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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영점사격

등록 2026-03-09 18:11 수정 2026-03-09 18:1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하이닉스 성과급, 충주맨의 역량, 최가온 선수의 집안. 왜 내 것이 아닌데 화가 나세요?”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숱하게 퍼진 게시물이다. 십 대 운동선수가 고생 끝에 이뤄낸 성취마저 질시하는 댓글이야 볼썽사납지만 납득 못할 것도 아니다. 솔직히, 화를 낼 만도 하지 않나. 지금 화내는 사람들은 그저 번지수를 잘못 짚었을 뿐이다. 그들 또한 하이닉스 직원들과 충주맨, 최가온 선수가 오로지 운이 좋거나 때를 잘 만나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왜 나는 아무리 애써도 저 안정과 풍요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지에 분통 터졌을 것이다. 어린 시절 꿈꿨던 삶의 도약과 변화가 도무지 불가능한 현실에 분개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가 자녀에게도 대물림될 것이 뻔한 이 상황에 비관했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누구에게 화내야 할지 모르는 것뿐이다.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까

여기에 대고 노력이 부족한 탓이니 자업자득이란 말은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돈 없는 집에서는 자식 예체능 시키지 말라던 구설은 아주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국룰’이 아니었던가. ‘있는 집’은 자녀의 미래를 일굴 양질의 교육 기회와 기초 자산을 수월하게 제공한다. 그렇게 저 앞의 출발선에 선 이 소수가 근로소득과 금융자산 모두에서 우위를 점하고 공동체가 키워낸 과실을 제일 먼저, 가장 많이 가져간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인데 다수 국민은 여전히 가난한 이유다. 취업준비생 열에 아홉이 에스케이(SK)하이닉스를 위시한 대기업 취직을 희망하지만 정작 현실은 열에 한 명만 입사한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 역시 전체 이직자의 12%에 불과하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연봉 차이는 최대 2.5배이며, 비수도권에 사는 소득 하위 50% 부모의 자녀 중 80%는 중장년이 되어도 여전히 소득 하위 50%를 벗어나지 못한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개천에서 난 용’ 이야기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내러티브로 극화돼 구조적 불평등을 숨긴다. 이런 환경에서 당연히 가능할 리 없다. 1986년 아시안게임 3관왕을 달성한 임춘애 선수조차 자기는 라면만 먹고 달린 적이 없다고 여러 번 공언했다.

임춘애도 라면만 먹고 달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수긍해주지 않는 이 분노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기계화 농업이 도입되면서 은행과 지주들은 기존 소작농들을 몰아내려 트랙터로 그들의 집을 밀어버린다. 분노한 농민들이 총구를 트랙터 운전사에게 겨냥하지만 운전사 또한 이웃의 가난한 청년일 뿐이다. 청년은 은행 지점장의 명령을 받았고, 지점장은 본사의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총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농민들이 복수해야 할 괴물은 누구인가. 자본주의의 끝없는 탐욕과 이를 방관하는 정부라는 것을 소설 밖의 우리는 이제 안다. 한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가 완화되지 않는 한, 이 분노는 결코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운 좋게 ‘잘나가는’ 사람이 새로 나올 때마다 트리거가 되어 다시 폭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에 더 널리 퍼져야 할 정보는 충주맨의 연봉이나 하이닉스의 성과급, 최가온 선수가 사는 아파트 이름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를 낱낱이 드러내는 가장 현실적인 숫자다. 이거야말로 다가올 6·3 지방선거를 타깃으로 한 영점사격의 탄환이 될 것이다.

 

신성아 ‘탐욕스러운 돌봄’ 저자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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