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대신 운동복을 입혔고 발에는 축구화를 신게 했어요. 축구공도 하나 넣고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8반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이 10월13일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 용봉문화관에서 연 ‘진실마중’ 두 번째 릴레이 강연회에서다. 그는 “이렇게 승현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도보 순례에서 만난 3천 명의 인연 때문”이라며 “빨리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축제엔 손팻말을, 재판 때는 노란 우산을지난여름 승현군 아버지는 단원고 2학년4반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52)씨와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고 경기도 안산~전남 진도 팽목항~대전까지 800여km를 38일간 걸었다. 특히 광주 금남로를 걸을 때는 동행자가 500명을 훌쩍 넘었다. 광주시민상주모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광주시민상주모임은 마을 촛불모임을 여는 시민들이 제안해 꾸려졌다. 광주에선 수완·첨단·문산·우산·일곡동 등지의 마을에서 학부모와 예술인, 종교인 등이 참여하는 촛불모임이 날마다 열리고 있다. 지난 6월 이민철 ‘청소년 문화의 집’ 관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상주모임을 제안했다. ‘상주’는 3년상을 치르듯 적어도 3년간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생활 속에서 활동하자는 의미였다. “나만 기억하는 것 같았다”고, “기억하고 싶은데 방법을 못 찾았다”고 안타까워하던 시민들이 속속 합류해 회원이 300명이 됐다.
시민 상주들은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아침마다 손팻말을 들고 주말 연휴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에도 참여한다. 세월호 선원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에선 노란 우산을 들고 유족들을 마중한다.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는 도보 순례자들이 광주를 지날 때면 길라잡이로 나선다. ‘시민 상주’ 고재옥(45·송전탑경과설계사)씨는 “몸은 힘들지만 불편했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그 옛날 사람의 마을에서 순례자를 위해 양초와 빵, 담요를 집집마다 준비했던 것처럼 광주는 사람의 도시, 진실과 함께 빛나는 도시를 향해 순례하는 중이다.”(세월호 ‘시민 상주’ 일기 중에서)
순례길에 나선 또 다른 상주들도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하는 인천시민상주모임’이다. 이 모임은 두 아이의 엄마인 이인자(41)씨와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인 최승원(39)씨가 10월6일 페이스북(4·16 팽목으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동행’)에 제안했다. 이들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고, 슬픈 사람을 위로해주고, 약한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과 양심이지 않을까? 우리는 보편적인 양심과 상식적인 사회를 잃어간다”고 걱정했다. 잊지 않으려면 스스로가 이해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상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광주~팽목항 순례 나선 인천 시민들인천시민상주모임은 첫 활동으로 광주~팽목항 도보 순례를 제안했다. 10월12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팽목항으로 향했다. 5~10명이 매일 25km 이상씩 걸어 10월17일 진도 실내체육관에 도착했다. 같은 날 밤 12시 인천 부평공원에서는 버스를 타고 인천 시민 120여 명이 내려갔다. 130여 명은 10월18일 진도 팽목항까지 함께 걷고 그곳에서 추모행사를 열었다. 이씨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하겠다고 나서 버스를 한 대 더 준비했다. 우리 주변에 끝까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광주=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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