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31일 저녁, 다급한 소식을 전하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소식을 전하는 소셜미디어 매체 <미얀마 투데이>의 최진배 대표였습니다. <한겨레21>이 8개월째 연재 중인 ‘미얀마 연대’에 글을 썼던 미얀마 현지인 교사 뗏 수 흘라잉(28)이 전날 밤 민주화운동 동료들과 함께 군부에 체포됐다고 했습니다.
한순간 아찔했습니다. 심장이 가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9월 초 <한겨레21>(제1379호)은 뗏 수 흘라잉이 보내온 원고를
‘시민불복종 참여 교사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실은 바 있습니다. 뗏 수 흘라잉은 “불의와 타협을 거부하고 교육자들을 규합해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다는 이유로 군부의 표적이 됐고, 가족과 떨어져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21년 2월 쿠데타 이후 군부의 잔혹한 진압 실상을 잘 알고 있기에 글을 받아 실으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우려가 현실이 됐습니다.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집계를 보면,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감행한 지 9개월을 막 넘긴 11월3일까지 최소 1236명이 군부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체포된 시민은 9667명(누계)에 이릅니다. 지금도 시민 7천여 명이 군부에 구금돼 있습니다. 또 수배자들의 궐석재판을 포함해 모두 118명이 반란·폭동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중 65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뗏 수 흘라잉은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의 사가잉사범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해 제자들과 학교 도서관 사서를 자청했고, 민주주의가 꽃핀 조국에서 전업작가를 꿈꾸던 여성이었습니다. 미얀마 출신 이주여성이자 <미얀마 투데이> 운영자인 녜인 따진은 현지 활동가에게서 날아온 메시지를 읽자마자 온몸의 피가 죄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급하게 현지 지인들에게 뗏 수 흘라잉 소식을 수소문했습니다. 녜인 따진도 <한겨레21>의 미얀마 연대에 ‘내 심장은 미얀마와 함께 최전선에’(제1369호)라는 글을 쓴 바 있습니다.
뗏 수 흘라잉은 만달레이 왕궁터에 있는 군부대에서 심문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면회는 금지됐습니다. 뗏 수 흘라잉은 군부 쿠데타 이후 시민불복종운동과 민주화시위에 앞장서고, 국내 실향민들을 지원하며, 국내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기부금을 조달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녜인 따진은 한국에서 모인 기부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를 알게 되어 친분을 쌓았습니다. “쿠데타 상황이라는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뗏 수 흘라잉은 항상 명확한 통찰력과 신뢰감 가는 행동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녜인 따진은 군부가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강도 심문을 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쿠데타 세력의 악랄한 손아귀에서 고통받을 뗏 수 흘라잉과 그의 부모님 생각에 괴로워하며” 녜인 따진은 매일 매시간 기도합니다.
<한겨레21>도 뗏 수 흘라잉을 비롯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미얀마 시민을 지지합니다. 그들이 목숨 걸고 군부 쿠데타 세력에 저항하며 다짐하는 구호가 있습니다. 고군분투하는 미얀마 시민의 소식을 지켜보고 전하면서 그 구호를 가만히 읊조려봅니다. “아예더봉 아웅야미!”(혁명은 승리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1379호 - 시민불복종 참여 교사의 편지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0883.html
■ <미얀마 투데이> 운영자 녜인 따진의 염원
저는 만달레이 지하 활동가들에게 한국에서 모인 기부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흘라잉을 알게 되어 친분을 쌓았습니다. 쿠데타 상황이라는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흘라잉은 항상 명확한 통찰력과 신뢰감 가는 행동을 잃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총명하고 예의 바른 그가 저는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친언니동생처럼 지내며 군부독재 타도 활동을 함께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어 현장 소식을 전부 알 수 없는 저에게 흘라잉은 생생한 정보를 취재해 전달해줬고, 믿을 수 있는 혁명단체와 활동가를 물색해 연결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수많은 청년을 소개받아 지원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흘라잉이 체포되던 날(2021년 10월31일), 한국시각 새벽 5시(미얀마 시각 새벽 2시30분)에 미얀마 활동가가 보낸 메시지로 체포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메시지를 읽자마자 온몸의 피가 죄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항상 두려워했던 일이 실제 일어나고야 말았으니까요. 쿠데타 세력의 악랄한 손아귀에서 고통받을 흘라잉과 그의 부모님 생각에 저는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매일 매시간 그의 안전을 위해 저는 기도합니다. 흘라잉이 무사히 풀려나 그가 소원했던 평화로운 나라에서 작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같이 미얀마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체포된 이들이 겪는 고초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렵습니다. 저와 친한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쿠데타 세력이 벌이는 악행을 조금이라도 한국 사회에 알리고자, 흘라잉의 이야기를 꼭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저는 유엔과 국제사회가 쿠데타 세력의 악행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매시간 고문받고 살해당하는 이들이 생겨나는데도 당신들은 인도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입바른 말만 몇 개월째 반복하고 있습니다. 제 동생이자 동지인 흘라잉이 지금 너무도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부디 그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시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심이 커지면 행동이 되고, 행동이 모이면 우리는 무고한 생명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민주시민 여러분께 두 손 모아 간절히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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