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 최아무개씨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최초로 인정받았습니다. <한겨레21>이 제1513호 표지이야기로 그 내용을 처음 다뤘지요. 최씨는 2021년 8월부터 약 2년 5개월 동안 데이터 라벨링 업계 1위 기업 ‘크라우드웍스’에 소속돼 일했습니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LINE)의 쇼핑 사이트에 뜨는 오류를 바로잡았죠. 형식상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습니다만, 실제 일한 방식을 보면 근태를 기록해야 했고 근무시간이 엄격히 정해져 있는 등 노동자와 다름없이 사용자(크라우드웍스)의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노동위는 판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혹시 궁금증이 들진 않으셨나요. 라인쇼핑 홈페이지를 유지·관리하는데 왜 네이버가 아닌 크라우드웍스 노동자일까요? 최씨를 프리랜서로 위장 고용한 탈법에 네이버는 아무 책임이 없을까요? 제1516호 ‘21토크’에선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인공지능에 필요한 자료를 가공·검수하는 노동을 ‘데이터 라벨링’이라 부릅니다. 인공지능이 이해하기 쉽게 데이터마다 꼬리표를 붙여준단 의미죠. 네이버처럼 에이아이(AI) 개발 경쟁에 뛰어든 빅테크 기업이 이런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매번 데이터를 가공할 때마다 사람을 모집하기 번거로우니 크라우드웍스와 같은 데이터 하청 기업에 일감을 맡기는 거예요. 이제 귀찮은 일은 하청이 전부 알아서 합니다. 일할 사람을 모집하고, 라벨링 일감을 잘게 쪼개서 분배합니다. 실수가 잦은 사람은 계약을 해지하고, 자리를 자꾸 비우는 사람은 단가를 깎아버리죠. 근로기준법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도 프리랜서로 위장합니다. 온갖 탈법이 난무해도 원청은 신경 쓰지 않죠. 하청이 깔끔한 작업 결과물만 가져오니까요!
첫 보도에서 다루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디지털 간접 고용’ 구조입니다. 원청 사업 운영에 꼭 필요한 일임에도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 그로 인해 하청 노동자가 사실상 원청 일을 대신 하는 것. 지난 20년간 현대차 하청 노동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직원이, 학교 청소 노동자가 목소리 높이며 싸워야 했던 현실이 첨단산업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청 기업에 ‘데이터 라벨링 기업’이라는 멋스러운 이름까지 붙여줬죠.
인공지능 개발 기업은 에이아이(AI)의 눈부신 성장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정작 AI 고도화에 필요한 사람은 소모품처럼 쓰고 버립니다. 아마존과 테슬라, 오픈AI는 라벨링 일감을 외주화해 케냐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떠넘겼습니다. 이 중 챗지피티(ChatGPT) 서비스 개선에 투입된 이들은 혐오·차별 콘텐츠를 걸러내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었죠.
최씨가 속한 프로젝트에서도 노동자의 실질적인 노동조건을 결정한 쪽은 크라우드웍스보단 네이버였습니다. 노무법인 로앤 쪽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네이버는 크라우드웍스에 카탈로그 업무를 맡기면서 ‘작업자 30인×176시간×3개월×시급 11000원’으로 발주서에 작업 단가를 직접 정했죠. 또 상품 카테고리를 다루는 덴 작업자 7명, 네이버 사전 서비스 구축엔 3명 등으로 각 작업당 필요한 인원수도 네이버가 산출했다고 합니다. 라인쇼핑 홈페이지 오류를 수정하도록 긴급 지시한 것도, 작업자 문의에 직접 응대한 것도 네이버 직원이었다고 작업자들은 공통적으로 진술합니다. 유기적 협업을 위해 네이버 직원과 크라우드웍스 작업자들이 단체대화방에 함께 있던 적도 많았다고 해요.
이에 대해 네이버 쪽은 “필요에 의해 크라우드웍스에 일을 줬고 사람을 모아 일을 시킨 건 크라우드웍스”라며 “작업인원 등은 발주가격을 정하는 참고 기준일 뿐이고 작업자 교육도 크라우드웍스 요청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라인쇼핑 홈페이지를 실시간으로 유지·관리하는 노동자는 누가 고용해야 마땅할까요? 독자들은 답을 아시겠지요. 이 간단한 질문이 지난 20년처럼 뱅글뱅글 돌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틈날 때 부업, 수익 1000만원” 홍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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