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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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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정의의 항적도’

최근 4년간 ‘문제적 판결’ 톺아보는 <올해의 판결>
등록 2018-04-27 02:11 수정 2020-05-03 04:28

변법자강(變法自彊)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 청나라 말기 캉유웨이·량치차오 등이 내건 개혁운동의 표어입니다. 법과 제도를 뜯어고쳐 스스로 강해지자는 겁니다. 21세기 한반도에 필요한 변법자강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사회,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정의로운 체제, 약자의 눈물에서 연대의 꽃을 피울 줄 아는 공동체….

여기 책이 있습니다. (북콤마 펴냄). 판결로 돌아본 ‘2014~2017년 64선’ ‘박근혜 정부 3년과 문재인 정부 7개월’의 기록입니다. 10년 전인 2008년부터 해마다 에서 가르고 엮어 펴낸 ‘올해의 판결’ 기획을 묶었습니다. 2008~2013년치 92개 판결을 묶어낸 뒤 두 번째 단행본입니다. 기자 27명이 힘을 보탰습니다. 진실이 진실화 과정이듯, 판결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판결은 법률에 해박한 소수 전문가들이 명확히 정해진 하나의 ‘법리적 정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국민의 건전한 법 감정과 호흡하며 다양한 가능성 사이에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가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다.”

2014년은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부당판결’이 심했습니다. ‘대략 더 난감’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가 선고됐고, 쌍용차 정리해고는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의 집단 행위와 교원의 정치활동 금지를 ‘합헌’으로 결정했습니다. 반면 원전 인근 주민들의 갑상샘암에 한국수력원자력의 책임을 인정한 ‘좋은 판결’도 있습니다.

2015년에도 사법부는 ‘후진 기어’를 넣은 상태였습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라는 ‘최악의 판결’을 내놓았습니다. KTX 여승무원에 대한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관제를 소홀히 한 진도VTS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가장 어두운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2016년은 탄핵, 그리고 촛불의 해였습니다. ‘절망의 시대에도 아래로부터의 희망’을 목격한 때입니다. 단연 ‘최악의 판결’은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기록의 비공개 결정입니다.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을 발부한 것 또한 분노의 심지를 더 밀어올렸습니다. 반대로, 촛불시위 금지 통보의 집행정지를 인용한 것은 ‘최고의 판결’입니다. “고민하는 하급심 판사와 눈 감고 귀 닫은 대법원” “광장의 뜨거운 목소리, 사법부도 응답해야 했다”는 총평을 되새기게 됩니다.

2017년, 밤이 지나고 봄을 기다린 해입니다.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헌재, 그리고 삼성 직업병을 인정한 대법원. 대통령이라는 정치권력과 삼성이라는 경제권력, 두 우두머리와 관련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그러나 “사법부는 아직 밤이다. 소수 판사들의 몇몇 판결이 빛날 뿐이다”라는 지적이 날카롭습니다. 현대차 파업 지지 발언에 20억원의 연대 손해배상이 판결되는가 하면, 24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를 해고한 게 유효하다는 판결도 있었습니다.

다시 거슬러, 이 ‘올해의 판결’ 기획을 시작했던 10년 전을 떠올리게 됩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이 판결의 보폭만큼 진전한 셈.” 이 책 은 판결로 톺아보는 한국 사회 ‘정의의 항적도’이자 우리를 위한 ‘변법자강의 지침서’입니다.

전진식 교열팀장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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