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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사실의 조각 모아 ‘지도’ 만들려 합니다

등록 2022-11-16 10:22 수정 2022-12-09 06:39

2022년 10월29일 밤 11시38분, 막 잠들려던 참이었습니다. 휴대전화에 통신사 속보 알림이 울렸습니다. ‘핼러윈 인파’ 이태원에서 호흡곤란 등 81건이 신고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속보에 의아했습니다. 81건의 호흡곤란이라니, 서울 한복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습니다. 한 단체대화방에 이태원 골목에서 단체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는지 현실을 보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태원에 13만 명의 인파가 몰렸고,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에서 대규모 ‘압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울 도심의 골목에서 156명이 숨졌다는 소식은 도무지 믿기 어려웠습니다.

취재 시작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참사 당시 영상이 무분별하게 퍼지는 것을 보며 무기력해졌습니다. ‘서양 축제에 왜 그렇게 열광했냐’며, ‘놀러 나간 사람들을 왜 애도하냐’며 비난하는 말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혐오표현은 생존자와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증폭합니다.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면 구조적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핼러윈을 즐기는 것도, 이태원에 놀러 간 것도 참사의 근본 원인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참사 직후 쏟아지는 기사와 새로운 사실들 속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참사 당일의 재구성이었습니다. 참사 당일의 이태원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했습니다. 112 신고 내용과 인근 상인들, 당시 이태원을 방문한 사람들을 취재했습니다. 정부의 책임지지 않는 태도와 밀집 상태의 군중 난류에 관한 전문가의 의견도 전했습니다. 아직은 사실의 조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지, 참사에 앞서 어떤 안전 대비책이 있었는지 등 관련 취재가 계속돼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취재를 종합하면 참사 몇 시간 전부터 압사의 조짐이 있었고, 참사를 막을 충분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은 참사 직전의 상황을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시민들과 함께 참사 발생 전 이태원 곳곳에서 찍힌 사진과 영상을 모아 ‘오픈형(시민참여형) 지도’를 만들 계획입니다. 이태원 참사가 다른 참사와 다른 점은 수많은 시민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이 진행하는 수사와 별개로 우리 손으로 직접 참사 직전의 이태원 상황이 어땠는지 기록을 남기고 재구성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조만간 ‘지도’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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