할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이 답을 안다. 언제나 죽은 이는 산 자를 구했다.
희정 기록노동자·‘뒷자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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