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누군가의 제삿날. 13살 ‘시리’는 엄마를 따라 산속 동굴로 간다. 그곳에서 엄마는 10년 전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동굴에 있던 3살배기 시리를 데려와 딸로 키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엄마는 시리에게 나무 도장을 건넨다. 10년 전 죽은 시리의 친엄마가 시리의 손에 꼭 쥐여주었던 것이다. 당시 시리의 친엄마와 가족을 죽인 토벌대원 중 한 명이 지금의 외삼촌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날 시리와 엄마, 외삼촌은 다 함께 시리 친엄마의 제사를 지냈다.
4·3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시리의 삶을 그린 (권윤덕 지음·그림, 평화를품은책 펴냄)의 이야기다. 1949년 1월16일 토벌대원들이 제주 애월읍 어름리에 있는 빌레못 동굴에서 일곱 달 된 아기를 바위에 던져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빌레못굴 학살’을 모티프로 삼았다. 그러나 은 실화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책을 쓴 제주 출신의 권윤덕 작가는 이 슬픈 이야기 속 주인공을 문학적 허구를 통해 살려낸다.
그렇게 탄생한 은 끔찍한 학살,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제주4·3 사건의 고발에 그치지 않고 4·3의 의미를 새로 찾는 것”에 중점을 둔 권 작가는 주인공 시리를 통해 지옥 같은 학살의 역사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희망을 말한다. 더불어 시리와 양엄마, 외삼촌이 만든 새로운 단란한 가족을 보여주며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은 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 속에서 오랜 꿈을 복원한다. 권 작가는 첫 장에서 그 꿈을 펼쳐 보인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외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 제주로 돌아온다. 새로움 꿈도 함께 들어온다. 사람들은 남녀가 평등하게 손잡고 가는 시대, 자유로운 나라, 모두 잘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아주 오래전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자유와 평등, 인권, 생명, 평화. 살아남은 시리에게, 우리의 미래에게 전하고 싶은 꿈이다.
연화의 꿈“군인들이 동네 사람들을 다 죽염쪄게.”
마을에 피바람이 불던 날 엄마를 잃은 13살 ‘연화’. 오빠마저 사라지고 5살 동생과 둘만 남는다. 영문도 모른 채 연화네는 빨갱이 가족이 되었다. 살기 위해 살던 집에서 도망쳐 나와 바닷가 마을에서 동생과 숨어 지낸다. 그곳에서 연화는 먹고살려고 물질을 배운다. 낯선 곳에서 힘들고 지친 연화를 감싸주는 건 너른 바다다.
동화 (장성자 지음·김진화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제주 4·3 때 어머니를 잃고 어린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는 연화의 이야기다. 주인공 연화가 해녀의 꿈을 꾸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연화가 보여주는 희망의 서사는 힘이 강하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빛난다. 연화가 조금씩 살아가는 것을 꿈꾸어갈 때쯤 바닷가 마을에 어둠이 드리운다. 마을에 들어온 군인들은 폭도들과 가족을 가려낸다며 마을 곳곳을 뒤진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숨어지내는 연화를 고발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도 폭도로 몰릴까봐 연화에게 등을 돌리고 ‘모르는 아이’로 대한다. 그렇게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연화는 그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에게 남겨진 동생을 부탁하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돌아오는 그날, 나는 물옷을 입고 푸른 바다 깊숙이 자맥질을 할 것이다.”
는 제11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았다. 마해송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아픈 역사적 사건인 제주 4·3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잘 짜인 구성과 적절한 인물 설정으로 역사에 구속되기 쉬운 어두운 분위기를 극복하면서 동화다운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소년 봉달이의 슬픔동화 (정도상 지음·김종도 그림, 푸른나무 펴냄)은 ‘굇돌으’ 마을에 사는 소년 봉달이가 겪은 4·3 이야기다. 봉달이가 사는 제주는 핏빛으로 물든다. 총을 가진 경찰과 죽창을 든 서북청년단원들은 ‘양놈들과 친일파를 처단’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을 때리고 죽인다. 마을에 불까지 지른다. 평화롭던 마을은 갑자기 비명과 울부짖음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된다.
봉달이 가족도 비극의 역사를 피해갈 수 없다. 봉달이는 ‘양과자’를 주는 동네 형에게 산에 숨은 아버지의 은신처를 이야기한다. 어린 봉달이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몰랐다. 그 일로 봉달이는 바로 눈앞에서 죽창에 찔린 아버지의 붉은 피를 보게 된다.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봉달이는 이제 ‘양과자’를 먹지 않는다.
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봉달이를 통해 4·3 역사 속에서 평범하고 단란한 가족의 행복이 무참히 깨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화지만 아버지의 죽음, 동심을 이용하는 어른의 잔혹함 등을 애써 누그러뜨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한다. 그런 점에서 독자가 마치 그때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사건을 겪고 생각하고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을 쓴 정도상 작가는 “4·3을 다룬 현기영 소설 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주에 대해 깊이 알게” 됐다고 한다. 한라산과 정방폭포와 숱한 오름과 동굴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속에 담긴 제주도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을 쓴 것이다.
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4·3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지구상 어디에선가 여전히 똑같은 참극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을 위해 그 반복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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