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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봉창 두드리는 질문, 박 대통령은 왜 던졌을까?

해양수산위 국감 증인 출석한 세월호 선원들은 사죄 않고…

법사위 감사원 국감장서 대통령 서면·유선 보고 내용 일부 공개돼
등록 2014-10-21 06:42 수정 2020-05-02 19:27
세월호 사고 현장에 출동한 해경 123정장 김경일 경위가 지난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본 사람은 다 구조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방청석 맨 뒤에 앉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이를 지켜보며 눈물을 닦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세월호 사고 현장에 출동한 해경 123정장 김경일 경위가 지난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본 사람은 다 구조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방청석 맨 뒤에 앉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이를 지켜보며 눈물을 닦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5층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장. 지난 4월16일 세월호 사고 해역에 가장 먼저 출동한 해경 123정장 김경일 경위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의원: 승객들에게 왜 퇴선 명령을 내리거나 선내 진입을 하지 않았나.

김 경위: 그때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구조를 요청한 사람은 다 구조했다. 못 봐서 구조를 못했을망정 나와 승무원이 본 사람은 다 했다.

항해사 “별 생각 없었던 것 같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구하긴 뭘 다 구했냐”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소리쳤다. 김 경위는 사고 현장의 지휘관으로서 퇴선 안내, 유도 조치를 소홀히 해 승객들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의원: 안에서 대기하던 선생님과 학생들은 밖에 헬기와 구조 선박이 와 있으니 좀 있으면 구조될 수 있다고 믿었을 텐데 따로 어떻게 구조 요청을 하겠느냐. 망치로 창문을 깨기만 했어도 안에서 지켜보던 수십 명을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경위: 일본이나 미국도 규정상 (배 기울기가) 50도 이상이면 (구조자들이) 진입을 못하는 것으로 안다.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의원: 자녀가 배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느냐.

김 경위: 당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못 들어갔다.

수의를 입고 함께 증인으로 출석한 강원식 1등 항해사, 김영호 2등 항해사 등 세월호 선원들도 “기억이 안 난다” “별 생각이 없었다”는 부실한 답변을 무한 반복했다. 핵심 증인인 이준석 선장과 박기호 기관장 등은 국회의 동행 명령을 받고도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여야는 한 번 더 이들을 부른 뒤 계속 응하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의원: 배가 기울어져 8시50분에 침실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탈출한 9시46분까지 1시간 동안 뭘 했나.

강 항해사: ….

의원: 배가 계속 기울어졌는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줄 몰랐나.

강 항해사: 뭘 했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의원: 이준석 선장과 탈출할 때 안에 있는 수많은 승객들은 생각 안 했나.

강 항해사: 별 생각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물살이 둘째로 빠른 맹골수도를 지나면서 어떻게 선장이 무경험자에게 조타기를 맡겨놓고 잠을 잘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강 항해사는 “그곳에선 질서만 잘 지키면 (안전하다)”고 말했다. 안덕수 의원(새누리당)은 “사고 후 가장 괴로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항해사는 “장시간 (검찰) 조사를 받다보니 너무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답했다. 안 의원은 “꽃 같은 젊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후회를 얘기할 줄 알았는데…”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서 10월15일 법제사법위원회 감사원 국정감사에서는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올라간 ‘서면·유선 보고’ 내용 일부가 공개됐다. 감사원이 청와대로부터 받은 ‘확인서’와 그 내용을 토대로 감사원이 이춘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경위서를 통해서다. 그동안 청와대는 ‘대통령 지정기록물’이라며 박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을 비공개해왔다.

4월16일 오전 10시께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침몰에 대한 첫 보고(서면)를 했다. 그 시각 세월호는 이미 선체 왼쪽이 대부분 물에 잠겨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대다수 승객이 실종되거나 선체에 갇혀 있을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오전 10시52분께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전달됐다.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옆 해상에) 떠가지고 구조한 이원을 제외하고는 (승객들이) 거의 다 배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실은 곧바로 그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다. 그 시각은 “(오전) 10시52분과 11시30분 사이”라고 적혀 있다. 그 뒤 박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서면·유선 보고만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21차례, 대체 어떤 보고 했길래?

“총 구조자 수 370명(희생자 2명 포함)”이라는 잘못된 보고는 오후 1시에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에 전달됐다. 1시간30분이나 지난 오후 2시30분께 해경 상황실이 “166명(희생자 2명 포함)”으로 정정 보고했다. 국가안보실은 경위를 파악해 2시50분께 박 대통령에게 알렸다. 이후 2시간25분 뒤인 5시15분 박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이었다.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빨간색)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기 힘이 드느냐?”고 물었다. 세월호는 오전 11시18분께 침몰했고 오후 5시에는 거센 파도에 휘감긴 채 뱃머리만 떠 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사고 현장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고 21차례 서면·유선 보고를 했다는데도 박 대통령은 왜 전혀 상황 파악을 못한 것처럼 엉뚱한 질문을 했을까. 궁금한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았는지, 그날 청와대 참모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잘잘못을 가릴 수 있다. 와 참여연대가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에 대한 보고 및 대통령의 조치 사항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한 이유다. 청와대가 비공개 결정을 내리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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