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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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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될까?

여야 세월호 특별법안 최종 합의… 시행 때까지 독립성 퇴보할 여지 많아,

“국회 통과 뒤에도 벌칙 조항 강화 등 요구해야”
등록 2014-11-04 06:08 수정 2020-05-02 19:27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이르면 올해 말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10월31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참사 진상을 밝히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특별법안에 최종 합의했다. 여당은 세월호 관련 특별검사 후보군을 선정하기 전에 유족들과 상의해 반대하는 후보는 배제하기로 했다. 특별조사위 위원장은 희생자 가족 대표회의가 선출하는 위원이, 사무처장을 겸하는 부위원장은 여당 추천으로 국회가 선출하는 위원이 맡기로 했다. 이날 여야는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을 해체해 일부 업무를 신설되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로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안과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 규제·처벌법 개정안)에도 합의했다. 3개 법안은 11월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82일째인 지난 14일 오후 서울광장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노란 종이배가 놓여 있다. 종이배 뒤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는 국화꽃이 노란 리본 모양으로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82일째인 지난 14일 오후 서울광장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노란 종이배가 놓여 있다. 종이배 뒤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는 국화꽃이 노란 리본 모양으로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11월2일 경기도 안산에서 가족총회를 열어 세월호 특별법 최종 합의안을 받아들일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10월27일 광주지검은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이준석(68) 세월호 선장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유대균, 청해진해운 임직원, 해운조합 운항관리 직원, 인천해운항만청 공무원, 구명뗏목 점검업체 직원,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해경 등이 줄줄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국회에선 국정조사가 진행됐고, 감사원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이렇게 참사 200여 일이 지나가고 있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가.

선박 안전 규제 완화-과적-무책임한 선장-구조 실패. 한 가지로 매듭지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얽혀 세월호가 침몰했다. 애초 복원성이 극히 불량했다는 배에 승객이 올랐고, 구조는 우왕좌왕이었다. 국가 역시 참사 유발자임은 명백하다. 처벌을 위한 수사만으로는 정책 실패를 포함한 참사의 총체적 원인을 조망할 수 없다. 평생을 묵묵히 일해온 평범한 시민들에게 비탄을 안겨준 1997년 외환위기가 그랬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외환위기의 실상을 축소 보고한 혐의(직무유기)로 기소된다. 2004년 대법원은 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0년 강 전 부총리는 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외환위기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면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만든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일이 없으며 백서도 없다.”

치부 내보이지 않을 국가권력

대형 참사 뒤 질타를 모면하기 위한 땜질 처방은 또 다른 비극을 부를 뿐이다. 1993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참사의 1차적 원인은 과적과 정원을 초과한 승선으로, 세월호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여객선 안전관리 업무를 해양수산부에서 해양경찰청으로 이관시켰다. 세월호 참사 뒤, 이번엔 해경 해체가 대안이 됐다. 박상은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은 10월28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중간평가와 앞으로의 과제’ 토론회에서 “참사 뒤 선령을 다시 25년으로 되돌리는 대책만 있을 뿐 규제 완화나 안전 업무 민영화라는 정책엔 변화가 없다”며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으로 ‘자체 안전 관리 전담인력 채용 또는 전문회사 위탁’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안전사업이라는 새 돈벌이 분야를 정부가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가권력은 결코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내보이지 않는다. 참사 원인을 종합적으로 규명할 ‘독립기구’가 절실한 까닭이다. 이러한 활동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 제정에 대한 고민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됐다. 대한변호사협회, 피해자 및 유가족, 시민사회단체가 머리를 모았다. ‘416 세월호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하 피해자 단체안)이 마련됐다.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위원회에 부여했다. 피해 당사자나 유가족 외 시민들도 조사 신청이나 내부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 각 국가기관에 권고한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이러한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를 약 500만 명의 시민이 함께 염원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러한 청원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야는 특별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특별검사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조사위 활동 기간(최장 1년9개월)도 피해자단체 안보다 축소됐다.

충분한 예산 확보 등 과제들 산적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대안 마련까지는 험난한 나날들이 남아 있다. 독립기구인 국가인원위원회 출범 준비에 참여했던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인권위가 처음 만들어질 때, 조직·인력 규모 등을 놓고 정부와 여섯 달 동안 줄다리기를 했다”고 회상했다. 각종 규정 및 조사관 선발 등과 관련한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독립성을 퇴보시킬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시행령은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대통령령으로 공포된다. 각 부처의 의견을 받아들여 입법 취지를 후퇴시킬 수 있다. 충분한 예산 확보도 관건이다. 안경호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장은 지적한다. “국정조사에서 보듯, 기관들이 버틴다면 공문서 한 장 받기 힘들다. 특별조사위에 부여된 조사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별법 국회 통과 이후에도 끊임없이 벌칙 조항 강화 등을 요구해야 한다.”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비극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국가의 모습은 사실, 우리에겐 낯설다. 피해자 유가족들의 기나긴 한숨 끝에 시작될 진상조사는, 어떠한 역사를 쓰게 될 것인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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