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5층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장. 지난 4월16일 세월호 사고 해역에 가장 먼저 출동한 해경 123정장 김경일 경위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의원: 승객들에게 왜 퇴선 명령을 내리거나 선내 진입을 하지 않았나.
김 경위: 그때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구조를 요청한 사람은 다 구조했다. 못 봐서 구조를 못했을망정 나와 승무원이 본 사람은 다 했다.
항해사 “별 생각 없었던 것 같다”방청석에 앉아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구하긴 뭘 다 구했냐”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소리쳤다. 김 경위는 사고 현장의 지휘관으로서 퇴선 안내, 유도 조치를 소홀히 해 승객들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의원: 안에서 대기하던 선생님과 학생들은 밖에 헬기와 구조 선박이 와 있으니 좀 있으면 구조될 수 있다고 믿었을 텐데 따로 어떻게 구조 요청을 하겠느냐. 망치로 창문을 깨기만 했어도 안에서 지켜보던 수십 명을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경위: 일본이나 미국도 규정상 (배 기울기가) 50도 이상이면 (구조자들이) 진입을 못하는 것으로 안다.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의원: 자녀가 배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느냐.
김 경위: 당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못 들어갔다.
수의를 입고 함께 증인으로 출석한 강원식 1등 항해사, 김영호 2등 항해사 등 세월호 선원들도 “기억이 안 난다” “별 생각이 없었다”는 부실한 답변을 무한 반복했다. 핵심 증인인 이준석 선장과 박기호 기관장 등은 국회의 동행 명령을 받고도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여야는 한 번 더 이들을 부른 뒤 계속 응하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의원: 배가 기울어져 8시50분에 침실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탈출한 9시46분까지 1시간 동안 뭘 했나.
강 항해사: ….
의원: 배가 계속 기울어졌는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줄 몰랐나.
강 항해사: 뭘 했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의원: 이준석 선장과 탈출할 때 안에 있는 수많은 승객들은 생각 안 했나.
강 항해사: 별 생각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물살이 둘째로 빠른 맹골수도를 지나면서 어떻게 선장이 무경험자에게 조타기를 맡겨놓고 잠을 잘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강 항해사는 “그곳에선 질서만 잘 지키면 (안전하다)”고 말했다. 안덕수 의원(새누리당)은 “사고 후 가장 괴로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항해사는 “장시간 (검찰) 조사를 받다보니 너무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답했다. 안 의원은 “꽃 같은 젊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후회를 얘기할 줄 알았는데…”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서 10월15일 법제사법위원회 감사원 국정감사에서는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올라간 ‘서면·유선 보고’ 내용 일부가 공개됐다. 감사원이 청와대로부터 받은 ‘확인서’와 그 내용을 토대로 감사원이 이춘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경위서를 통해서다. 그동안 청와대는 ‘대통령 지정기록물’이라며 박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을 비공개해왔다.
4월16일 오전 10시께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침몰에 대한 첫 보고(서면)를 했다. 그 시각 세월호는 이미 선체 왼쪽이 대부분 물에 잠겨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대다수 승객이 실종되거나 선체에 갇혀 있을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오전 10시52분께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전달됐다.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옆 해상에) 떠가지고 구조한 이원을 제외하고는 (승객들이) 거의 다 배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실은 곧바로 그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다. 그 시각은 “(오전) 10시52분과 11시30분 사이”라고 적혀 있다. 그 뒤 박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서면·유선 보고만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21차례, 대체 어떤 보고 했길래?“총 구조자 수 370명(희생자 2명 포함)”이라는 잘못된 보고는 오후 1시에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에 전달됐다. 1시간30분이나 지난 오후 2시30분께 해경 상황실이 “166명(희생자 2명 포함)”으로 정정 보고했다. 국가안보실은 경위를 파악해 2시50분께 박 대통령에게 알렸다. 이후 2시간25분 뒤인 5시15분 박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이었다.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빨간색)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기 힘이 드느냐?”고 물었다. 세월호는 오전 11시18분께 침몰했고 오후 5시에는 거센 파도에 휘감긴 채 뱃머리만 떠 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사고 현장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고 21차례 서면·유선 보고를 했다는데도 박 대통령은 왜 전혀 상황 파악을 못한 것처럼 엉뚱한 질문을 했을까. 궁금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았는지, 그날 청와대 참모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잘잘못을 가릴 수 있다. 와 참여연대가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에 대한 보고 및 대통령의 조치 사항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한 이유다. 청와대가 비공개 결정을 내리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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