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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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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찾는 게 인생의 목표”

광주지법 형사11부 10월21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진술 진행…

생존 학생 “친구 생각이 난다, 살날이 원망스럽다”는 글 전해
등록 2014-10-29 08:13 수정 2020-05-02 19:27
경남 거창 지역 학부모들이 10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에서 교도소 성격의 구치소가 학교 밀집 지역 인근에 들어서는 국책사업에 반발하는 상경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거창 지역 국회의원인 신성범 새누리당 의원이 거창군의 갈등 해결에 뒷짐을 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경남 거창 지역 학부모들이 10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에서 교도소 성격의 구치소가 학교 밀집 지역 인근에 들어서는 국책사업에 반발하는 상경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거창 지역 국회의원인 신성범 새누리당 의원이 거창군의 갈등 해결에 뒷짐을 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친구와 손잡고 나가기로 하고 잠수했다가 그만 손을 놓쳤습니다. 손을 놓은 그 순간과 친구들의 비명 소리가 떠올라 가위에 눌립니다.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혀옵니다. 밥을 먹다가도 친구 생각이 납니다. 친구의 말투, 생김새, 좋아하던 음식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80년, 90년 뒤에야 그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살날이 원망스럽습니다.”

지난 10월21일 광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최아무개 학생의 편지가 낭독됐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가 심리 중인 세월호 선장·선원에 대한 28차 공판일이었다. 희고 자그마한 편지지에 꾹꾹 눌러쓴 안타까운 이야기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울렸다. 학생을 대신해 편지를 읽은 장동원 세월호 생존 학생 학부모 대표도 여러 번 목이 잠겼다. 이날 법정에서는 피해자 진술이 3시간30분간 진행됐다. 실종된 교사의 아내, 생존한 화물기사, 생존 학생의 아버지, 희생 교사의 아버지, 희생 학생의 부모·형제, 희생 승객의 아들 등 15명의 피해자가 증언석에서 미리 준비한 글을 읽거나 가슴속 말을 쏟아냈다. 피해자 진술 전후, 중간에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희생자 추모 동영상이 재생됐다. 법정은 내내 울음바다였다. 몇몇 유가족은 괴로운 나머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법정 밖으로 나갔다. 선장과 선원들에게 너희가 인간이냐며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책임지게 하겠다”는 그 약속

이날 오전, 자녀를 잃은 유가족 70여 명은 안산 분향소에서 버스 두 대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피해자 진술이 예정된 유가족들은 써온 글을 버스 안에서 몇 번이나 읽고 고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담배를 피우면서도 “이런 부분을 꼭 말해달라”며 서로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 6월10일 첫 재판 때 재판장은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고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재판이 막바지인 지금도 유가족들은 실체적 진실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고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세월호 가족대책위 진상규명분과 위원장)씨는 “피의자가 확실한 이준석 선장을 왜 해경의 집에 데려갔는지, 선원들이 가까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내버려두고 왜 제주 VTS로 교신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라고 한다. 고 오경미 학생의 아버지 오태원씨는 해경과 정부 책임이 큰데도 말단인 선원들 책임으로만 몰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지난 넉 달간 유가족들은 재판 결과만 기다리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 단식, 노숙투쟁을 했다. 그러나 9월30일 여야가 특검 추천 과정 등에 유가족 참여를 사실상 배제하는 최종 합의안에 합의하면서 유가족들의 고민도 커졌다. 유가족의 진상조사 참여를 계속 요구하는 한편, 전국 곳곳 시민 간담회를 다니며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버스에 탄 고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씨는 유가족을 중심으로 “돈보다 사람이, 입시 경쟁보다 아이들의 꿈이 소중하다는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딸이 글쓰기를 잘했는데 집안 형편을 생각해 간호학과를 지망했다며, 다시 살아온다면 뭐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북돋아줄 거라고 한다. 이 말을 하는 김씨의 얼굴에 주름이 깊다.

유가족, “미필적 고의 논할 가치 없어”

가장 먼저 진술에 나선 이는 여전히 실종 상태인 단원고 체육 교사 고창석씨의 아내 민아무개씨였다. 생존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씨는 최후까지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자신은 나오지 못했다. 민씨는 “주검을 찾는 게 인생의 목표이고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인 비현실적 상황”이라며 “뼛조각이라도 찾아 아빠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흐느꼈다. 살아남은 화물기사 전아무개씨는 자신만 배에서 나와 유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선내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왜 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고 이지혜 교사(단원고 국어 담당)의 아버지 이종락씨는 딸이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학생들을 구하려다 4층 객실에서 참사 18일 만에 발견됐다고 했다. 이씨는 “자기들만 도망친 선장과 선원은 304명을 살인한 학살자”라며 엄중한 처벌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중학생 김아무개 학생에게 언니의 빈자리는 컸다. 언니와 친구처럼 고민을 나누고 화장품이나 옷도 같이 썼다며, 4월16일 이후 가족들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는다고 했다. 또 “엄마·아빠는 하나 남은 나마저 잃을까봐 늘 어딨는지 확인한다. 그런 엄마·아빠 걱정이 앞선다”며 수학여행을 떠난 언니가 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고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A4용지 4장 분량의 글을 차분히 읽었다. 박씨는 세월호와 같이 침몰 중인 상태에서 승객이 퇴선을 하지 않는다면 수장돼 모두 죽는다는 것은 당연하며 그 자체가 명백한 살인 행위이므로, “피고인들의 미필적 고의 또는 부작위 등은 논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 박보나씨는 듬직했던 동생이 재만 남은 것이 믿어지지 않으며, 지금 엄마는 고혈압, 아빠는 불면증, 중학생인 막내동생은 위장병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박씨는 “평생 분노와 고통 속에 살고 싶지 않다”며 정의로운 처벌이 선원들에게 내려지길 바랐다. 고 이승민 학생의 어머니 이은숙씨는 선원들을 향해 “학생 300명이 타고 있었던 사실을 정말 몰랐느냐”고 물으며 오열했다. 이씨는 증언 뒤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쓰러졌다. 많은 학생들을 구출한 화물기사 김동수씨는 4월16일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도 세월호 참사와 연관 없는 질환이라며 약값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김씨는 “선장이 살인자면 해경도 살인자고 나도 살인자다. 국가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며 정부의 부실한 구조와 사후 지원을 비판했다.

비통함과 통곡에 잠긴 법정

피해자 진술이 매듭지어지자 재판장이 말했다. “제출하신 동영상을 보고 재판부의 마무리 인사를 하려 했는데, 재판부가 미리 동영상을 보니까 너무 슬퍼서, 마무리 인사를 먼저 하고 동영상을 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몸과 마음을 다친 분들의 빠른 회복을 바랍니다.” 영상이 시작됐다. ‘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단원고 2학년8반 학생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가자 법정은 통곡에 잠겼다. 법정 경위도, 기자들도, 재판장도 눈물을 닦았다. 일부 피고인도 울었다. 영상이 끝나고 모두 퇴정했는데도 가족들은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오준호 작가·번역가·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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