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간판이고 메뉴고 영어 일색인 탓에 아는 사람이나 알던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이제는 전 국민이 다 알게 됐다. 건강했던 20대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 사건도 충격적이지만, 이후 속속들이 밝혀진 해당 기업의 위법행위가 상당히 심각하고 책임자들의 대응도 지독히 뻔뻔했기 때문이다.
런던 특유의 감성을 재현해 “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과 스타일리시한 응대, 근사한 바이브”를 구현하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지만 실상 그들이 영국에서 들여온 것은 산업혁명 초기의 살인적인 노동환경이었다. 카페 창업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던 젊은 노동자는 사망 직전 일주일에 80시간을 일했고, 15시간이 넘도록 밥 한 끼 먹지 못한 날도 있었다고 한다. 18세기 런던의 아동 노동자들이 탄광이나 면직물 공장에서 받던 처우와 다를 바 없었다. 무엇보다 이 카페의 창업자가 “다른 누가 되지 않고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을 독려하는 개인 브랜딩 전도사로 활약 중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의 극치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려 쓸모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대표 슬로건이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도 신자유주의 체제로 본격 전환하면서 사회는 기업과 자본, 투자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과도한 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공정으로 치부하는 데 점차 익숙해졌다. 발목을 적시던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서늘한 변화를 몸소 겪어야 했던 윗세대와 달리 ‘신자유주의 키드’는 태어나자마자 무한경쟁의 사회에 내던져졌다.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이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 배웠지만, 이 목표는 개인이 노력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일자리는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만 주어진다. 유수의 대기업이나 외국계 회사가 무급 인턴십 제도를 당연하다는 듯 운영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길어지는 취업 준비 기간을 수월하게 감당할 수 있고, 무급으로도 몇 달간 기꺼이 일할 수 있는 이들만 마침내 그 일자리를 얻는다. 적정 시간을 일하고 원할 때 휴가를 쓸 수 있으며, 해고 위험도 없는데다 높은 급여에 직업적 성취감까지 얻는 좋은 일자리는 가난한 집안 혹은 지역 출신의 청년들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너머에 있다. 개인 브랜딩에 꼭 필요한 취향과 안목, 개성 역시 오랜 시간과 밑천을 들여야만 기를 수 있기에 창업이나 콘텐츠 개발 또한 이들에겐 쉽게 꿈꿀 수 없는 일이다. 줄 서서 베이글을 먹고 앞다퉈 인증샷을 올렸던 수많은 젊은이 또한 이렇게라도 문화자본을 축적하기 바랐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키드의 삶은 그 자신이 부모 세대가 될 무렵 더욱 극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집이 있고 육아휴직을 낼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은 기차선로처럼 영원히 만나지 않고 그 위로 신자유주의가 폭주한다. 이 키드들의 생애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못지않게 극적이고 곡절이 많을 테지만 이들의 서사는 재현되지 못한다. 아직 ‘키드’이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제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청년에게 열정과 패기만 강요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일회성 정책으로 청년 표심만 붙들려는 노쇠한 정치가 횡행하는 한 키드는 자라지 못한다.
사망한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삶의 태도를 갖췄던 그의 일과 생애는 더 오래 기억돼야 한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법인(法人)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함은 물론이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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