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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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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고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씨가 청와대 인근 청운동에서 있었던

76일 동안의 시위를 마치며 시민들에게 보낸 편지
등록 2014-11-11 09:28 수정 2020-05-02 19:27

11월5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농성장을 떠났습니다. 지난 76일 동안 유가족 뜻이 반영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대통령을 기다렸던 눈물의 장소입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7반 고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40)씨가 청운동을 떠나며 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_편집자


지난 11월5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76일간 머문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농성장을 떠나며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고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지난 11월5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76일간 머문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농성장을 떠나며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고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저는 단원고 2학년7반 오영석 엄마입니다. 76일 동안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대통령을 기다리던, 세월호 참사로 외아들을 잃은 엄마입니다. 노래를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던 우리 영석이가 가고 나서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엄마입니다. 영석이를 잃고 밥을 먹어도 내려가지 않아 하루 한 끼도 밥을 못 먹었지요.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76일 동안 나눈 마음, 기억하겠습니다.

겨우 눈을 붙였던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 오는 바깥이었습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을 처음 찾아갔던 날, 비닐 하나를 덮고 누워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너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대통령을 만나서 네가 죽은 이유는 밝혀달라 말하겠다고. 우리 가족은 결국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왔습니다. 그러나 76일 동안 만났던 이들의 기억만은 잊지 않으려 합니다.

말을 걸지 못해, 며칠 동안 우리 주위를 서성이던 분들을 보았습니다. 겨우 용기를 내어 농성장에 들어오셨지요. 아무런 말씀도 없이 음료수와 컵라면을 두고 가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춥다며, 집에서 직접 쌍화차를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오셨습니다. 따뜻한 밥 지어 먹으라고 밥솥까지 두고 간 엄마도 기억납니다. 직접 재배한 포도와 단감, 홍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음식 사이에 편지를 남기고 간 분이 있었습니다. 주민센터를 청소하던 할머니와는 밥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습니다. 택배 기사로 일한다는 한 아빠는 퇴근길에 음료수를 들고 오셨지요. 바다 건너 일본, 미국, 캐나다에서도 홍차와 핫팩,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한번은 부산에서 한 가족이 오셨습니다. 1년6개월간 암투병 하던 고등학생 딸을 떠나보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별할 시간이라도 있었는데….” 아이 엄마는 오히려 우리에게 힘내라,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부둥켜안고 많이도 울었습니다.

은행잎도 떨어지고 은행도 떨어졌습니다. 햇볕을 피해 가림막을 치던 날들을 지나, 낙엽 날리는 청운동을 보았습니다. 주민센터 감나무의 감이 탐스럽게 익어갔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아직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영석이랑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이제 모두 멈췄다는 것을 매번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짧고도 길었던 기다림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없었지만 마음을 나눠주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지금은 소화가 잘 안 돼도 밥을 먹습니다. 잠도 꼬박꼬박 자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영석이를 살리지는 못해도 청운동 앞을 지나던 교복 입은 학생들을 살리는 엄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우리처럼 이별의 인사도 없이 사랑하는 자식을 잃는 일이 없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반복되는 참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부모가 되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는 부모가 되지 않을게요

밤마다 엄마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에 잠 못 들었던 주민 여러분과 순찰하던 경찰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보냅니다. 따뜻하게 안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외롭지 않게 손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날 부끄러운 부모가 아니라, 아프고 시린 상처를 흉터 나지 않게 치료하고 잘 꿰매고 온 존경받는 부모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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