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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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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가족’의 멍에, 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준석 선장 등 핵심 피고인에 대한 신문 이어가며 마무리로 향하고 있는 세월호 선장·선원들에 대한 재판
등록 2014-10-15 15:56 수정 2020-05-03 04:27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세월호 이준석(69) 선장은 지난 10월8일 광주지법 형사11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죽을죄를 졌지만, 살인을 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지법 법정으로 향하는 이 선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세월호 이준석(69) 선장은 지난 10월8일 광주지법 형사11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죽을죄를 졌지만, 살인을 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지법 법정으로 향하는 이 선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 선장·선원들에 대한 재판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가 심리 중인 선장 등 15명에 대한 재판은 10월21일 최후 변론과 검찰 구형을 앞두고 있다. 10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열린 21~23차 공판에는 사고 당시 조타를 지휘한 3등 항해사 박아무개(26)씨, 이준석(69) 선장, 1등 항해사 강아무개(43)씨 등 핵심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이 이어졌다.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검찰의 질문이 많았고 또 집요했다. 신문 과정에서 검사가 피고인이 ‘증거 부동의’한 진술조서를 인용하자 변호인이 즉각 이의를 제기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도 벌였다. 증거 부동의란 피고인이 조서 작성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 증거 채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다. 검찰이 피고인 3명에게 공통적으로 확인하려 한 것은 사고 직후 퇴선 명령 등 승객을 구조하려는 활동이 과연 있었느냐는 점이다. 검찰은 이러한 활동이 없었다고 본다. 반면 일부 피고인은 비록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퇴선 명령을 했고 구명벌을 터뜨리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퇴선 명령 내렸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10월8일 공판에서 이준석 선장은 살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 선장은 “유가족들에게 죽을죄를 졌지만 살인을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공소사실 가운데 한두 개만 인정돼도 교도소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이에 대해 불만은 없다”면서도 “자식들에게 ‘살인자 가족’의 멍에를 지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 선장은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퇴선 명령 여부에 대한 그의 진술은 계속 바뀌었다.

검사: 누구에게 언제 퇴선 명령을 내렸다는 것인가?

이 선장: 구명정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2등 항해사에게 퇴선 방송을 하라고 했다.

검사: 세월호 근처에 있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탈출시키면 구조하겠다”고 방송까지 했는데, 그때는 왜 퇴선을 위한 준비를 시키지 않았나?

이 선장: 둘라에이스호는 구조에 적합한 배가 아니었다. 물살도 세고, 승객들이 떠내려가면 구조가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검사: 둘라에이스호가 구조에 적합하지 않아 승객 퇴선 조치를 하지 않다가, 해경 구조선(123정)이 왔다니까 그땐 그 배가 구조에 적합한지 따지지도 않고 퇴선 명령을 했다는 것인가?

이 선장: 내 기억으로는 (퇴선 명령을) 했다.

1등 항해사 강씨도 10월8일 공판에서 선장이 퇴선 명령을 했다고 증언했다. 2등 항해사가 선장에게 퇴선에 대해 물었고, 선장이 하라는 쪽으로 답변했다는 것이다. 2등 항해사가 사무장에게 무전기로 연락하는 것을 보았으나, 전달이 잘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선원들이 구조된 뒤 사건이 너무 커지자 자신들의 책임을 줄이려고 실제 상황과 다르게 ‘퇴선 명령을 여객부에 전달했으나 통신이 잘 안 돼 명령 전달이 되지 않은 것’으로 입을 맞췄다고 판단한다.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로 넘겨졌다. 피해자 가족들을 대신해 재판장이 선장에게 물었다. “만약 피고인 가족이 일반 승객으로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면, 그렇게 아무런 구호 조치를 안 했을 것 같은가?” 답변은 이러했다. “가족이 탔더라도, 그 이상의 지시를 못했을 것 같다.” 사고 직후 자신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무능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사고 해역이 조류가 빠르고 선박이 많은 위험구역이므로, 당직 항해사가 레이더·타각지시기·선수 등을 신중하게 확인하면서 조타수에게 변침을 지시해야 하지만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보았다. 항해사의 미숙한 지휘가 세월호 침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3등 항해사 박씨는 10월6일 공판에서, 사고 해역이 다른 구간에 비해 특별히 위험하지 않으며 항해 지휘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류 정보 확인 않고 ‘감’으로 간 항해사

검사: 피고인은 사고 당시 140도로 변침된 것을 확인한 후, 다시 145도로 변침을 지시했는데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박씨: 그렇다. 레이더로 확인했다.

검사: (세월호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자료를 근거로) 당시 배가 조류에 밀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확인한 것인가?

박씨: 제대로 봤다. 레이더에는 배가 그렇게까지 많이 밀리지 않았다.

검사: 피고인은 그 시각에 사고 구역을 처음 항해했는데, 조류 상태와 같은 정보를 미리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박씨: 그런 정보는 받지 못했고, 항해하며 감으로 간다.

검사가 재차 “항해사가 정확한 정보도 없이 감으로 운항해도 되느냐”고 묻자 “검사님이나 판사님이 배를 타신 적이 없어서 이해를 잘 못하시는 것 같다”며 반박했다. 박씨는 경찰 조사 당시 수사관의 강압적 태도 때문에 진술을 거부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침 장소라서 변침하려고 했다고 하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동영상을 다 확보했다고 했다”며 “계속 윽박지르면서 왜 변침했냐고 했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변호인이 “아버지를 여의고 장녀로서 어머니의 부담을 덜기 위해 국립대에 지원한 뒤 선원 생활을 한 것이냐”라며 가정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박씨가 눈물을 터뜨려 재판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오준호 작가·번역가·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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