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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도 되는’ 무기는 없다

등록 2024-12-08 16:08 수정 2024-12-11 08:27
2015년 12월25일 이스라엘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분리장벽 모습. 신다은 기자

2015년 12월25일 이스라엘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분리장벽 모습. 신다은 기자


2015년 겨울,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로 교환학생 온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습니다. 선물도 주고받고 아름다운 성탄절 트리도 구경하며 놀았지요.

기억에 남은 건 그다음 날입니다. 대다수가 먼저 학교 기숙사에 돌아가고 아랍어를 할 줄 아는 몇몇 친구만 남았습니다. 날이 밝고서 마주한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은 전날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빛나는 크리스마스 조명 장식이 아닌, 높다란 회색 장벽과 미로 같은 검문소가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의 깃발을 든 이래 조금씩 유대인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유대인 정착촌을 늘리고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지구로, 서안지구로, 동예루살렘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사는 곳과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곳 사이에 높다란 분리 장벽을 세웠지요. 팔레스타인인이 장벽 너머로 가려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특별허가증도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에만 한시적으로 제한을 풀고 평상시엔 출입을 엄격히 관리했지요.

우리 일행은 장벽을 따라 걸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피를 흘린다” “학살을 멈추라”라는 글귀가 곳곳에 쓰여 있었습니다. 분리정책으로 고통당한 이들의 사연도 적혔습니다. “전 베들레헴의 아델입니다. 22살 저의 소중한 친구는 심장박동기를 장착하고 있어 예루살렘의 병원에 자주 가야 했어요. 어느 날 제 친구가 크게 아프자 그의 부모님이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출입증이 없어서 안 된다며 못 들어가게 했어요. 제 친구는 그날 숨을 거두었습니다.”

2015년 12월25일 이스라엘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분리장벽 모습. 신다은 기자

2015년 12월25일 이스라엘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분리장벽 모습. 신다은 기자


 

2015년 12월25일 동예루살렘 한 가옥에 ‘가자’ ‘팔레스타인’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신다은 기자

2015년 12월25일 동예루살렘 한 가옥에 ‘가자’ ‘팔레스타인’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신다은 기자


검문소에 도착해 한참을 걸었습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뱅글뱅글 돌아 가방 수색까지 마치고 나니 2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서예루살렘으로 출근하는 많은 팔레스타인인은 이런 기다림을 매일 겪었을 테지요. 밖에 나와 택시를 탄 뒤에도 돌을 던지며 싸우는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요리조리 피해야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보였습니다.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전등으로 치장한 베들레헴이 실은 울분과 고통의 땅이었다는 것을요.

한국은 2014년 가자 갈등 이후부터 쭉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았습니다. 탄약, 총포, 무기 부품류로 추정됩니다. 유대인 정착촌 건설과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한국산 굴착기(HD현대)도 사용됐습니다. 한국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제 점령을 도운 셈입니다. 오랜 기간 축적된 무감각은 전쟁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2024년 1~8월 한국은 가자 주민들을 학살한 이스라엘에 적어도 80억원 이상의 무기류를 팔았습니다. 그 기간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무장세력을 구분하지 않고 연일 병원을, 학교를, 피란민촌을 폭격해 4만 명을 살상했습니다. 최근 국제형사재판소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전쟁 범죄자로 공식화해 체포 영장도 발부했지요.

베들레헴 출신 유학생 나리만은 한겨레21에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아주 작은 총알 한 알에 사람이 죽고 가족이 붕괴됩니다. 제 사촌의 남편은 빵을 사러 나갔다가 오른쪽 손목을 통째로 잃었어요. 그는 이제 아이들 손을 잡아주지도, 함께 책을 읽어주지도 못합니다. ‘팔아도 되는’ 무기란 없습니다. 특히 이런 인종학살의 현장에는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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