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2일 밤 9시40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 2시간30분간 세월호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가 “세상에 대해 굉장히 안심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드라마작가 노희경씨는 “순간순간 많이 행복했다”고, 또 다른 참여자는 “잘 살아야겠다”고 했다.
과 서울시 치유활동가 집단 ‘공감인’이 함께한 서울시 힐링 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세월호 트라우마 편’ 1회는 집단상담과 역할극을 접목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여자들은 먼저 ‘속마음’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힘들었던 기억,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일들을 솔직하게 적었다. 이 가운데 정혜신씨가 두 편을 골라 각색했다. 개인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활용했다. 프로그램 당일(10월22일), 다른 참석자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그 사연들을 읽었다.
1. “너무 무력하다”“의 ‘잊지 않겠습니다’를 받아들 때마다 자식의 부음을 받은 어미가 돼 운다. 한 번만 품에 안아보고 만져보고 싶다는 편지로 가슴이 무너져내리면서도 노란리본만 보면 지긋지긋하다는 시어머니에게 ‘당신 손자라도 그리 말씀하시겠냐’고 따지지 못한다. 사실 나는 전남 진도는커녕 안산도 가보지 못했다. 서울시청 앞 분향소만 멀리서 몇 차례 바라봤다. 기껏해야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지에 이름을 올리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세월호 관련 글에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누르는 게 전부다. 그런 내가 지금 아프다고 모이는 이곳에 끼어든 이유는 무력감 때문이다. 나는 너무 무력하다.”
‘속마음 편지’를 대신 읽으려고 앞에 나왔던 ㄱ씨가 첫 문장에 흐느꼈다. 그 모습을 앉아서 바라보던 40여 명의 참여자들도 훌쩍였다. 편지를 힘겹게 다 읽은 ㄱ씨가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극한 공포의 상황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 텐데…. 일주일에 몇 번씩 그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는 그래서 “아이를 잘 길러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험난한 세상에서 시련을 이겨내고 행복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 왜 낳았느냐고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두렵다.”
여기저기서 ‘공감백배(나도 그런 적 있어요)’라는 손팻말이 들렸다.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참여자가 말했다.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는데 나는 그냥 밥만 해준다. 대학 가면 뭐하나, 혼자 올바르면 뭐하나 싶어서….” 다른 참여자도 고개를 끄떡였다. “예전에는 전쟁이 난다고 하면 겁도 나고 불안했다. 지금은 수백 명의 아이들을 수장시키는 나라에서 전쟁이 나면 다 죽는 게 당연하지 그런다. 무감각해졌다.”
무감각은 트라우마가 낳은 부작용이다. 경기도 판교 환풍기 사고를 겪으며 일부 세월호 유가족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다. 세월호 엄마가 고백한다. “판교 사고 이후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이 상황이 슬프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를 잃고 내가 괴물이 된 것이 아닐까.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무섭다.” 트라우마 치유를 하지 않으면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 ‘나는 더한 고통을 겪었는데, 그래도 혼자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이 뿌리내리면 다른 사람의 아픔이 짜증스러워진다. 일상적인 소소한 감정이 부질없이 느껴지고 내 아픔에만 매몰된다. 그렇게 공감이,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져버린다.
2. “심장을 잃어버렸다”두 번째 속마음 편지는 안산 단원고 학생을 10년간 가르쳤던 교회 선생님이 보내왔다. “사고 2주 전 교회에서 영화 을 얘기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구조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임무를 다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돌아봤다. 사고 때 아이가 내 말을 기억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욱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닐까, 너무나 괴롭다. 그 뒤 나는 잠을 못 잔다. 자주 소스라치게 깬다. 며칠 전에는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참 좋구나’ 했다가 갑자기 세월호 아이들도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아서 차 밖으로 뛰어나왔다. 영영 이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사연을 듣고 한 참여자가 위로했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다. 만약 아이가 을 기억했다면 그 때문에 죽음 앞에서 담담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10년간 아껴주었던 선생님도 함께 떠올렸을 것이다.” 다른 참가자는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선생님은 가족 가까이에 있으니까 그래도 부럽다”고 했다. “남은 가족, 아이들을 앞으로 많이 보듬어주면 좋겠다. 지난 6개월간 고단했을 선생님은 내가 꼭 안아주고 싶다.”
속마음 편지를 대신 읽었던 ㄴ씨는 “아이를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잠시나마 행복했다”고 했다. “10년간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는 선생님은 보물이다. 아이가 그리울 때마다 엄마·아빠는 선생님 손을 잡고 가슴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선생님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건강하게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3. “끝까지 울자”치유의 시작은 함께 흘리는 눈물이다. 정혜신씨는 “같이 끝까지 울고 나면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유가족들도 자꾸 울음을 참는다. 울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그런다. 아니다. 머리가 아픈 이유는 참으면서 울기 때문이다. 마음껏 울면 개운하고 홀가분해진다.” 손으로 벽돌을 내리칠 때 깨지면 손이 아프지 않지만, 깨지지 않으면 손이 아픈 것과 같은 이치다. “실컷 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눈물은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고통을 나밖에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그 깊은 고립감에 삶의 끈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내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살 힘을 얻는다. 엄마가 그런 존재다. 지치고 힘들 때 엄마에게 위로받는 것은 그가 탁월한 상담가여서가 아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그 한마디에 울컥한다.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도 받아줄 엄마가 있다는,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말이다.
엄마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세월호 아빠가 진도 팽목항에서 경험한 일이다. 그날도 그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쭈그리고 앉아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꽤 추운데도 그는 설핏 잠이 들었다. 그때 모르는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그 아이는 핫팩을 아빠의 등과 무릎 사이에 살며시 넣어주고는 총총 사라졌다. 그 순간 아빠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먹고사는 것만 걱정하고 내 새끼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런 아이가 다 있었구나.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제 다르게 살자.’ 그 뒤 아빠는 다른 유가족을 도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 정혜신씨는 “아이는 잃었지만 아빠는 다른 세계로 진입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4. “변명해주고 싶다”곁에 있는 사람에게 참여자들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한 참여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소식을 친구들한테 전했다가 황당한 답신을 받았다. ‘세월호가 멀쩡한 사람을 버려놨네.’ 그는 친구의 연락처를 지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참가자는 “동창회, 산악회를 안 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친구를 만난다. 세월호 뉴스도 시끄럽다고 하고. 그 친구가 싫어지는데, 그럼 나는 친구를 잃어야 한다. 그것이 두려워서 피한다.”
노희경씨가 “변명해주고 싶다”고 나섰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한창 원고를 써야 할 상황이었다. 사흘간 울기만 하니까 가족들이 TV를 꺼버렸다. 한 달간 접촉하지 않고 일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요즘은 매일 108배를 하며 기도한다. 예전의 나처럼 그들도 잠시 TV를 껐는지 모른다.” 정혜신씨도 거들었다. “단원고 인근 연립 빌라에 희생자 가족들이 많이 모여 산다. 참사 직후에 엄마·아빠가 새벽에 일어나 울면 윗집, 아랫집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같이 울었다. 100일이 지나자 희생자 가족이 울면 이웃이 경찰에 신고한다. 그들도 직장에 가야 하고 살림을 꾸려야 하니까. 이웃의 고단한 일상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서울시민 힐링 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세월호 트라우마 편’ 2회는 10월2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다. 참여 신청은 누리집(h21.hani.co.kr)과 공감인 누리집(누구에게나엄마가필요하다.org)에서 받는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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