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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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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고민

등록 2025-02-14 20:26 수정 2025-02-19 17:28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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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비용이 걱정이네요.”

오래된 빌라 4층에서 부모님을 돌보는 아들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전하며 장례 비용 걱정부터 했다. 두 달 전 주민센터 의뢰로 처음 찾아간 이 집은 아들이 파킨슨 증상으로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와 알코올 남용 등의 문제로 치매 증상이 심한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혀 거동 못한 채 누워 지내고, 의사소통할 수 없었다. 그래도 기침, 가래 증상 정도를 제외하면 비교적 잘 지내고 계셨다. 옆방에서 지내는 어머니는 움직이지 못한 채 눕거나 가끔 앉아 계셨다. 파킨슨병, 척추질환 등으로 통증을 호소하여 약을 조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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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집에서 만나지 못하던 부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해서 이 집에 갈 때면 간호사님과 “오늘 운동하는 날이네요”라고 말하며 올랐다. 보호자가 우리의 방문을 원했던 이유도 이 계단이었다. 거동이 어려운 부모님을 이제 병원에 모시고 가기 어렵다고 했다. 어머니가 오랜 기간 대학병원에 다녔는데 그동안 어떻게 갔는지 의문이었다. 사설 응급차를 불렀다고 하는데 계단을 어떻게 내려갔는지.

아직 찾아뵌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던 중이었다. 쉽게 호전되지 않는 아픔과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마주하고 살아갈지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보호자인 아들은 막막한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주민센터에 소견서를 작성해드렸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하게 아버지 상태가 안 좋아졌다. 혈액검사 결과도 비교적 괜찮았고 식사 등 일상생활도 유지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응급한 상황이 생기면 119에 연락해보시라고 누차 말씀드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연락했다. 마침 찾아뵙기로 한 날이었다. 서둘러 찾아뵙고 아버지를 살펴보니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옆방에 있는 어머니가 어렵게 휠체어를 타고 아버지와 아들이 생활하는 방으로 왔다. 어머니는 흐느꼈다. 아들은 담담히 아버지에게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조촐했지만 잠시 가족이 모여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의료진과 요양보호사가 함께했다.

다만 장례 비용에 대한 걱정으로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했다. 사망을 확인하고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며 이후 과정을 어머니와 상의해보라고 했다. 얼마 뒤 다시 도착했을 때도 아들은 주저했다. 주변 이웃들과 주민센터에도 도움을 청해보라고 나름 의견을 정리해서 드렸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시라 하고 다음 진료를 위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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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마주 잡았다

아들의 고민을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먼저 연락하지 않고 기다렸다. 예정대로면 몇 주 지나서 어머니 진료를 가면 될 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예정된 진료를 앞두고서야 연락했다. 아들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평온했다. 선생님 덕분에 잘 보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찾아뵙고 얼굴을 마주하니 아들은 간략히 그간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이웃들의 도움을 받았고 주민센터 소개로 오신 왕진 의사 선생님께서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주셨다고 강조해서 말한 덕분에 모든 게 수월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처음 보는 그의 밝은 표정을 통해 이 과정을 무사히 해냈음을 짐작했다. 어찌 됐든 잘됐다고 생각했다.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손을 맞잡고 헤쳐나갈 수 있었다. 다소 어두웠던 얼굴이 조금 밝아진 것 같고, 그의 짐이 조금은 줄어 보여 안도했다. 평소처럼 어머니를 찾아뵙고 진료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또 새로운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보려 한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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