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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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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다니며 만난 고엽제 후유증 2·3세의 기막힌 사연

등록 2024-09-28 17:52 수정 2024-10-03 17:33

“제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것저것 많은 얘기 해드리고 싶습니다.”

전화기 너머 남자가 조곤조곤 말했습니다. 고엽제 유전 후유증으로 온몸이 아프다는 분이었죠. 취재를 원한다는 지인 요청을 받아 연락했더니 “내 이야기에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0분 뒤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와 ‘없던 걸로 하자’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가족이 반대한다. (기사가 나가면) 보훈부가 수당을 끊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공개적으로 고엽제 문제를 거론했다가 정부가 보복할 것이 두렵다는 뜻이었습니다. 수당은 법적으로 집행되는 것이니 보도와는 상관없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면 익명으로 하겠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분은 서둘러 대화를 맺고 전화를 끊었지요. 2024년 5월께 있었던 일입니다.

군인을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한 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결정이지요. 이제 와서 보훈부가 지급하는 100여만원 수당은 고엽제 피해 가족이 평생 당한 고통을 손톱만큼도 위로해주지 못합니다. 그래도 피해자는 국가 눈치를 봅니다. 그 수당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니까요.

그렇게 고엽제 유전에 관한 취재는 더 못하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두 달쯤 흘렀을까요? 전자우편으로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고엽제 2·3세로서 당면한 피해를 알리고 싶다, 취재를 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엔 개인이 아니라 단체였습니다. ‘고엽제 2세·3세 피해자 연대’라고 했습니다. 더는 개인 신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한데 뭉쳐 목소리 낼 수 있었습니다. 모아둔 증거자료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고 했습니다. 최근엔 헌법소원심판도 냈다고 했습니다. 기쁘고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방방곡곡 돌며 만난 가정은 저마다 기막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1세대 고엽제 후유증을 2세대가 직접 밝혀내는가 하면, 아직 법적 보호가 없는 3세대를 위해 1·2세대가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스스로 고엽제 유전 피해를 인지 못한 이가 많다며 전국의 참전군인 모임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한겨레21이 제1531호 ‘3대로 이어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이를 다뤘습니다.

2024년 9월은 베트남전 파병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32만 명이 먼 나라로 떠나 5천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귀국한 참전군인 절반은 고엽제 후유증과 후유의증으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국가의 바늘구멍 같은 질병 인정 기준을 넘은 분들만 집계되니, 잠재적 피해자는 더 많을 겁니다.

고엽제 피해는 베트남에서 비롯한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디엠제트(DMZ) 인근에서 근무한 군인과 거주민 가족도 미군의 고엽제 살포로 인한 유전 피해가 심각합니다. 한겨레21은 국내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후속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연락을 기다립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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