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떼가 돌아왔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불안은 기우로 판명됐다. 사람의 근심을 제비는 괘념치 않은 듯했다. 2024년 8월에도 제비떼는 뜨는 해보다 이르게 날아오르고 지는 해를 앞세워 내려앉는다.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다.
무리는 조금도 축나지 않았다. 10만 마리가 펼치는 장대한 군무는 여전히 지켜보는 사람을 숨죽여 달뜨게 한다. 고대인들이 숨어 치르는 영적인 축제를 엿보는 듯하다. 축제 장소 또한 내성천 상류 유역에서 개중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드넓고 깊은 숲 한가운데다. 그러나 제비한테는 부처님이 손바닥 들여다보는 거나 다름없다. 새 숙영지는 2024년 초 인간이 수몰시킨 숙영지에서 3㎞ 남짓 상류 쪽이다. 한껏 날아오르면 한눈에 굽어보고, 시속 200㎞대에 이르는 최고 속도로 비행하면 1분 안에 이를 수 있는 거리다.(제1521호 ‘10만 제비떼의 장관, 올해도 볼 수 있을까’ 참조)
8월17일 오후 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석포교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온 이들, 부산·경남에서 온 이들, 대구·경북에서 온 이들, 광주에서 온 이들에 영주 토박이들…. 전국에서 제비가 모이듯이 이들도 그렇게 모였다. 새를 연구하는 이들, 글 쓰는 이들, 사진 하는 이들, 영상 하는 이들, 노래를 짓고 부르는 어른과 아이들, 농사지으며 생태운동에도 열심인 이들, 십수 년 내성천을 지켜온 지율 스님….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제각각인 이들이 함께 땀 흘려 텐트를 치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제7회 내성천 제비 캠프다. ‘내성천 제비 연구소 주최’로 내걸었지만, 이번에도 참가자 모두가 주최이면서 각자가 주최다. 이를테면 아나키적이다. 1박2일 동안 먹고 자는 일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먹거리 품앗이다. 일정은 매번 큰 차이가 없다. 사람들은 저녁노을 질 무렵 숙영지로 들어가 제비떼가 바람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본다. 캠프로 돌아와서는 이슥도록 노래 부르고 대화를 나누다 텐트 안에 들어 잠을 청한다. 이튿날 새벽 4시30분이면 예불드리러 가듯 다시 숙영지로 향한다. 사람들은 우둔대는 심장을 억누르며 이듬해를 기약한다.
캠프가 열리는 장소는 때마다 바뀐다. 장소 선택권은 제비에게 있다. 제비가 숙영지를 옮길 때마다 사람들도 캠프 장소를 근처로 옮겼다. 하지만 제비의 선택권은 자기주도적이지 못했다. 인간이 숙영지를 수몰시키면 제비는 물에 잠기지 않은 숲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2018년 9월 숙영지가 처음 발견된 이후 이번이 다섯 번째다. 네 번째 숙영지까지 제비떼의 뒤를 따라왔던 지율 스님이 다섯 번째 숙영지를 예측했던 것은 제비가 눈으로 보는 것을 스님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율 스님은 올여름 몇 차례 걸음 만에 숲속 깊이 들어앉은 숙영지를 찾아냈다. 오차범위 이내였다.
다섯 번째 숙영지는 ‘번계들’이다. 번계(樊溪) 김지선(1573~1622)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어서 이름 붙은 번계마을에 딸린 30만 평 들녘이다. 영주 사람들은 대개 ‘번개들’이라 부르고, 석포1리 버스 정류장에도 ‘번개’라고 표기돼 있다. 제비 캠프로 가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왜 번개들이냐”고 물으니 “그냥 번개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번계들은 논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버스가 오가는 도로도 있었으나, 영주댐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영농을 포기하자 금세 버드나무가 들어섰다. 지금 번계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버드나무 우듬지가 줄줄이 바람에 출렁이는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네 번째 숙영지였던 두월교 아래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옛 제방을 철거하기 전에도 나무들이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제비떼가 머물기에는 번계들이 한결 나을 듯했다. 그렇다면 제비떼는 왜 가까이에 번계들을 놔두고 굳이 두월교 아래에 먼저 머물렀을까. “제비들은 잠자는 사이에 삵 같은 천적이 접근할 수 없는 데를 선호하는 것 같다. 번계들은 마른 땅이었는데 2023년 여름 홍수 때 옛 제방이 무너져 물길이 바뀌면서 습지 숲으로 변했다. 제비들이 더는 두월교 아래에 머물 수 없게 된 사정과 딱 맞아떨어졌다.” 지율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숲을 보니, 맹그로브숲처럼 물이 들어와 있었다.
높은 다리 위에서 내려다봤던 두월리와 달리, 제방 길을 따라 들어가는 번계들은 사람 눈높이와 얼추 나란했다. 두월교 위에서는 사람이 제비를 조감했으나, 번계들에서는 제비가 사람을 조감하는 형국이었다. 저물녘 숙영지로 돌아오는 제비들은 나무로 곧장 내리꽂히는 개체와 들어앉을 나무를 찾아 오가는 개체로 나뉘었다. 전자는 이곳에 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난 개체들이고, 후자는 새로 전입한 개체들일 것이라 했다. 내리꽂히는 제비에게 눈길을 빼앗긴 사이 무언가 눈앞을 화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길게 흐르는 형상만으로 나무를 찾아 오가는 제비임을 알 수는 없었다.
제비들이 눈앞에서 곡예비행을 하며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자지러졌다. 그러나 어느 한 개체도 사람을 직접 건드리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폭풍 같던 귀소가 한풀 수굿해지자, 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이 쌍안경을 건네며 어두워가는 하늘 위를 가리켰다. 렌즈 너머로 자잘한 점들이 빼곡하게 하늘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박 위원장은 “아직 하늘에 있는 개체 수가 맨눈으로 보이는 개체 수보다 100배는 많을 것”이라고 했다. 2차 폭풍 귀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위는 시나브로 깜깜해졌다. 사람들이 발길을 돌린 뒤로도 귀소는 이어질 터였다.
제비 캠프로 돌아온 이들은 보름을 하루 앞두고 형형하게 빛을 뿌리는 달 아래에서 ‘내성천 제비 연구소’의 설립과 운영 방안을 두고 토론했다. 캠프에 참가한 이들은 운영위원이 되고, 운영위원들이 힘을 모아 후원회원을 모으기로 했다. 월 회비는 잠정적으로 운영위원 1만원, 후원회원 3천원으로 정했다. 전국에 흩어져 제가끔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의 아나키적 연대가 짜임새 있게 가동될 수만 있다면 큰돈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지율 스님이 말했다. 최연소자가 운영위원장을 맡자는 제안에 젊고 과묵한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숲으로 들어서자 귀부터 열린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지저귐 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섞여 들린다. 이따금 ‘삐욕’ 하는 소리도 들린다. 박 위원장이 ‘검은댕기해오라기’라고 일러준다. 숲은 뭇 생명이 내는 화음으로 부풀어 오른다. 문득 지저귐이 우렁우렁해진다. 나무들 사이에서 제비 몇 마리가 화르르 날아오른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날아오른 제비는 열 배나 많다. 제비들은 나무 사이에서 사출되는 듯하다. 수백 마리씩 한꺼번에 날아오를 때는 바람 소리가 난다. 제비는 비상할 때가 착지할 때보다 한층 단호해 보인다. 아무 망설임도 없이 편대를 이뤄 멀어져간다.
오전 10시, 텐트를 모두 철거했다. 제비 캠프 공식 일정도 끝났다. 캠프를 찾을 때처럼, 다른 일정이 있는 이들부터 하나둘씩 떠났다. 남은 이들은 지율 스님의 인솔로 영주시 순흥면으로 향했다. 내성천에 제비 숙영지가 들어서면서 마을 제비의 개체 수도 많이 늘어난 곳 가운데 하나였다. 주민들은 처마 밑이며 농협 집하장 천장 아래까지 제비에게 둥지 자리를 넉넉히 내주고 있었다. 이산면 용상2리 마을회관에도 들렀다. 처마 밑을 빙 둘러 제비 둥지가 스무 개나 들어서 있었다. 영주시 일원의 주민들은 마을 제비를 넘어 제비 숙영지로 생태적으로 촘촘히 연결된 듯했다.
2023년 가을까지 제비떼가 머물렀던 두월리로 향했다. 지역 언론들이 수질 오염을 부추기는 원흉으로 지목하고, 수자원공사가 지역 주민 민원을 이유로 들어 아쉬운 대로 제비 숙영지를 댐 물로부터 지켜주던 옛 제방을 허물고 난 뒤 수질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영주댐 건설 뒤로 해마다 나타난 녹조는 이미 익숙했다. 그러나 다리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익숙한 녹조가 아니었다. 낯선 수생식물이 수면 곳곳을 드넓게 덮고 있었다. 상류 쪽을 갈수록 상태는 심했다. 녹조가 심한 곳에서 번성한다는 ‘마름’이었다. 수질을 개선한다며 제방을 허문 결과는 적나라했다.
내성천을 다녀온 이튿날인 8월19일, 영주시가 ‘영주댐 수생태정원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 착수 보고회’를 열었다. 지역 언론들은 영주댐 관광 자원화 사업의 하나로 이산면 석포리와 내림리 일대 113만㎡에 생태습지와 친환경 탐방로 등을 조성하기 위한 절차라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번계들을 개발하겠다는 얘기다. 제비 숙영지에 대해 무시로 일관한 영주시가 생태습지와 친환경 탐방로를 조성하겠다는 말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제비떼 10만 마리가 여름과 가을을 나며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번계들이 마지막이다. 여섯 번째 숙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주(경북)=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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