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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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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대통령입니까

등록 2025-01-10 21:32 수정 2025-01-13 17:55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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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의 빡빡한 방문진료 일정을 생각하며 잠을 청하던 중이었다. 잠들기 전 휴대전화로 잠시 뉴스를 보다가 이상한 속보를 확인했다. 비상계엄 선포. 기사가 미처 기록되지 않은, 제목만 달린 기사를 여러 언론에서 게재했다. ‘이상하네, 우리나라 대통령이 전두환이었나' 생각하며 오보이길 바랐다. 오보는 아니었다. 군인들이 움직인다는 소식을 확인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 ‘유혈사태가 일어나면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뉴스를 확인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의료 시스템이 마비된 상황인데 부상자가 생기면 의료 현장은 말 그대로 무너지고 말기질환자, 노쇠한 어르신들도 병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르신들이 병원에 가도 발길을 돌려야 했던 상황들을 접해왔던 터라 걱정은 의료 상황으로 번졌다. 내일은 평소처럼 진료할 수 있을까? 이 시국에 한집, 한집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황당한 소식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이 커졌다. 국회의원들이 겨우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했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간신히 잠들었다. 늦은 밤 국회를 찾아간 시민들 덕분이었다.

해가 밝아 약속된 환자들을 찾아뵈었다. 매번 같은 일상이었는데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첫 번째 환자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른 아침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이 이상하다고 찾아오셔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연락이 왔다. 찾아가 직접 만나보겠다고 연락드리고 찾았다. 거동을 못하는 어르신은 밤새워 침대에 누워 뉴스를 시청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편마비, 인지 저하 증상이 있고 말이 어눌하신 분이었다. 가족이 없어 홀로 지내며 삶의 의욕이 없어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식사 잘하시고 약을 잘 드시라고 조언을 건네면 웃는 얼굴로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해주셨다. 사태 이후 첫 만남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웃으며 “저 미친놈, 계엄에 실패했어”라고 말씀하신다. 속으로 ‘어르신께서 누가 미친놈인지 정확히 아시네' 하며 판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요양보호사의 우려와 달리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어르신들을 예정된 일정대로 만났다. 우리의 일상이 파괴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누가 미친놈인지 정확히 아는 국민이 있기에 비상계엄은 일종의 웃음거리가 됐다. 다만 여전히 의료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고, 불안한 정치 상황으로 더 악화할 경제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며칠 지나고 서울 어느 쪽방 지역에 치매가 심한 독거 어르신 진료 요청을 받고 찾아갔다. 의뢰해준 쪽방 상담소에서는 치매가 있는데 돌아다니다가 사고가 있을까 우려했다. 최소한의 돌봄 관리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간단히 인지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날짜, 집 주소 등을 여쭤보았다. 비교적 정확히 대답을 잘하셔서 치매가 심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혹시 현재 대통령이 누구인지 물었다. 인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 중 하나다. 쉽게 대답하실 줄 알았는데 대통령이 누구였더라 하며 아무 이름도 대지 못하셨다.

 

실패한 계엄으로 경제·일상 악화

사건도 있었고 시끄러우니 당연히 아시리라 생각했는데 결국엔 대답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 치매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어르신에게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크게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기억할 필요 없는 정보가 아니었을까. 비상계엄이고 뭐고 권력자들의 권력놀이라는 생각도 드니 화가 났다. 정치영역은 많은 이의 삶과 멀다. 하루를 버티기 힘든 분들은 그저 삶이 조금 나아지기만을 바라지 않을까. 비상계엄 등 그들만의 권력 싸움 속에 약자를 돌보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고물가에 삶은 계속 팍팍해지는데 아픈 이들에게 조금은 살 만한 겨울이 되길 바랄 뿐이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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