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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감각하기

등록 2025-01-17 13:18 수정 2025-01-22 16:36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연말부터 새로운 운동을 배웠다. 근력과 근지구력 향상을 주목적으로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과는 다르게, 신체의 복합적인 움직임과 총체적 기능성 향상에 목적을 둔 펑셔널 트레이닝(Functional training) 관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 관점에서 바라본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걸음마를 처음 뗐던 생후 10개월 무렵으로 돌아간 것처럼, 땅에 교대로 발을 딛고 지면을 밀어내며 부드럽게 흔들리는 양 주먹을 추로 삼아 걷는 것부터 다시 배운다.

삶의 감각, 시민의 감각

지금까지 해본 운동을 손에 꼽아보니 한 손이 모자랄 정도다. 운동마다 매력도, 배우는 방식도 다른데, 지금 배우는 운동의 특징은 선생님이 말씀을 아주 많이 하신다는 것이다. 교정과 재활 수준에서 시작한 나와 친구들을 ‘제자’로 받아들이며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그러니까 신발끈 묶는 법부터 가르치다보니 강의하는 시간이 길다. 특히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운동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지우려고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이미 익숙해져 편한 방식으로만 움직이려는 습관과 그런 몸짓을 합리화하려는 관성적 사고를 놓아야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고와 행동 패턴을 깨부수는 ‘언러닝’(Unlearning)인 셈인데, 선생님의 열성적인 태도 덕에 어쩐지 구마(귀신을 쫓아내는 일) 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하루 종일 일하며 달궈진 머리와 둔해진 몸으로 운동하러 가면, 몸의 정교한 감각을 호명하는 말에 바로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있는 줄도 몰랐던 근육에 신호를 보내서 움직이게 하려면 뇌가 깨어나야 하는데, 낯선 지시를 이해하겠다고 골똘해지면 정신은 현재를 떠나가고 몸은 굳어버린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방해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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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운동을 배울 때 가장 필요한 건 ‘감각’이다. 머리도 마음도 아닌 몸의 감각. 감각을 수용하는 건 지식을 얻거나 감정을 깨닫는 것과 달랐다. 그것을 익혀가며 내게 일어나는 변화가 신비롭다. 기울어진 줄도 몰랐던 몸의 축이 바로 섰다. 감각을 가르치고 배우는 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나의 새해 화두는 ‘감각’이 되었다.

감각 중의 최고는 아무래도 생의 감각일 거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가장 최근에 느낀 건 한겨울 머리 위에 내려앉는 햇볕의 따뜻함이다. 찬 공기 속 따스한 정수리를 느꼈던 광장이 떠오른다.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다양한 몸들과 함께 광장에 존재할 때면 민주주의를 ‘아는 것’을 넘어 ‘감각’하게 된다. 자기 자신인 채 시민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살아 있다는 실감을 준다. 차별적인 시선과 제도로부터 소외됐던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구나! (네가 퀴어라는 걸) 알아두겠다!” “(어떤 성별을 좋아하든) 문제없다!”라고 답하고, “또 누구를 위해 싸울까요?”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연대 정신을 목격하고서는 살아 있어 기쁘다는 마음까지도 들게 한다.

감각을 통과한 몸으로 맞을 미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감각의 영역이야말로 정치적 장소라고 얘기한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몫 없는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분투하는 정치가 바로 이 감각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헌법 조문을 학습하는 것과 헌법 정신을 감각하는 것도 다르다.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을 비호하는 법조인들보다 내란 모의 진상에 분노하며 광장으로 뛰쳐나가 섞여 외치는 이들이 헌법 정신을 더 생생히 감각할 것이다. 감각은 우리 사회의 정의와 부정의를 가르는 경계가 되고 있다.

내가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운 건 모든 움직임에 앞서 그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새해에는 사회의 토대가 될 민주주의를 다시 배우고 싶다. 광장에서 솟아난 새로운 감각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감각을 통과한 몸으로 이야기될 민주주의를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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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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