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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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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죄 묻기엔 너무 짧은 시간

세월호 선장 살인 혐의 무죄 선고 받아… 유가족은 망연자실,

검찰은 살인죄 입증 부족 동의할 수 없다며 항소
등록 2014-11-19 05:21 수정 2020-05-02 19:27
지난 11월11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이 피고인석에 앉아 1심 선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1월11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이 피고인석에 앉아 1심 선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월11일 오후 1시, 광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과 내외신 취재진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녹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들이 차례로 법정에 들어섰다. 무표정한 얼굴 너머 속내를 짐작하긴 어려웠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의 심리로 세월호 선장·선원 등 15명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재판장은 1시간여 동안 침몰 원인과 기소 혐의별 유무죄, 양형 요소에 대한 설명을 쉴 새 없이 이어갔다. “피고인들이 승객 구호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세월호를 탈출해 수많은 승객이 숨지고 다치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다. 피고인 이준석(선장)을 징역 36년, 강○○(1등 항해사)은 징역 20년, 김○○(2등 항해사)는 징역 15년, 박○○(3등 항해사)과 조○○(조타수)는 징역 10년, 신○○(1등 항해사)을 징역 7년, 박○○·오○○·손○○·이○○·전○○·이○○·박○○·김○○(기관부 선원)은 각각 징역 5년, 박○○(기관장)는 징역 30년에 처한다.” 선장에 대한 살인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3층 기관부 객실 앞 복도에 머물다 퇴선한 기관장의 경우, 바로 옆자리에 굴러떨어진 조리수와 조리원을 그대로 둔 채 퇴선했고 해경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행위는 사망의 결과를 인식하고 용인한 것이라며 살인죄를 인정했다. 선고가 마무리될 무렵, 한 어머니의 애끊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이건, 아니잖아요. 판사님…, 이건 아니잖아요.” 떨리던 목소리는 곧 오열로 바뀌었다. 이날 재판부가 내놓은 판결문은 148쪽이었다.

선장 퇴선 명령 있었나

검찰은 선장 등이 승객을 대피시키라는 퇴선 명령을 하지 않은 채 세월호에서 빠져나왔다고 보았다. 둘라에이스호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부터 승객을 탈출시키라는 교신을 받았지만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아, 승객이 사망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전에 있었고 이후 배에서 빠져나오기로 마음먹은 시점에 ‘승객이 숨져도 어쩔 수 없다’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타실 선원들 간에도 퇴선 명령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술은 엇갈렸다. 재판부는 해경정이 도착할 무렵 선장이 2등 항해사에게 승객을 퇴선시키라는 지시를 했고 2등 항해사는 무전기에 대고 이런 내용을 사무장에게 전달했다는 피고인 쪽 주장을 인정했다. 살인·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이유 중 하나다. 진도 VTS 교신 녹음 내용을 보면 2등 항해사는 오전 9시37분께 이런 말을 한다. “침수 상태 확인 불가하고, 승객들은 지금 해경이나 상선들 옆에 거의 50m에 근접해 있고, 지금 좌현으로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일단 탈출을 시도하라고 일단은 방송했는데, 좌현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선내에서 퇴선 방송이 이루어졌다고 착각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선장은 수사 과정에서 언제, 누구에게 퇴선 명령을 했는지 계속 엇갈린 진술을 했다. 그러다 검찰 11회 조사에서 퇴선 명령은 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이 살기 위해 탈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다. 법정에서 그는 “검찰 조사를 20일 동안 받았는데 하루도 잠을 잔 적이 없다. 검사님도 압박을 가하고 저도 생각해보니까 잘못했고 해서 그렇게 진술했다”고 말했다. 퇴선 명령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선내에서 퇴선 방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무부 직원 누구도 무전기를 통해 응답하지 않았다.

선원 간 사전 모의 있었나

검찰은 선원들이 퇴선 경위에 관해 거짓 진술을 하기로 모의했다고 의심한다. 2등 항해사와 수습 1등 항해사는 배에서 탈출한 뒤 해경이 정해준 모텔에 머물렀다. 두 사람이 머물던 모텔에 목포에서 혼자 지내던 1등 항해사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선장은 사고 직후 해경 집에서 머물다 구속됐다. 재판부는 사전 모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전 모의가 있었다면 적어도 수사 초기에 함께 지내거나 만난 적이 있는 피고인들이 퇴선 명령 시기나 경위에 대해 같은 진술을 해야 하지만, 서로 다른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또 세월호가 기울어진 직후 선원들과 조타실에 머물렀던 필리핀 국적 여가수는 피고인들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승객이 퇴선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아 승객을 ‘유기’했다고 보았다. 진도 VTS로부터 10분 뒤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말을 들은 9시26분께 승객을 이동 가능한 출입문으로 안내하는 조처를 시작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조타실에서 이동하기 어려워 구호 조치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9시26분 이후에도 선내를 이동해 탈출한 승객이 있었다.

선장 36년형 계산법은

이준석 선장은 살인·살인미수, 업무상과실 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선원법 위반, 해양환경관리법 위반 등 다섯 가지 혐의에, 징역 5년 이상 최고 무기징역 처벌이 가능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 위반 혐의, 유기치사·상 등 예비적 죄명이 덧붙여져 기소됐다. 유죄로 인정된 것은 유기치사상(최고 30년), 선원법 위반(최고 5년), 업무상과실 선박매몰(최고 3년), 해양환경관리법 위반(최고 3년) 혐의다. 유기치사상과 선원법 위반은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 적절한 구호 조처를 하지 않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가지 죄명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가장 중한 형을 정한 죄목 하나로만 처벌된다. 실체적 경합(별도의 행위로 다른 죄명이 적용된 것) 관계에 있을 때는 가장 높은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할 수 있지만, 개별 죄명의 형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 유기치사상(30년), 업무상과실 선박매몰(3년), 해양환경관리법 위반(3년)을 모두 합쳐 징역 36년이 선고됐다.

임정엽 재판장은 선고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는 불법 증·개축, 과적, 부실 고박 등 사유로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위험한 여객선이었다. 선사는 경비 절감을 위해 선장과 선원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시정하지 않았고 매출 증대를 위해 과적을 조장하고 부실 고박을 방치했다. 선박 안전 규정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기관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고 책임을 전적으로 피고인들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선고 직후, 유가족들은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책임자인 선장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는 자가 의무를 저버리고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수백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켰을 때, 결국 자신의 생명도 보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천명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은 너무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갖가지 원인은 물리고 물려 참사 뒤로 똬리를 틀었다. 책임져야 할 이들의 얼굴은 또렷하지 않다. 11월13일 광주지검 강력부(박재억 부장검사)는 이번 1심 판결에 대해 “(살인죄 등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광주=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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