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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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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투쟁가들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활동가가 묻고 박경석이 답한 <출근길 지하철>과 장애인권활동가 앨리스 웡의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등록 2024-07-05 15:36 수정 2024-07-09 13:43


“당신이 나를 도우러 왔다면 시간 낭비요. 하지만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여기 왔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장애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1990년대 후반 이 말에 꽂혀 장애운동에 뛰어들었다. 연대, 해방, 좋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 노동자들은 지하철에서 이동 투쟁을 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손을 내밀까? 여성운동은 왜 장애운동판과 목소리를 합쳐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하지 않을까? 장애운동판은 왜 성 착취 구조에 같이 저항하지 않을까? 박경석은 일정한 경기장 안에서 서로 검투사가 되어 싸우는 구조에서 벗어나 생각하자고 말한다.

<출근길 지하철>(박경석·정창조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360쪽, 1만9천원)은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동 투쟁을 “비문명적 불법시위”(이준석)라고 규정하는 ‘문명’과 ‘정상’의 말에 내놓은 박경석의 답이다. 박 대표의 활동지원사인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활동가가 묻고 정리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경종을 울리며 세상 속으로 기어간다는 것은 자기 언어를 갖고 답하는 일이었다. 박경석은 제대로 된 해방을 위해 ‘문명’이 구축한 지배구조에서 나가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한다.

미국의 장애 인권 활동가이자 작가 앨리스 웡의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김승진 옮김, 오월의봄 펴냄, 500쪽, 2만7천원)은 장애인을 비롯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자를 위한 에세이다. 선천성 근위축증을 갖고 태어난 웡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들을 주렁주렁 단 ‘사이보그’ 같은 몸이 돼간다. 웡은 자신의 삶에서 필수적 도구인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해야 한다는 환경 조례에 맞서고, 지속가능성과 제로웨이스트라는 목표가 취약 집단을 배제하지 않도록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유색인종이자 여성 장애인으로서 웡은 단 한 번의 삐끗한 정치적 변화만으로도 자신이 단박에 시설에 격리되거나 죽을 수 있음을 알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이 보이도록 하는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로 싸우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희생될 사람들이 누구일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처분 가능한 사람, 보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모든 사람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속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돌봄과 상호의존에 관한 웡의 주장은 박경석의 말과 겹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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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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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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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궁합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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