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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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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3 해결 마지막 기회”

4·3특별법 개정 운동에 앞장선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

“유족 고령인 탓 특별법 개정 남은 시간 얼마 없어”
등록 2018-03-21 18:00 수정 2020-05-03 04:28

“70년 고통의 삶이 결코 돈으로 보상 안 된다. 유족이 요구하는 배·보상은 국가가 우리를 위로해달라는 차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예산 타령을 하고 있다. 유족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양윤경(58·사진)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4·3특별법 개정이 더딘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4·3특별법 개정 운동과 7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한 양 회장을 2월28일 저녁,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만났다. 제주4·3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에서 처음 회장을 맡은 그는 “4·3의 아픔을 직접 겪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이미 고령이다. 질곡의 역사 증언자로 쓸쓸히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고 있다. 그분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드리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후세들의 당연한 책무다”라고 강조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춥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몸조차 가누지 못할 강풍이었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모진 바람에 이리저리 시달렸다. 70년 삶이 이러했을까.

“국가 책임 다하도록 하자는 것”잃어버린 세월이 70년을 맞았다.

40주년, 50주년, 60주년도 유족들은 의미 있게 지내왔다. 이제 70주년인데 80주년이 되면 지금의 유족 가운데 상당수가 추념식에 나오지 못할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국회가 특별법을 개정해 이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유족이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인간으로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 사회가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한숨을 쉬며) 유족들이 한을 안고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로 4·3이 다 해결됐다고 보는 분위기도 있는데.

진상규명은 일부 이뤄졌을지 모른다.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 인정을 받았지만 배·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별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다른 사건에 비하면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았으니 나름의 진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과 묶으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준비된 것부터 단계적으로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본다.

배·보상이 어렵다면 유족에게 의료 서비스 등 생활 지원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그동안의 한이 돈으로 보상되겠나. 우리가 말하는 배·보상은 국가가 우리를 위로해달라는 차원이다. 국민 여러분께 간절히 호소한다. 한 번이라도 유족 처지에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친척이 총 맞고 죽는데 박수를 치라고 시킨 게 토벌대였다. 노인부터 아낙네, 갓난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총살한 게 군경이었다. 이렇게 국민을 학살했는데 국가가 가만있는 게 옳은 일인가. 너무 무책임하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특별법 개정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군사재판 희생자 유족들의 고통도 컸다고 들었다.

불법적인 군사재판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제주도민들이 인천, 경인, 호남 지역 형무소에 분산 수용됐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결국 학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 한 유족은 유복자가 됐다. 이후 평생 죄인의 자식으로 살았다. 명예회복이 절실하다. 이 삶이 돈으로 보상될까. 국가는 오늘도 말이 없다.

가족 이야기를 들려달라.

집안의 종손인 큰사촌형이 당시 29살이었다. 그 집에 딸 하나만 있었다. 4·3 때 총살됐다. 종손인데 아들이 없다며 집안에서 나를 사촌형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양부의 산소를 이장하며 백골이 된 주검을 봤다. 머리에 총을 쏴서 두개골 구멍이 한쪽은 작고 다른 한쪽은 컸다. 그걸 보고 눈이 뒤집혔다. 당시 제주에서 깨어 있고 의식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다. 이후 제주가 여러모로 낙후됐다면 이 때문이다.

“빼어난 풍광 뒤 슬픔 간직한 섬” 사람들은 제주도를 아름다운 관광지로만 기억한다.

안타깝다. 제주는 천혜의 자연을 지닌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 풍광 뒤에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곳은 여지없이 학살터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서귀포의 정방폭포, 송악산 섯알오름도 마찬가지다. 가는 곳마다 4·3 유적지다. 제주의 풍광과 함께 4·3의 아픔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그러려면 유적지를 알리고 보호하기 위한 도 차원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얼마 전엔 4·3 때 주민들이 야경을 서기 위해 돌을 날라 만든 성담이 훼손될 뻔한 일도 있었다. 땅주인이 바뀌면서 성담을 허물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4·3 유적지들은 도가 땅을 사서 보존·관리해야 한다.

한국의 자칭 보수 세력은 아직도 4·3을 폭동이라 말한다.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참담한 일이다. 유족들은 긴 세월 동안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기를 갈망해왔다. 4·3이 화해와 상생의 장이 되기 위해서라도 미국을 포함한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들이 용서와 관용을 할 수 있다. 70년을 맞은 올해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무조건 화합할 수는 없다. 미국과 유엔의 책임 있는 조처를 촉구하기 위해 전 국민적 서명운동을 벌이는 이유다.

4·3 해결에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남달라 보이는데.

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세 번째로 과거사 문제 해결을 거론했다. 보수 정권 9년 동안 박해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4·3 해결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70주년 추념식에 참석을 약속한 문 대통령이 진정 어린 마음으로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바란다. 더불어 더 이상 희생자를 재심의하자거나, 4·3평화공원을 폭도공원이라고 망발을 하지 못하도록 특단의 조처도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 가슴에 한이 맺힌 유족에게 더 이상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말이다.

앞으로 유족회 활동 계획이 있다면.

유족회도 제주도민들이 4·3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2∼3세대 유족들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젊은 유족회원들을 규합하는 데 힘을 다하고 싶다.

“4·3 영령들이 도와주고 있다”생업인 천혜향 농장과 유족회장 일을 병행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다.

내일도 특별법 때문에 아침 일찍 서울에 가야 한다. 올해는 70주년이라 더 경황이 없지만 오직 유족만 보며 일하고 있다. 4·3 영령들이 도와주고 있어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 같다. 4·3이 완전하게 해결돼서 80주년이 되는 2028년에는 조금 여유롭게 4·3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귀포(제주)=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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