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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응어리를 캔버스에 담다

제주4·3의 실체 알린 화가 강요배…

미술이 민중의 아픔 외면 말라 가르쳐
등록 2018-03-20 18:18 수정 2020-05-03 04:28
강요배 화백의 작품 <토벌대의 포로>. 97×162cm, 캔버스, 아크릴릭, 1992

강요배 화백의 작품 <토벌대의 포로>. 97×162cm, 캔버스, 아크릴릭, 1992

제주도민에게 제주4·3은 ‘올레걸러’(집집마다) 말 못한 고통의 시간이자 오랫동안 가위눌렸던 한의 실체다. 4·3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제주인들은 가족의 주검을 찾지 못해 헛묘(칠성판에 망자의 옷가지만 넣고 만든 무덤)라도 만들어 영혼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고, 행방불명된 망자를 위해 원혼을 달래는 ‘까마귀 모른 식게’를 지낸다. 영매의 새인 까마귀도 모르게 지내는 제사라고 하여 ‘몰래 지내는 제사’를 말하는데 이는 4·3에 대한 감시와 탄압의 결과다.

‘그림패 바람코지’의 활약
강요배는 제주4·3의 대중화에 기여한 화가다. 강요배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정상영 기자

강요배는 제주4·3의 대중화에 기여한 화가다. 강요배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정상영 기자

미술계가 4·3을 처음 다룬 것은 1989년 4월이다. 이때 ‘그림패 바람코지’ 그룹의 주도로 ‘4월 미술제’를 처음 열었고, 같은 해 8월 그림패 바람코지 회원의 ‘4·3 넋살림전’을 서울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소개했다. 이처럼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제주도민에게 금기였던 4·3을 몇몇 화가가 간헐적으로 그리다가, 서사화가 강요배씨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1992년 3월 강요배의 ‘제주민중항쟁사-강요배의 역사그림전’은 한국 사회에 4·3의 실체를 바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시에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발생한 4·3을 민중항쟁사적 관점에서 서사적으로 그린 역사화를 선보였다. 4·3은 최소 3만의 인명을 앗아간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최초로 미국이 개입한 4·3은 이후 세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전쟁으로 이어진다.

4·3은 해방공간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제주의 그림패 바람코지에서 부분적으로 다뤄지던 4·3은 비로소 강요배의 손에서 역사화로 부활했다. 강요배의 4·3민중항쟁 연작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한 농가에서 약 3년에 걸쳐 완성됐다. 화가는 말한다. “역사의 맑은 바람을 쏘여 내 가슴속 응어리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시도한 것이 제주민중항쟁사 연작 그림”이라고.

4·3민중항쟁 연작은 종이와 캔버스에 혼합 재료로 그린 작품이다. 총 50점으로 구성된 이 역사화는 제주민중항쟁사를 서사화로 재현했다. 제주도 삼별초 항쟁에서부터 왜구와의 싸움, 이재수 반제·반봉건 투쟁, 일제강점기 잠녀항일투쟁, 해방 후 제주인의 귀향, 4·3사건 전개와 수난, 토벌이라는 이름의 상상할 수 없는 민중 학살 등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사방이 물로 가로막힌 화산섬에 이런 엄청난 항쟁이 있었다는 것, 제주도 민중이 험난한 역사의 돌밭을 걸었던 피나는 고난의 연대기가 있었다는 것에 한국 사회는 놀랄 뿐이었다. ‘제주민중항쟁사-강요배의 역사그림전’은 4·3을 한국 역사에 소생시키면서 다시 햇볕을 쬐게 한 기념비적 전시였다.

캔버스에 담긴 제주민중항쟁사

제주도 탐라미술인협의회의 출범은 4·3 미술의 역사적 관점과 현실주의 전망을 새롭게 여는 계기가 됐다. 이 단체는 1993년 9월18일 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 창립했다. 1994년 1월25일 창립전 ‘맑은 바람전’을 계기로 현실주의 미술을 주창하며 ‘현실의 잘못된 상태를 차례로 폐기해나가기 위해 진솔하게 탐구하고 행동하는 예술의 실천적인 현실운동’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 단체의 설립 배경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전국적으로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미술과 사회운동의 연대적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미술운동계는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1993년 탐라미술인협의회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 미술분과위원회로 재편되면서 제주 지역 민중미술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4·3미술제는 4·3을 미술로 형상화한 정기 미술행사로 탐라미술인협의회의 주력 사업이다. 4·3미술제는 그림패 바람코지의 ‘4·3 넋살림전’을 계승해 발전시킨 것이다. 1994년 4월 열린 제1회 4·3미술제를 기점으로 2018년 제25회를 맞는다. 4·3미술은 역사에 묻힌 제주의 비극적 역사를 미술로 표현해 대중화하기 위해 리얼리즘 창작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제1회 4·3미술제 ‘닫힌 가슴을 열며’전, 제2회 ‘넋이여 오라’전까지는 제주 미술인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앙데팡당(심사나 시상식이 없는 자유 출품 전시회) 형식으로 열렸으나, 제3회 ‘4·3 그 되살림과 깨어남의 아름다움’전부터는 탐라미술인협의회 회원전으로 전환해 단독 개최하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회원전과 작가 선정을 하는 예술감독 제도로 바뀌었다.

성년을 넘긴 ‘4·3미술제’의 과제

이제 4·3미술제는 성년을 넘겼다. 초기에는 경찰의 감시를 받아가며 작은 판화 위주로 작품을 제작했고, 걸개그림 등 현장 집회용 그림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 ‘놀이패 한라산’과 공조하며 생활 현장이나 대학 야외 전시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술의 목적과 실천을 민중성과 현장성에 두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미술이 역사를 외면하거나 민중의 아픔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핀 꽃도 아름답지만 그 꽃을 가꾸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소중하다. 역사는 자꾸 나쁜 쪽으로 기울어가며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의 꽃은 사람들이 돌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시들게 마련이다.

어느덧 4·3 70주년을 맞는다. 올 4월은 4·3미술 행사도 풍성하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탐라미술인협의회의 4·3미술제 외에, 4·3평화재단이 3월26일부터 국내외 작가를 초빙해 대규모 기획전을 연다.

김유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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