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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는데 7년이요?”

어머니는 검찰의 항소 촉구하면서 ‘황예진법’ 만들어달라 호소
등록 2022-01-08 05:10 수정 2022-01-09 06:01
데이트폭력으로 숨진 황예진씨의 어머니가 2022년 1월6일 오후 1심 재판이 끝난 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지인의 품에 안겨 오열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데이트폭력으로 숨진 황예진씨의 어머니가 2022년 1월6일 오후 1심 재판이 끝난 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지인의 품에 안겨 오열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피고인을 징역 7년에 처한다.”

2022년 1월6일 서울서부지법 304호 법정. 재판부가 서울 마포구 교제살인 사건의 가해자 이아무개씨에 대한 1심 주문을 읊자, 고요했던 법정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7년? 사람이 죽었는데 7년이요?”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가 6분 동안 선고 이유를 밝히고 법정을 떠났지만 피해자인 고 황예진씨의 가족과 친구 30여 명은 법정을 떠나지 못하고 빈 법대를 향해 소리쳤다. 피해자 어머니 전아무개씨는 방청석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 받아들여지지 않아

2021년 7월28일 이씨는 여자친구였던 황예진씨를 수차례 때려 20여 일 뒤인 8월17일 숨지게 했다. 검찰은 이씨를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2021년 12월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피해자 유족의 요청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살인죄와 치사죄는 살인의 고의 여부로 갈리는데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법정형의 차이가 크다.

재판부는 유족 주장과는 다르게 이씨에게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의식 잃은 피해자를 끌고 다니며 제때 구급 조처도 하지 않은 건 “연인관계였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전형적인 교제살인 사건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헤어지자고 말하거나, 교제를 원하지 않는 이성에 보복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범행에 이르는 교제살인의 일반적인 유형과는 다르다.” 재판부는 이씨와 황씨가 평소 이씨 잘못으로 자주 다퉜지만, 이씨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폭행하는 관계에 있지는 않았다”며 “피해자와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폭행하면서 범행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범행 이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던 점도 양형에 고려됐다.

판결 선고를 듣고 나서 법원 앞에 선 어머니 전씨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경찰, 검찰에서의 짧은 수사, 세 번에 그친 재판으로는 가해자의 범행 동기나 구체적인 피해 정도를 파악하기에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지속적인 폭력이 없었다는 재판부의 판단도, 교제살인의 전형이 아니라는 판단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딸아이를 살릴 수 있었음에도 끌고 다니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의 사망 대가로 징역 7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런데 감형 이유가 ‘반성한다’ ‘사회 초년생’이다? 딸이 한 명이어서 망정이지 이런 나라에서 딸을 어떻게 키웁니까. (재판 과정에서) 교제살인이라는 말도 안 쓰다가 갑자기 교제살인의 전형이 아니라고 하시니까 (교제살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이해할 수 없는 거죠.”

“엄마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피해자 유족 쪽은 “통상 검찰이 구형한 형량의 절반 내지 3분의 2가 선고되면 항소하지 않는” 검찰의 특성상 항소심에서 다퉈볼 기회조차 갖지 못할까봐 걱정하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황예진법’을 만들어달라고 국회에 호소했다. 1심 선고 전날인 1월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젠더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4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황예진씨 이름을 본떠 ‘황예진법’(데이트폭력처벌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가 아직 하늘나라에 못 갔을 텐데, 아이한테 엄마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항소가 꼭 이뤄지도록, 법이 잘못됐다면 법을 꼭 바꿀 수 있도록 해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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