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2024년 12월3일, 밤 9시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계엄이 있다가 없어진 세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날 일찍 잠든 내가 진정한 승자라고 했다. 영광 없는 승자로 100일 넘게 살고 있다.
그 겨울, 취재를 위해 한국 현대사 자료를 읽었다. 책 곳곳에서 계엄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12월3일까진 분명 옛이야기였는데, 다음날부터 두 글자가 명치에 걸렸다. 1948년 10월25일 전남 여수와 순천에 계엄 선포. 1948년 11월17일 제주에 계엄 선포. 1950년 한국전쟁 시기 수차례 계엄 선포. 1960년 4월19일 광주·대구·대전·부산·서울에 계엄 선포. 1961년 5월16일 전국에 계엄 선포….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계엄은 무서운 것이라 했다. 영장 없이도 자의적 체포와 구금이 가능한 힘(계엄법 제9조)이라고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전국 요시찰인 전원’을 구금할 것을 지시한다. 이렇게 시작된 예비검속은 즉결 처분으로 이어져,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예비검속은 일제의 ‘조선사상범예방구금규칙’에 기반하는데, 이 법은 미군정 때 폐지됐다. 법이 없어도 힘이 있었고, 그 힘은 계엄 선포로 명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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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음력 칠월칠석, 제주 모슬포 고구마창고에 감금됐던 이들이 트럭 짐칸에 태워졌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다. 달리는 차에서 그들은 몰래 고무신과 목침을 떨어트렸다. 차가 마을을 벗어난 것을 보고 죽음을 직감한 것이다.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이 고무신을 따라 도착한 섯알오름 웅덩이에는 수백 구의 주검이 있었다.(섯알오름 백조일손 사건) 4·3으로 제주도 사람 10분의 1이 사라졌다고 한다. 살아남은 이들마저 예비검속 대상자로 낙인찍혔다.
제주 사람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4·3에 관한 질문지 칸을 비워두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염치가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은 4·3을 비롯해 계엄에 희생된 그때 그분들을 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구금을 기반으로 ‘자유’를 지켜내자는 목소리는 지금도 나오고 있다. 내란을 ‘자유민주주의 수호’라 부르는 이들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2월27일, 국회에서 법안 하나가 조용히 통과됐다.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재석 의원 274명 중 6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찬성했다. 개정안은 난민 신청자를 포함한 이주민의 구금 기간 상한을 9개월, 연장시 20개월까지로 하는 내용이다. 기존 출입국관리법이 ‘강제퇴거 대상’인 외국인을 외국인보호소에 무기한 가둬둘 수 있도록 한 것이 헌법 위반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추진된 개정이었다. 그리하여 최대 구금 기간은 정해졌으나, 1년8개월이라는 기간은 과도할뿐더러 ‘재보호’를 허용했기에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개정안에는 ‘범죄 혐의가 있는 외국인은 장기 구금’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혐의만으로 사람을 오랜 시간 구속할 수 있다. 재판이나 영장 발부 등 절차도 필요 없다. ‘불법’이라 이름 붙인 이주민에게 한국은 늘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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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위험하니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광장에 나온 우리도 누군가의 눈에 위험 요소인 걸 기억해야 한다.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협을 끼칠 만한 불온과 위험을 다스릴 ‘특별한 조치’가 계엄이다.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이들도 누군가의 눈에는 위험한 세력이었다. ‘타자’를 분리하고 구금하고 추방하여 ‘우리’의 안전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계엄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건 탄핵 여부와도 별개의 일이다. 내란 시도로 열린 광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돌아보게 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광장의 인파 사이에서 생각한다. 어떻게 과거가 아닌 지금을 살 것인지.
희정 기록노동자·‘뒷자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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