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경쟁 프로그램이 인기다. 아마도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 그대로의 반영이기 때문이리라. 우리처럼 경쟁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 경쟁 과정의 치열함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사실 자본주의에서는 별의별 게 경쟁이다.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몸매와 처세술, 심지어 승차감과 맛까지 모두 경쟁이다. TV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언젠가부터 경쟁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도, 아마 나도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신민이기 때문이리라.
설탕공예와 어머니의 된장국
그런데 유난히 즐기지 못하는 경쟁 프로그램들이 있다. TV 화면과 시감각을 통해 전달되기가 어려운 맛이라는 가치를 다루고 있고,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과 표정만 가지고 미각과 그 순위를 유추해내기 어려운 나 같은 TV 초심자들은 답답함을 감내해야만 하는, 최소한 핥는 TV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그래야만 하는 요리 경쟁 프로그램은 그렇다고 치자.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비교 불가능한 가치도 있다. 가장 좋은 예는 아마도 예술작품 경쟁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나와서 작품(조각·회화·퍼포먼스 등)을 만들고 순위를 겨루자는 건데, 이게 또 도통 공감이 안 간다. 내가 좋다고 하는 작품은 심사위원들이 혹평을 해대고, 반대로 내가 유치하고 후지다고 생각한 작품은 심사위원들이 핏대 세워 칭찬해대기 바쁘니, 도대체 어느 변죽에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네. 나와 심사위원 간에 벌어지는 엇박자가 수회 계속되다보면, 어느 정도 애청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트렌드 직감력, 순위 및 기준에 대한 감각 배우기를 나도 모르게 포기해버리게 되고, 결국 시청 동기와 흥미를 잃게 된다. 남는 것은 참여 예술가들의 질투와 암투 같은 잔재미뿐.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과 즐길 수 없는 프로그램의 차이는 무엇일꼬. 나도 경쟁신 좀 빙의되어본 자본주의 괴뢰키드라고 자부했건만, 나도 못 따라가는 경쟁과 순위 매기기가 있단 말인가. 있다. 예술이 그렇다. 예술품은 사실 경쟁되기가, 비교되기가 어려운 가치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내가 즐길 수 있었던 경쟁 프로그램은 모두 상품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상품엔 기준이 있으니, 경쟁 가능하고 비교 가능하다. 가수, 패션모델, 자동차엔 기준이 있다. 잘 팔리나 안 팔리나라는 기준이 그것이다. 그것들이 상품이다. 반면에 내가 못 즐기는 경쟁 프로그램은, 불행히도 상품화가 어려운, 결국은 기준 잡기가 어려운 가치를 다룬다. 예술품은 사실 상품화가 어렵다. 본질적으로 비교가 안 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에서 보았던 한 설탕공예의 달인, 수십 년을 연마한 기술로 설탕과자에 미세한 무늬까지 새겨넣던 그 달인의 작품이, 과연 어떤 예술가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단돈 1만원에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설탕과자가 과연 피카소의 몇천만달러짜리 작품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나? (사실 요리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떤 궁중요리사가 끓인 찌개가 우리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보다 과연 맛있을까? 난 우리 엄마 된장찌개가 우주의 모든 엄마들, 우주의 모든 된장을 통틀어 가장 맛있다고 자부한다.)
진실은 우리가 아직 안 살아본 것에경쟁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은, 우리가 경쟁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일 뿐임을 증명하지,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하진 않는다. 진실은 우리가 아직 안 살아본 것에 있을 수 있다. 경쟁은 지금까지의 사실이었지, 이제부터의 진실이 아니다. 난 아직도 음악이 상품이기 전에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1인, 그래서 <k> 막판이 되자 심사위원들이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에 더 초점을 맞춰서 판가름을 했다고 생각하는 1인이고, 아직 영화도 상품이기 전에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1인, 그래서 개봉 영화마다 별점을 매기는 작태가 꼴사납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김곡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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