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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피부’의 재일, 안녕한가요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의 <멜라닌>
등록 2024-07-19 21:16 수정 2024-07-24 13:59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하승민의 <멜라닌> 첫 문장이다. <멜라닌>은 분류하기가 애매한 소설이다. 세계적으로 돌연변이처럼 나타나는 파란 피부를 가졌다는 설정에서 에스에프(SF) 같고, 돌연변이가 색다른 능력을 가졌다는 면에서는 영웅물 외양이다. 미국으로 이민 가 겪는 우여곡절은 갱스터물 같고, 첫사랑을 하는 건 미국 청춘물 같다. 멜라닌 색소의 유무에 따라 피부 색깔이 드러나지만 멜라닌으로는 파란색이 드러나지 않기에 형용모순이라는 ‘블루멜라닌’처럼, 소설은 애매하면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유한다. 혼종이 트레이드마크인 케이팝처럼 되어가는 한국 당대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복합성을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단은 높이 평가했다. ‘<멜라닌>의 매력은 핍진성과 환상성의 조합에 있다’고 김금희 소설가는 말했다.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그 모든 복잡성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곳이다. ‘포레스트 검프’가 미국의 중요 역사를 달려나가는 것처럼, 재일은 ‘차별과 혐오의 역사’ 한가운데를 관통해나간다. 2011년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부산 목욕탕 입장 거부, 2017년 KKK 동상 철거 반대 시위 등을 배경으로 삼고, 흑인 로자 파크스가 겪은 것 같은 버스 내에서의 차별, 역사 선생의 발언, 화장실 테러 등이 사건으로 흘러간다. “차별이 강물처럼 흘러야지만 차별인 줄 안단 말이야. 사실 차별은 곳곳에 놓인 지뢰밭 같은 거야. 딱 한 번의 폭발에도 우린 불구가 된다고.”(셀마) 그 속에서 심지 굳은 흑인 셀마를 재일은 짝사랑한다. ‘개를 먹는 나라,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 줄 아는 나라’ 등으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던 재일은 ‘한국어로는 와우 대신 우와’라는 식으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간다.

지극히 핍진한 소설 흐름에서 툭 불거져나온 ‘파란 피부’라는 설정의 의미도 분명하다. LGBT로 시작한 무지개는 QIA+까지 넓어졌다. 들자면 차별 요소는 수없이 많다. 노인-어린이-흑인-백인-지역-여성-남성…. 수많은 차별 요소에도 인류가 보편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평등하다는 것. 도드라지는 ‘파란 피부’도 그 한 요소일 뿐이다. 그래서 이 복잡한 장르적 소설의 이유 역시 분명해진다. 현실을 두드러지게 하는 상상력. 상투어의 차별과 혐오를 신선하게 붙드는 방법. 결국 읽는 사이 정이 든 재일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312쪽, 1만6800원.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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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월드
카일 차이카 지음, 김익성 옮김, 미래의창 펴냄, 2만1천원

사용자의 취향에 맞춘 알고리즘의 문제는 많이 지적돼왔다. 저자는 알고리즘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미래에 대해서 조목조목 분석한다. 알고리즘 네트워크를 ‘필터월드’라고 부르는데 전세계 어디서나 비슷비슷한 인테리어의 카페, 에어비앤비 숙소 등이 이것의 결과물이다.


루카스
이문영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1만3천원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장애진씨가 등장하는 실명 소설이다. 애진은 응급구조사가 됐다. 다신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서 한 선택이다. 어느 날 그는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참사 현장을 만나게 된다. 루카스는 자동 흉부 압박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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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사상의 흥기 3, 4
왕후이 지음, 양일모 등 옮김, 돌베개 펴냄, 3권 4만원, 4권 4만5천원

2024년 4월 상권(1, 2)에 이어 하권(3, 4)이 나오면서 20년 만에 완역됐다. 상권이 19세기 말까지의 중국 제국을 살폈다면 하권에서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서구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중국의 근대성 형성에 대해 분석한다. 이때 주요하게 등장한 것은 과학 관념을 중심으로 한 공리 세계관이다.


스마트폰으로 키우는 초등 문해력
정상근·박수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7천원

아이들과 게임, 유튜브 시청 등으로 매일 싸움하고 있다면? ‘그만해!’ ‘하지 마!’라는 공격적 금지보다 유튜브를 활용해 유튜브의 장단점 살피기, 게임 요소를 학습에 활용하기, 게임플랜·게임일기를 통해 글쓰기로 나아가기 등의 방법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건 어떨까. 기자 부부가 그 방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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