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세(또는 자본세)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는 인간 대 ‘비인간’의 관계가 철저히 일방적이었던 데 따른 결과다. 기후위기에 대한 성찰이 인간에서 시작해 비인간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경로에서 인간-비인간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인식 지평이 열리고, 브뤼노 라투르 등은 비인간에 대한 역지사지를 넘어 양쪽 경계를 지우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람들은 다음에 열거되는 이 계열의 담론을 기후위기에 관한 급진적 사유라고 평가한다. 물론 다는 아니다. ‘이 폭풍의 전개’(김효진 옮김, 갈무리 펴냄)에서 지은이 안드레아스 말름은 심지어 몹시 마뜩잖아한다.
말름은 도장깨기 하듯 구성주의, 혼종주의, 신유물론을 논박해간다. 이 가운데 신유물론만 거칠게 정리하면, 인간뿐 아니라 모든 물질에 행위성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담론들이 급진성을 띠는 건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려 하기 때문일 터이다. ‘신유물론’이라는 명명은 해체 대상에 카를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역사유물론이 있음을 내비친다. 말름도 “‘신’은 역사유물론으로부터의 거리를 가리킨다”며 “물질은 행위성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으로 인해 신유물론은 구유물론과 구별된다”고 짚는다. 이 생태 마르크스주의자는 저 담론이 왜 문제라는 걸까.
“지금 행해야 할 분별 있는 유일한 행위는 행위성의 확대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 뜨거워지는 세계에서 그 영예는 화석연료를 채굴하고, 구매하고, 판매하며, 연소하는 사람들과 이 회로를 유지하는 사람들과 지난 두 세기에 걸쳐 이런 행위들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속할 뿐이다.” “섭씨 1.5도와 2도의 방어선이 모두 파괴된 것으로 판명되면 우리는 폭풍이 통제 불가능하게 맹위를 떨치고 있기에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결론지어야 하는가?” 신유물론 같은 “학술적 유행”은 기후전환을 위한 어떤 헤게모니도 내놓지 못했다는 얘기다.
2024년 지구 평균 지표면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도 상승한 것으로 관측됐다. 파리협정의 제한 목표인 1.5도를 돌파했다. 2018년 이 책이 처음 영어판으로 출간되고 불과 6년 만이다. 말름은 호소한다. “모든 생태정치는, 기본적이고 방법론적이며 그 자체로 상당히 무해한 방식으로, 인간중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비인간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인간만이 기후전환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448쪽, 2만8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3만5천원
끊임없이 총성이 울리는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얼굴, 표정, 몸짓이 담긴 그래픽노블. ‘만화 저널리즘’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작가 조 사코가 1991년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몇 달씩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수집한 이야기가 개정판으로 나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전쟁과 점령의 땅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의 의미를 묻는다.

의심 없는 마음
김지우(구르님) 지음, 푸른숲 펴냄, 1만7천원
열여덟 살 때까지 혼자 밖에 나가본 적이 없던 휠체어를 탄 여성이, 천천히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사소한 성공의 모음집.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역경을 극복한 벅찬 성장 스토리라기보다 “덜컹거리며 겨우겨우 살아남는” 여행기에 가깝다. 여성이자, 아시안이자, 뇌병변 장애인인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이 프랑스·스위스·독일·오스트레일리아로 힘차게 나아간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1만8500원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동,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영세 상인, 난민, 망명자들이 모여드는 홍콩 청킹맨션에 일본 인류학자 오가와 사야카가 갔다. 저자는 그곳에서 탄자니아의 ‘보스’ 카라마를 만나 홍콩과 탄자니아 간 국경을 뛰어넘는 비공식 중고차 비즈니스가 시장경제라는 허구의 시스템을 넘어 어떤 실천적 지혜로 이뤄지는지 적나라하게 배운다.

비포 제인 오스틴
홍수민 지음, 들녘 펴냄, 1만7천원
정말 제인 오스틴 이전에는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룬 여성 작가가 없을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젠더문화연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홍수민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10~12세기 일본 헤이안 여성 문학, 중세 수녀들의 문예 활동, 15세기에 쓰인 크리스틴 드 피장의 ‘여성들의 도시’, 르네상스기에 활동한 여성 작가들을 소개한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구속 만기 돼도 집에 안 갈 테니”…윤석열, 최후진술서 1시간 읍소

디올백·금거북이·목걸이...검찰 수사 뒤집고 김건희 ‘매관매직’ 모두 기소

“비행기서 빈대에 물렸다” 따지니 승무원 “쉿”…델타·KLM에 20만불 소송

청와대 복귀 이 대통령…두 달간 한남동 출퇴근 ‘교통·경호’ 과제

박주민, 김병기 논란에 “나라면 당에 부담 안 주는 방향 고민할 것”

이 대통령 “정부 사기당해” 질타에…국토부, 열차 납품지연 업체 수사의뢰

나경원 결국 “통일교 갔었다”면서도…“천정궁인지 뭔지 몰라”

특검, 김건희에 ‘로저 비비에 선물’ 김기현 부부 동시 기소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328279211_20251225500964.jpg)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김병기 이러다 정치적 재기 불능”…당내서도 “오래 못 버틸 것”

![‘인류 죽음의 전문가’가 되짚는 남편의 죽음[21이 추천하는 새 책]](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original/2025/1225/2025122550255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