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업무상 질병)로 인정됐다고 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산재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다행이에요.”
2021년 10월27일, 박주연(48)씨가 연락해왔습니다. 박씨는 전남 진도군 산하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2021년 6월, <한겨레21>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도 5명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박씨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제1369호 표지이야기 ‘괴롭힘 당했다는 거, 인정받고 싶어요’). 당시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운전원으로 일하던 박씨는 다른 사무원에게 험한 말을 듣는 등 괴롭힘을 당하는 바람에 불안장애, 불면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치료를 위해 직장에 유급휴가를 요청한 상태였습니다. 센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박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린 뒤 9월에 해고했습니다.
박씨는 고용노동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다행히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박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6~9월 석 달의 요양기간에 대한 산재급여도 받게 됐습니다.
산업재해가 인정되면서 박씨의 해고 문제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근로기준법(제23조 2항)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하여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박씨의 요양기간 이후 30일이 지나지 않은 9월28일 박씨를 해고했습니다. 법률상 해고할 수 없는 기간에 해고가 이뤄진 겁니다. 산업재해 노동자에 대한 해고 금지 조항은 ‘직장 내 괴롭힘’ 조항과 달리, 대통령령에 따라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됩니다. 11월2일 박씨는 고용노동부에 센터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앞서 박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진정한 사건에 대한 결과도 10월27일 나왔습니다. 인권위는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가 공직유관단체가 아니어서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을 각하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놨습니다. “(박씨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 및 부당해고 처분으로 볼 여지가 크다. 현행법의 한계로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유만으로 관할 지자체가 아무런 도움 없이 피해자를 외면한다면 현재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바, 지자체가 적극적인 개입을 고려하라.” 진도군은 인권위의 의견을 받아들여, 직장 내 괴롭힘과 해고가 부당행위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천상운집’은 가능할까근로복지공단과 인권위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았지만 박씨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합니다. “인권위 결정문 종이 몇 장과 산재로 인정받은 문자 한 통 외에는 변한 것이 없어요. 저는 여전히 해고자 신분이니까요.” 박씨가 원하는 건 센터장에 대한 처벌과 복직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인권위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는 ‘권고’에 불과합니다.
‘천상운집’(천 가지 좋은 일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박씨가 카카오톡 메신저 프로필에 적어둔 말입니다.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박씨가 복직할 수 있기를, 5명 미만 사업장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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