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노동하는 인간을 통해 ‘오늘의 한국’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풍경화다. 한승태 작가는 ‘고용의 미래’(칼 프레이·마이클 오즈번, 옥스퍼드대학, 2013),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박가열 외, 한국고용정보원, 2016) 등의 보고서가 인공지능(AI)에 의해 20년 이내에 대체될 확률이 100%에 가깝다고 예측한 직업들에 “격식을 갖춘 작별인사를 하고자” <어떤 동사의 멸종>(시대의창 펴냄)을 썼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직업들’은 콜센터 상담원, 택배 상·하차 노동자, 식당 노동자(요리사, 보조 등), 빌딩 청소부다. 요리·청소·배달·고충처리는 현대인의 삶에TJ 뺄 수 없는 필수 영역이지만, 흔한 만큼 제값을 못 받는 분야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전에 꽃게잡이 배를 타고, 양돈장에서 돼지 똥을 치우며 쓴 <퀴닝>(<인간의 조건> 개정판으로 <어떤 동사의 멸종> 출간과 동시에 재출간했다), <고기로 태어나서>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직접 이 일들을 하며 마주친 노동 현장의 ‘희로애락’을 세세히 기록한다.
일들은 하나같이 고돼서 남다른 주의사항이 있다. 콜센터 상담사의 경우 “대기호가 있을 땐 이석하면 안 된다”. 모든 상담원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어, 고객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으면(대기호) 대장·방광이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뜰 수(이석) 없다. 치질과 방광염이 반드시 따라붙는다. ‘보상’은 금기어, 고객이 아무리 공격해도 ‘응전은 금물’이다.
택배 상·하차(일명 ‘까대기’)의 경우 “종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6개 페트병 묶음, 24개 캔 음료 묶음 같은 무게 나가는 짐을 쉴 새 없이 들어 올릴 때는 허리가 아닌 무릎으로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뚜두둑’ 하고 허리뼈가 종을 울린다. 너무 힘들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만,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체내 수분이 몽땅 땀으로 ‘누수’됐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일하며 자신의 ‘쓸모’를 찾는다.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까대기를 하고 물류센터를 나설 때 만나는 태양은 “눈앞에서 카메라 플래시 수십 개가 터지는 느낌”을 선물한다. 쉰이 넘었는데 한쪽 발을 절고 사업은 망한 노동자에게도 매일 점점 더 미션을 잘 완수하며 ‘레벨업’하는 감각을 준다.
작가가 콜센터 상담원으로서 느낀 모멸감을 고발하며 ‘이런 일자리는 그냥 사라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 실제로 한 대형은행이 AI 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전화상담사 200명을 해고했다. 상담사들은 영하의 길거리에 앉아 ‘일자리를 돌려달라’고 외쳤다.
작가는 쓴다. 없어지는 게 오히려 나은 노동이 있을까. 일이 지극히 단순하다고 일을 수행하는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에 모호함이 있을 수 있을까. “생존에 있어 진실은 노동에 있어서도 진실이다.” 404쪽, 1만8500원.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슬픈 수족관
존 하그로브·하워드 추아이언 지음, 오필선 옮김, 목수책방 펴냄, 2만5천원
여섯 살 때부터 범고래에게 매혹돼 조련사를 꿈꾸던 존 하그로브는 30마리의 범고래를 ‘소유’한 세계 최대 해양 테마파크 씨월드의 수석 조련사가 된다. 그러나 대기업이 구축한 ‘종 보존’의 환상이 범고래를 새끼 낳는 기계로 전락시키고 수조에 갇힌 범고래 65% 이상을 질병과 부상,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아프게 내부고발한다.
작은 종말
정보라 지음, 퍼플레인 펴냄, 1만8천원
“왜 우리가 도망쳐야 해?” 모두가 투사가 될 순 없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일상을 지키려면 투쟁을 피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 <저주토끼> <고통에 관하여>로 한국 문학에 ‘보라 월드’를 만들고 있는 작가가 2020∼2023년 발표한 단편을 묶었다. 다수가 소수를 강제하는 세상에서 투쟁의 최전선에 선 작품들.
경외심
대커 켈트너 지음, 이한나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2만3천원
심리학자들은 주로 분노, 혐오 등 생존에 필수적인 변연계가 담당하는 감정에 주목해왔다. 저자는 인간이 거대한 신비나 압도적 순간을 마주할 때 경험하는 정서, 경외심에 주목한다.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위협이나 미지의 대상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존에 영향을 미쳤으며, 인류 역사를 풍요롭게 만든 감정임을 일깨운다.
비건한 미식가
초식마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7500원
토마토, 파프리카, 양파…. 자투리 채소를 넣고 푹 끓인다. 소금, 설탕, 고춧가루 톡톡. 깊은 맛이 나는 채소 소스 완성. 애호박을 잘라 쌀 위에 올리고 물을 조금 줄여 밥을 짓는다. 애호박밥 완성. 무해하고, 맛있고, 쉽고, 예쁜 비건 레시피들이 일상툰과 착한 글로 비벼졌다. <한겨레21> 연재 칼럼도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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