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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진상 규명 의지

여야, 세월호 유가족들 완전히 소외한 채 특별법 합의안 내놓아…

진실 찾는 데 꼭 필요한 수사권·기소권은 다 빠져
등록 2014-08-12 16:46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는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반대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는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반대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14일째,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25일째인 8월7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손을 맞잡았다. 여야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주요 내용에 합의하고 8월13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특별검사는 현행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후보추위원회가 추천한다. △진상조사특별위원회(17명·진상조사위)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각 5명, 대법원장과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각 2명, 유가족이 3명을 추천한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는 “합의 내용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반발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의 문제점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풀어봤다.

성역 없는 조사 위한 권한 다 빠져

-진상조사위는 왜 강해야 하나?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지닌 막강한 진상조사위를 바란다. “그 많은 아이들이 물에 잠겨가던 시간에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내려면 기존 권력집단에 휘둘리지 않는 힘있는 진상조사위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과거 여러 과거사위원회에서 진실 규명을 하려 했지만 국가기관이 협조하지 않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게 유가족의 의지다.

지난 7월 국회에서 진행된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을 지켜보며 유가족들은 그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해양경찰은 국정조사 기관보고를 앞두고 국회의원이 100여 통의 전화를 하고 4차례 공식 요구를 한 뒤에야 겨우 자료를 내줬다. 그것도 보고 당일(7월2일) 새벽 1시께였다. 청와대는 요청한 자료 205건 중에서 단지 7건만 제출했다. 그나마 7건도 모두 인터넷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기관에 휘둘린 탓에 국정조사는 의혹만 더 키웠다. 사고 당일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대통령이 과연 사고 직후 대응 방침을 지시한 게 사실인지, 해경이 사고 이후 에어포켓의 존재 가능성을 어느 정도까지 믿고 구조작업을 한 것인지, 사고가 발생한 정확한 시간은 언제인지 등 앞으로 규명해야 할 과제만 89가지나 생겼다. (7월21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의 국회 국정조사 기관보고에 대한 평가 발표회) “그야말로 성역 없는 조사를 위한 권한이 필요하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청와대까지도 수사할 수 있어야 하며, 조사에 불응할 때 사법적 권한으로 조사를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이 드러날 때 기소할 수 있는 권한도 필요하다.”(7월7일 가족대책위의 ‘4·16 특별법’ 촉구 기자회견)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수사권과 기소권이 여야 합의안에서는 다 빠졌다.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 “전례가 없다”며 반대해온 새누리당의 의견이 100% 반영된 결과다. 이들은 진상조사위가 청와대와 현 정부의 주요 인사에게 칼날을 들이댈까봐 우려해왔다. 예정대로 8월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처리되면 이르면 10월부터 진상조사위가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120명 안팎의 직원들이 실무조사를 맡으며 활동 기간은 1~2년이다.

특검 수사는 진상 규명 아닌 처벌이 목적 -동행명령권·자료제출권 등으로 조사권을 보장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한계가 분명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과거사위에서도 수사권 부여가 논의됐지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반대해 실현되지 못했다. 그 결과 경찰청, 국가정보원, 기무사 등이 과거사위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진술 요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 김영진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은 “경찰청 등 기관이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하면 강제로 볼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국가정보원 직원들 중에는 고소하겠다고 협박한 사람도 있었다. 기무사는 비공식적으로 ‘인권침해다.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권이 있었다면 진술을 거부하거나 제대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응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행명령권(과태료 3천만원)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이명박 특검법’의 참고인 동행명령제가 헌법의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2008년 1월). 안경호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과거 현직 검사를 상대로 동행명령권을 집행하러 갔는데 본인이 거부해 강제 수단이 없었다. 과태료도 행정소송을 통해 벌금이 경감되는 등 실효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우려했다. “출석요구서를 발송하고 자료 제출 요구서를 들이민다고 권력기관이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할지 의문이다. 출석했더라도 관련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핵심 자료를 은폐할 경우 이를 강제할 대책이 없다면 진상조사의 효용성은 없어지고 만다.”

-특검이 진상을 규명한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주지 않는 대신 특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특검은 제한적이다. 첫째, 형사처벌 대상자만 수사한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복합적인 구조와 진상을 파악하는 데 부적합한 도구다. 특검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의 목적은 진상 규명이 아니라 처벌이다. 수사가 진실을 찾는 데 기여하는 면도 있지만, 수사만 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을 일방적으로 합의한 데 반발해 유가족들이 8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항의 방문하자 경찰들이 국회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을 일방적으로 합의한 데 반발해 유가족들이 8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항의 방문하자 경찰들이 국회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둘째, 특검법을 보면 수사 기간이 길어야 석 달(60일+30일)이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과거 특검이 실패를 거듭했던 이유다. 야당은 120일씩 두 번의 기회를 부여해 최대 240일을 보장하겠다고 주장하지만, 그 또한 새누리당과 합의해야 한다. 1~2년간 활동할 진상조사위와는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정정훈 변호사는 “특검과 진상조사위가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그 결과 진실 규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 진실 찾겠나?

셋째,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한다. 여야는 지난 6월 발효된 ‘특별검사 임명에 관한 법률’(상설특검법)에 따라 세월호 특검을 임명하기로 했다. 현행법은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협 회장과 국회 추천 인사 4명 등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2명의 특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돼 있다. 그러면 대통령은 이들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한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입맛에 맞는 후보자가 특검에 임명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여야 협상에서 마지막 중요 쟁점이 특검 추천권을 누가 갖느냐로 좁혀졌던 이유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으려면 특검 추천권만은 야당이나 진상조사위에서 가져야 한다고 야당은 주장했다. 반면 여당에선 상설특검법을 준용하자고 맞섰다. 이완구 대표는 상설특검법을 박영선 대표가 법제사법위원장 시절에 제정했다는 점을 들어 “손수 만든, 대단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법”이라고 밀어붙였다. 박영선 대표는 “비교적 균형이 맞춰진 법”이라며 새누리당 뜻에 따랐다. 가족대책위는 “유가족이 아무런 의견도 낼 수 없는 특별검사후보추위원회가 낸 후보 2명 중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한다. 이런 특검에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야 했던 진실을 내맡기라는 것인가.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진상조사위의 유가족 참여 보장은 야당의 성과다?

=진상조사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총 17명의 위원으로 이뤄진다. 여야가 각 5명, 대법원장과 대한변협 회장이 각 2명, 유가족이 3명을 추천하기로 했다. 유가족 추천 몫이 3명이라서 야당과 유가족 쪽이 주요 사항 표결에 유리해진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은 3부 요인(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하자고 주장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여야 각각 5명, 유가족 3명을 제안했었다. 유가족은 국회 추천 8명, 유가족 추천 8명(판사·검사·변호사 이상 재직자, 대학 전임교수 10년 이상 재직자 등 자격요건 있음)으로 꾸리자고 했다. 대통령·국회의장이 빠지고 유가족 추천 몫이 생겼으니 분명히 야당은 손해 보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은 여야 합의에 반대하는 유가족들을 만나 이 부분을 강조했다. 유가족이 특검 추천을 할 수 없다면 진상조사위에 유가족 추천 인사를 1명이라도 더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진상조사위 구성은 중요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의결하려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어 진상을 파악할 수 없어졌다. 알맹이는 빼버리고 껍데기만 갖고 온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진실화해위 위원장에 임명된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이에 동의했다. “위원장이 의지가 없으면, 위원회에 유족들이 과반으로 참여해도 견제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또 수사권이 없으면 허깨비나 마찬가지다.”

-세월호 청문회에 증인으로 누가 나오나?

=이완구, 박영선 대표는 청문회를 8월18~21일 열기로만 합의하고 증인 채택 협상을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 김현미 새정치연합 의원에게 맡겼다. 청문회는 애초 8월4~8일에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증인 선정을 놓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느라 연기됐다.

김기춘 등을 증인으로 세울 수 있을지도 미지수

핵심은 여야가 청문회에서 밝혀내려는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과 일가의 로비, 세월호 증축과 운항 인허가 과정에 초점을 맞춰 조사할 계획이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사고 직후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구조작업, 책임 규명에 총력을 기울이려 한다. 따라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 비서관,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현 인천시장) 등 3명을 증인으로 요청했다.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동안의 행적과 미흡한 구조 대응의 진상을 파악하려면 이들의 증인 출석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청와대 부속실 직원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적이 없고, 김기춘 실장도 이미 기관보고에 출석해서 다시 부를 수 없다고 맞선다. 새정치연합이 김 실장의 출석을 고집한다면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을 부르겠다고도 한다. 유병언 전 회장이 1997년 부도를 낸 뒤 회생했는데 이때 참여정부가 빚을 탕감해줬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증인에 대한 출석요구서는 늦어도 출석요구일 7일 전에 송달돼야 한다. 만약 8월10일까지 증인 채택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세월호 청문회가 다시 무산될 수도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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